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조인슨힉스

William Joynson-Hicks

『고독의 우물』을 금지하고 「외설」을 단속한 보수당 내무장관

1924~1929년 내무장관으로 나이트클럽과 「외설」 서적을 단속했고, 1928년 『고독의 우물』 금지 소송을 직접 시작했다.

런던의 복음주의 국교회 상인 집안에서 태어난 영국의 변호사·보수당 정치인. 1908년 보궐선거에서 처칠을 꺾고 의원이 되었고, 「직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1920년 암리차르 학살의 다이어 장군을 옹호한 「골수파」였다. 1923년 체신장관·재무 담당 차관·보건장관을 거쳐 1924~1929년 볼드윈 내각의 내무장관을 지내며 공산당 지도자들을 재판에 넘기고 나이트클럽과 「외설」 서적을 단속했으며 『고독의 우물』 금지를 이끌었다. 1929년 자작이 되었고 1932년 숨졌다.

다른 이름: 브렌트퍼드 자작 · 직스

주요 활동과 소속

관련 역사 사건

「직스」와 공중도덕

열네 살에 금주를 맹세해 평생 지킨 그는 1881~1887년 런던에서 법률 수습을 하고 1888년 개업했다. 1895년 맨체스터 견직물 업자의 딸 그레이스 린 조인슨과 결혼해 아내의 성을 자기 성에 더했다. 1908년 맨체스터 북서부 보궐선거에서 장관 재선거를 치르던 처칠을 꺾었는데, 이 선거에서 「직스」라는 별명이 생겼고, 유대인 이민을 막는 1905년 외국인법을 지지해 유대인들의 반발을 샀다. 노동당 지도자 키어 하디를 「문둥병 걸린 배신자」라 불러 H. G. 웰스에게 「영국 정치의 최악」이라는 공개 비난을 받았다.

1910년 낙선했다가 1911년 브렌트퍼드, 1918년 트위크넘에서 의원이 되었고,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적성 외국인 억류와 독일 도시 폭격을 주장했다. 인도 자치 운동에 반대하며 1920년 암리차르 학살의 다이어 장군을 옹호해 당의 「골수파」로 이름을 굳혔다. 1922년부터 해외무역 차관, 1923년 체신장관과 재무 담당 차관을 거쳐 보건장관이 되었다.

1924~1929년 볼드윈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해협을 건너오는 오물의 홍수」를 막겠다며 D. H. 로런스의 작품, 산아 제한 책, 『데카메론』 번역본을 단속하고 나이트클럽을 급습하게 했으며, 『고독의 우물』 금지에 직접 관여했다. 1925년 해리 폴리트 등 공산당 지도자들을 1797년 반란 선동법으로 재판에 넘겼고, 1926년 총파업 진압을 조직했으며, 1927년 소련 무역 기관 아르코스 급습을 명령했다. 한편 여성의 투표 연령을 30세에서 21세로 낮추는 데 중요한 몫을 했다. 1929년 브렌트퍼드 자작이 되었고 1932년 6월 8일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