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특수작전집단 A를 이끌며 카우나스 포그롬을 부추기고 발트 유대인 살해를 지휘한 친위대 장교
슈테르넨펠스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튀빙겐 대학에서 법학 박사가 되었다. 1932년 나치당과 친위대에 들어가 뷔르템베르크와 브레슬라우의 게슈타포를 이끌었고, 1938년 빈의 유대인 이주 중앙청 공식 수장이 되었다. 1941년 2월 특수작전집단 A 사령관이 되어 6월 북부집단군을 따라 발트 3국에 들어갔다. 카우나스에서는 클리마이티스에게 포그롬을 시키고 리가에서는 아라이스에게 부대를 꾸리게 하는 등, 학살을 현지인의 「자기 정화」처럼 꾸몄다. 1941년 겨울까지 유대인 24만 9,420명을 죽였다고 보고했고, 11월 말 오스트란트 보안경찰·정보부(SD) 사령관이 되었다. 1942년 3월 러시아 크라스노그바르데이스크 근처에서 소련 파르티잔에게 치명상을 입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1932–1942 보안·정보·치안 · 나치당·나치 정권
경력 연표
- 1927튀빙겐 대학 법학 박사
- 1932나치당·친위대 가입
- 1938빈 유대인 이주 중앙청 수장
- 1941특수작전집단 A 사령관, 오스트란트 보안경찰 사령관
- 1942소련 파르티잔에게 치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