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세묘노비치 비소츠키

Владимир Семёнович Высоцкий
소련 러시아 1938–1980 ○ 심근경색

검열된 방송 대신 백만 개 테이프로 퍼져나간 목소리

1980년 7월 28일, 모스크바 올림픽 기간. 비소츠키의 시신이 타간카 극장 로비에 안치되자 십만 인파가 수 킬로미터 줄을 섰다. 경찰 추산 10만8천 명. 『햄릿』 공연 취소에도 단 한 명도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다.

타간카 극장의 배우이자 소련 최고의 음유시인. 700곡이 넘는 노래를 7현 기타로 불렀고, 공식 매체에서 배제되었으나 릴 테이프 복제로 전국에 퍼졌다. 1971년 타간카 『햄릿』에서 검은 스웨터의 지식인 반항아로 한 세대의 상징이 되었으며, 범죄자·최전선 병사·알코올 중독자 같은 가면을 빌려 소비에트 사회의 금기를 거리 언어로 노래했다. 브레즈네프마저 병상에서 전화로 그의 노래를 듣기를 원했을 만큼 당과 민중을 동시에 사로잡은 유일무이한 문화적 현상이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중 42세로 사망했을 때, 십만 인파가 타간카 광장에 모여 당국이 감추려 했던 존재의 진정한 무게를 증언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타간카 극장과 노래의 비공식 유통

1964년 비소츠키는 유리 류비모프가 이끄는 타간카 극단에 합류했고, 9월 브레히트의 『세추안의 선인』에서 둘째 신 역으로 무대에 데뷔했다. 그는 공연에 출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음악과 가사를 쓰고 무대에서 노래했다. 1965년 1월에는 『시인과 극장』에 참여해 작곡가로 처음 이름을 올렸고, 같은 달 『세계를 뒤흔든 열흘』에도 음악과 가사를 보탰다. 1966년 5월 17일 류비모프 연출의 『갈릴레오의 생애』에서 첫 주역인 갈릴레오를 맡았다.

극장 밖에서는 노래가 테이프 복제로 퍼졌다. 1963년 6월 영화 촬영 중 고르키 영화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노래를 릴 테이프에 녹음했으며, 복사본이 빠르게 유통되어 노래와 이름이 모스크바 등지에 알려졌다. 이 녹음의 곡수는 별도로 특정하지 않는다. 1964년 10월에는 그때까지 쓴 노래 48곡을 연대순으로 녹음했다. 1967년 영화 『수직』의 노래들도 아마추어 녹음으로 영화 개봉 전부터 널리 알려졌고, 멜로디야는 1968년 1월 영화 음악을 음반으로 발매해 초판이 곧 매진됐다. 동시에 1968년 6월 소련 언론은 그의 노래를 부도덕하고 이념적으로 의심스럽다고 공격했고, 출연작 두 편은 심한 검열을 받아 그중 한 편은 거의 20년간 상영이 보류됐다. 비공식 복제와 제한적인 공식 발매가 공존하는 가운데, 비소츠키는 1971년 11월 29일 타간카의 『햄릿』 초연에서 주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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