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1968년 남베트남 주둔 미군을 지휘하며 소모전과 사살 집계를 앞세운 미국 육군 장군
웨스트모얼랜드는 베트남전에서 소모전과 ‘수색·섬멸’을 채택하고 적 사살 집계를 성과의 핵심 척도로 삼았다. 미군 병력은 50만 명을 넘었지만, 적은 손실을 보충했고 전쟁 승리라는 그의 낙관적 주장은 1968년 뗏 공세 뒤 신뢰를 잃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1936년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2차 대전 유럽 전선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64년 1월 남베트남에 파견되어 6월 베트남 군사원조사령부를 맡았다. 해병대 상륙 뒤 방어 위주에서 벗어나 미군이 직접 적을 찾아 섬멸하는 소모전을 주장했고, 대규모 포격과 공습을 썼다. 1967년 11월 「끝이 보인다」고 말했으나 1968년 뗏 공세 뒤 20만 명 증파 요청이 알려지면서 3월 교체되었다. 1968~1972년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 군사·지휘 · 미국 국가기관
경력 연표
- 1936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육군 장교로 임관했다.
- 1942–1945제2차 세계대전에서 제34야전포병대대를 지휘하고, 이후 제9보병사단 참모장을 지냈다.
- 1958–1963제101공수사단장에 이어 웨스트포인트 교장을 지냈다.
- 1964–1968베트남 주둔 미군 사령관으로 소모전을 지휘했다. 뗏 공세 뒤 미국으로 돌아와 육군 참모총장에 임명되었다.
- 1968–1972미 육군 참모총장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