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아파나시예비치 카사토노프

Владимир Афанасьевич Касатонов
소련 러시아 1910–1989 ○ 자연사

발트·흑해·북방 세 함대를 지휘한 해군 원수, 소련 대양함대의 건설자

1963년 9월 29일, 카사토노프가 승선한 원자력잠수함 K-181이 북극점 빙원을 뚫고 부상했다. 소련 해군 사상 최초로 지구 최북단에 잠수함을 띄운 순간이었다.

잠수함 장교로 출발하여 소련 4대 함대 중 3개를 차례로 지휘한 해군 원수. 북방함대 사령관 시절 소련 원자력잠수함의 첫 북극점 부상(1963년)을 직접 지휘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 국면에서 북방함대의 전력을 확장했다. 이후 10년간 해군 제1부총사령관으로서 고르시코프의 대양함대 건설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으며, 아들 이고르와 손자 블라디미르로 이어지는 3대 해군 제독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알바니아 블로러 해군기지 철수 작전 (1961)

소련-알바니아 동맹이 급속히 붕괴하던 1961년 봄, 흑해함대 사령관 카사토노프는 알바니아 블로러(Vlorë) 만에 주둔한 소련 해군의 철수를 현장에서 지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957년부터 소련은 블로러 만의 파샤리만(Pashaliman) 기지를 아드리아 해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로 운영해왔으며, 12척의 잠수함, 2척의 모선, 다수의 보조함정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엔베르 호자의 알바니아 노동당이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중소분열을 계기로 모스크바와 결별하면서 기지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카사토노프가 1961년 5월 순양함 '미하일 쿠투조프'를 타고 세바스토폴을 출발했을 때, 알바니아 정부는 이미 소련 군함의 영해 진입을 금지한 상태였다. 그는 모스크바를 경유해 민간 유조선 '졸로토이 로그'로 블로러에 진입했고, 기지의 플라브바자 '빅토르 코텔니코프'에 지휘기를 게양했다. 당시 기지 안팎은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알바니아군은 해안포를 기지 쪽으로 겨누고 진지를 구축했으며, 4척의 잠수함과 플라브바자 '블라디미르 넴치노프'를 자국 소유라고 주장하며 무장 봉쇄를 벌였다. 소련-알바니아 혼승 함정에서는 충돌이 빈발했고, 알바니아 측은 노동당 정치위원들을 배치해 소련 장병들의 '선전 활동'을 감시했다.

카사토노프는 소련 측 잠수함 8척과 모선 '코텔니코프'를 안전하게 철수시키는 데 주력하는 한편, 나머지 4척의 잠수함과 장비를 둘러싼 협상은 모스크바의 외교 채널에 맡겼다. 5월 26일 아침, 그의 지휘 아래 8척의 잠수함과 지원함정들은 블로러 만을 빠져나왔고, 지브롤터-비스케이-발트 해를 거쳐 리바바(Libava)로 무사히 귀환했다. 카사토노프 자신은 6월 9일 마지막 소련 군인들이 철수할 때까지 알바니아에 남아 현장을 통제했다. 이 작전은 냉전기 소련이 동맹국 영토에서 해군력을 강제 철수시킨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으며, 카사토노프는 정치적·군사적으로 극히 민감한 작전을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완수한 지휘관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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