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당을 이끌고 초기 소비에트 외교를 개척한 혁명 조직가
폭탄이 떨어지자 그는 "진정하십시오, 별일 아닙니다. 곧 무슨 일인지 확인하겠습니다"라고 외치며 폭발물 쪽으로 달려갔다.
볼셰비키 조직가로, 소비에트 러시아 최초의 해외 외교 사절단인 독일 전권대표부 초대 서기를 지냈고, 1918년 7월부터 모스크바 당위원회 서기로 내전기 수도의 당을 이끌며 도시방어를 지휘했다. 1919년 9월 무정부주의자들의 폭탄 테러로 현장에서 순직했으며,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1RSDLP(볼셰비키) 입당
- 1902체포되어 시베리아 유형
- 1904제네바로 탈출, 레닌과 접촉
- 1905모스크바 12월 무장봉기 참가
- 1918독일 주재 RSFSR 전권대표부 초대 서기
- 1918–1919모스크바 시당위원회 서기
- 1919제르진스키와 도시방어위원회 공동 지휘
관련 역사 사건
레온톄프스키 골목 폭탄 테러
1919년 9월 25일 저녁, 레온톄프스키 골목의 모스크바 위원회 관저 2층 회의실에서 당원 약 100~120명이 당학교 조직과 선동 방안을 의논했다. 부하린, 포크롭스키, 프레오브라젠스키가 보고를 마친 직후, 창밖 정원 쪽에서 아나키스트들이 던진 폭탄이 회의실에 떨어졌다. 자고르스키는 사회석에서 뛰쳐나와 터지기 전 폭탄 쪽으로 달려가며 "진정하십시오, 별일 아닙니다"라고 외쳤고, 이 덕분에 많은 참석자가 미처 빠져나갈 수 있었다고 증언된다. 폭발로 자고르스키를 포함해 12명이 숨지고 부하린과 훗날 정치국원이 되는 아르비트 펠셰 등 55명 안팎이 다쳤다. 책임을 자처한 것은 '전러시아 혁명적 빨치산 봉기위원회', 즉 좌파 사회혁명당원들과도 손잡은 '지하 아나키스트들'로, 조직자 카지미르 코발레비치와 폭탄 투척자 표트르 소볼레프는 체포 과정에서 저항하다 사살되었고, 일곱 명은 크라스코보의 다차에서 포위되자 자폭했으며, 여덟 명은 모스크바 체카의 결정으로 총살되었다. 이 테러는 붉은 테러의 대대적 격화를 불렀다. 레닌은 크레스틴스키에게 '테러를 비밀리에 준비하라'는 쪽지를 보냈고, 다음 날 열린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붉은 테러 문제를 첫 안건으로 다루었다. 그날 밤 수도 전역의 교도소에서는 '구체제' 인사들에 대한 대량 총살이 시작되었다. 자고르스키를 비롯한 희생자들은 크렘린 벽 아래 공동묘지에 안장되었고, 1930년에는 세르기예프포사드가 잠시 '자고르스크'로 개칭되며 그의 이름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