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밍

王明
중국 중국 (한족) 1904–1974 ○ 망명 중 사망

'28인의 볼셰비키' 지도자이자 마오쩌둥의 최대 정적

1932년 상하이 사변 당시 "오늘 중국은 '양국의 투쟁' — 신생 중화소비에트공화국과 부패한 중화민국의 투쟁"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하며, 이 대립이 "현재 중국 정치생활 전체의 핵심"이라고 규정했다.

중국 공산당 초기 지도부에서 '28인의 볼셰비키' 그룹의 핵심 지도자로, 모스크바 쑨원대학 유학 시절 파벨 미프의 후원을 받아 1931년부터 1937년까지 코민테른 주재 중공 대표를 지냈다. 스탈린 노선에 충실한 교조주의자로서 마오쩌둥의 주요 정치적 경쟁자였으며, 마오는 『실천론』과 『모순론』에서 왕밍의 노선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항일민족통일전선 노선을 제시했으나, 1942년 정풍운동에서 교조주의의 표적으로 숙청된 후 1956년 소련으로 망명하여 모스크바에서 여생을 보냈다.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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