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폴레프가 거절한 대륙간 제트폭격기를 1년 10개월 만에 현실로 만든 설계자
스탈린이 대륙간 제트폭격기를 원했을 때 투폴레프는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먀시셰프가 22개월 만에 M-4를 띄웠다. 투폴레프가 후일 인정했다: "먀시셰프가 아니었으면 우리에겐 그런 폭격기가 없었을 것이다."
소련 중폭격기 설계의 독보적 인물로, M-4(몰로트)를 통해 세계 최초로 실전 배치된 대륙간 터보제트 전략폭격기를 현실화했다. 투폴레프 설계국에서 TB-1, TB-3, ANT-20 개발에 참여했고, 1938년 체포되어 NKVD의 TsKB-29에서 페틀랴코프와 함께 Pe-2를 설계했다. 1951년 스탈린의 직속 지시로 OKB-23을 재건해 불과 22개월 만에 M-4를 띄웠고, 이후 초음속 전략폭격기 M-50과 세계 기록 19개를 수립한 3M을 개발했다. 1960년부터 7년간 TsAGI를 이끌며 소련 항공우주의 기초연구를 총괄했고, 사후에도 그의 설계국이 VM-T 아틀란트로 부란 우주왕복선 수송을 담당하게 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7 산업·생산 운영 · 소련 · 중공업 · 군수공업
경력 연표
- 1926–34투폴레프 설계국(AGOS TsAGI) — TB-1, TB-3, ANT-20 날개 설계
- 1934–37TsAGI 실험기 여단(KB-6) 책임자, ANT-41 어뢰폭격기
- 1937–38제84공장 수석설계사 — DC-3을 Li-2로 개량, 약 14,000대 생산
- 1938–40체포, NKVD TsKB-29에서 페틀랴코프 휘하 Pe-2 설계
- 1940–43석방 후 자체 OKB — DVB-102, 소련 최초 여압식 객실 폭격기
- 1943–46제22공장 수석설계사 — Pe-2 개량형(Pe-2I 등), DIS, DB-108
- 1946–51MAI 항공기설계학과장·학장; OKB 해산 (낮은 생산성 이유)
- 1951–60OKB-23 수석·총설계사 — M-4(1953), 3M(1956), M-50(1959); 세계기록 19건
- 1960–67TsAGI 소장 — 초음속·가변익·수직이착륙 기초연구 총괄
- 1967–78EMZ(먀시셰프 실험기계제작공장) 총설계사 — M-17, M-18, M-20, VM-T 아틀란트
관련 역사 사건
전시기 고고도 폭격기 ДВБ-102 개발
1939년 먀시셰프는 페틀랴코프의 Pe-2와 투폴레프의 Tu-2 등을 개발하던 설계조직에서 장거리 고고도 폭격기 102호 계획을 제안하고 설계팀을 이끌었다. 전쟁으로 설계국과 제작이 옴스크로 옮겨간 뒤, 첫 시제기는 1942년 2월 비행했다. 다만 첫 비행 날짜는 2월 17일과 19일이라는 기록이 엇갈린다. 이 기체는 승무원 구획을 위한 두 개의 가압 객실과 당시로서는 새로운 구조적 해법을 갖췄다. 시험 과정에서 M-120 엔진은 요구 성능에 미치지 못했고, 기체는 반복적인 개조를 거쳤다. 1943년 M-71 엔진을 장착하고 객실을 손본 뒤, 1944년부터 1945년 7월까지 주로 고고도 시험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천장고 10,500미터에 도달했지만 설계된 항속거리와 엔진 신뢰성 등의 문제는 남았다. 종전 뒤 장거리 항공기 개발의 우선순위가 바뀌면서 계획은 보류되었고, 기체는 양산되지 않았다. 전시기 설계 경험에서 나온 대형 압출·단조 부품의 활용과 쌍수직미익 등 일부 해법은 먀시셰프의 이후 항공기 설계에서도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