블라디미르 오스카로비치 카펠

Владимир Оскарович Каппель
러시아 제국 러시아인 (스웨덴계) 1883–1920 ○ 동상 · 폐렴 사망

백군 최고의 '병사들의 장군', 얼음 행군을 이끌다 사라진 카잔의 정복자

“병사들에게 전하라, 내가 그들을 사랑했으며 그들 가운데서 죽는 것이 그 증거라고.”

스웨덴계 러시아 귀족 가문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참모 장교로 복무하며 브루실로프 공세 계획에 참여했다. 1918년 볼셰비키에 맞서 코무치 인민군 소규모 의용대를 이끌고 기동전으로 카잔을 점령, 적군의 동부전선을 붕괴 직전까지 몰아넣으며 '작은 나폴레옹'이라 불렸다. 콜차크 휘하에서 동부전선 총사령관이 된 후, 붕괴하는 전선을 수습하며 바이칼까지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을 이끌었고, 도중 동상과 폐렴으로 사망했으나 그의 관은 부하들의 손에 끝까지 운구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

1919년 가을, 붉은 군대는 동부전선에 증원군을 투입하며 결정적 공세에 나섰다. 11월 14일 옴스크가 함락되고 콜차크 정부는 사실상 붕괴했다. 콜차크 자신은 황금 열차를 타고 이르쿠츠크로 도주했고, 대부분의 병력은 수송 수단도 보급도 없는 채 후퇴하는 적군에 쫓기고 있었다. 12월 중순, 콜차크는 카펠을 동부전선 총사령관에 임명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절대적 신뢰를 받던 카펠은 붕괴 직전의 군대를 수습하고, 자진 항복을 원하는 자에게는 허락을 내리는 한편 남은 병력에게 도보와 썰매로 동쪽을 향한 철수를 명령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수비대장 지네비치 장군이 반란을 일으켜 적군 편으로 넘어갔다. 포위된 카펠 부대는 중장비 없이 시가전을 벌였으나 시가지를 우회해 탈출하는 데 그쳤다. 1920년 1월, 약 3만 명으로 불어난 퇴각 부대는 여러 종대로 나뉘어 이르쿠츠크를 향했다. 카펠 자신은 가장 험난한 경로인 칸 강의 얼음을 따라 행군했다. 영하 40도를 넘는 혹한 속에서 강 곳곳의 온천 때문에 얼음이 녹아 있었고, 카펠은 말을 끌고 얼음을 건너다 빙판이 깨지며 물에 빠졌다. 동상에 걸린 양발을 하루가 지나서야 의사가 진찰했고, 이미 괴저가 시작된 상태였다. 마취제도 수술 도구도 없이 단칼로 왼쪽 발 일부와 오른쪽 발가락들을 절단했다.

수술 직후에도 카펠은 안장에 몸을 묶은 채 군대를 계속 지휘했다. 체코군이 제공한 위생열차 탑승 제안도 거부했다. 1월 22일 니즈네우딘스크에서 마지막 군사회의를 열어 이르쿠츠크 탈환과 콜차크 구출을 결의했으나, 이틀 후 의식을 잃고 1월 26일 우타이 신호장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36세. 그의 유해는 부하들에 의해 관에 담겨 바이칼 호수를 건너 치타까지 운구되었고, 이후 하얼빈으로 옮겨져 이베르스카야 성당 뜰에 안장되었다. 카펠이 시작한 행군은 그의 사후에도 계속되어, 잔존 병력은 바이칼 빙판을 넘어 1920년 3월 치타에 도달했다. 3천 킬로미터에 달한 이 겨울 퇴각은 백군 측에서 '대시베리아 빙상 행군'으로 기억되며, 적군의 포위를 뚫고 살아남은 카펠 부대의 집단적 의지와 그들을 끝까지 이끈 지휘관의 초상이 교차하는 러시아 내전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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