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빅토로비치 크류코프

Владимир Викторович Крюков
소련 러시아 1897–1959 ○ 자연사

근위기병군단의 영웅, 전리품 사건으로 무너지고 해빙기에 복권되다

1948년 9월 모스크바. 소련영웅 금성훈장을 단 크류코프 중장이 '전리품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압수품에는 다이아몬드 208개, 레핀과 세로프의 그림 132점, 고급 승용차 3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3년 후 형량은 징역 25년.

농민 출신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소위까지 지낸 후 적군에 합류한 소련의 기병 지휘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제2근위기병군단장으로 비스와-오데르 작전과 동포메라니아 작전을 이끌어 1945년 소련영웅 칭호를 받았다. 종전 후 유명 민요 가수 리디야 루슬라노바와 결혼했으나, 1948년 '전리품 사건'으로 체포되어 25년형을 선고받고 계급과 훈장을 박탈당했다가 1953년 스탈린 사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주코프의 기병장교: 전간기부터 베를린까지

1933년부터 1937년까지 크류코프는 게오르기 주코프가 지휘하는 제4코사크기병사단 예하 제20기병연대장으로 복무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두 사람의 신뢰 관계는 크류코프의 군 경력 전반을 관통하는 축이 되었다. 1942년 3월, 크류코프는 모스크바 방어전에서 전사한 전설적 기병 지휘관 레프 도바토르의 뒤를 이어 제2근위기병군단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4월, 군단을 방문한 민요 가수 리디야 루슬라노바를 볼로콜람스크 인근에서 만나 곧 결혼했다. 1942년 11월 '화성 작전'에서 군단은 적과 접촉하기도 전에 독일군의 집중 포격과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1943년 2~3월, '크류코프 기병-스키-소총 집단'은 중부전선의 세프스크 작전에서 독일군 전선을 돌파해 적 후방 깊숙이 진격했으나, 곧 포위되어 대패하며 세프스크로 후퇴해 6일간 시가를 방어했다. 시베리아 스키 여단 3개를 포함해 1만 5천 명 이상이 전사했고, 군단은 사실상 전멸했다. 제3근위쿠반기병사단장 야고딘 장군은 "각 연대에 25~30명만이 살아남았다"고 보고했다. 군단은 재편성을 위해 후방으로 물러났다.

1944년 7월, 크류코프는 제1벨라루스전선군의 기계화기병집단(제2근위기병군단과 제11전차군단) 사령관에 임명되어 서부크 강을 도하하고 소련-폴란드 국경을 넘으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어진 비스와-오데르 작전에서 그의 군단은 필리차 강을 도하하며 바르샤바 해방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동포메라니아 작전에서는 1945년 3월 5일 폴친(폴친-즈드루이)을 점령했다. 이 공적으로 1945년 4월 6일 소련영웅 칭호와 금성훈장을 받았다. 크류코프 지휘 하에 제2근위기병군단은 적기훈장, 수보로프 2급 훈장, 그리고 '포메라니아' 명예칭호를 받았다. 전후 크류코프의 몰락은 부분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띠었다. '전리품 사건'은 약탈 혐의를 표면으로 내세웠으나, 크류코프가 주코프의 측근이었다는 사실이 표적이 된 주요 배경으로 평가된다. 1946년 주코프가 육군 총사령관에서 실각한 지 2년 만에 크류코프도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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