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다셰

汪大燮

청의 영국·일본 주재 공사를 거쳐 베이징 정부의 외교총장과 두 차례 임시 총리를 지낸 외교관

항저우 첸탕에서 태어나 1889년 거인이 되었고, 1902년 일본 유학생 감독을 거쳐 1905년 영국 주재 공사, 1910년 일본 주재 공사를 지냈다. 중화민국에서 진보당에 들었고, 1913년 9월 슝시링 내각의 교육총장을 맡았다. 1917년 장쉰의 복벽이 실패한 뒤 돤치루이 내각의 외교총장이 되었고, 11월 돤치루이가 물러나자 국무총리를 대리했다. 1919년 5·4 운동 때 체포된 학생들의 보석을 요청했고, 1920년 중국 홍십자회 회장이 되었다. 1922년 11월 다시 임시 국무총리 겸 재정총장이 되었으나 파벌 다툼으로 열흘 남짓 만에 물러났고, 1929년 병으로 죽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