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과 귀환 사이에서 주권을 지키려 한 장군
1943년 카틴 학살 조사를 요구하자 소련은 시코르스키의 망명정부와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는 폴란드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전간기 민주주의와 군부 권위주의의 충돌 속에서 독자적 노선을 모색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런던 망명정부의 수상 겸 폴란드군 총사령관으로서 서방 연합국에 폴란드의 국가적 요구를 제기했다. 그는 1941년 시코르스키-마이스키 협정을 통해 소련과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폴란드 포로 석방과 군대 창설의 길을 열었지만, 카틴 학살 조사 요구 뒤 관계가 다시 단절되었다. 1943년 지브롤터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하면서 망명정부의 외교적 영향력도 큰 타격을 입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08비밀 독립운동 조직 ‘능동투쟁연맹’ 공동 창립
- 1914–1916최고국민위원회 군무부장, 폴란드 군단 장교학교 지휘관
- 1920폴란드-소련 전쟁, 바르샤바 전투 제5군 사령관
- 1922–1923폴란드 공화국 수상 겸 내무장관
- 1924–1925군무장관, 폴란드군 현대화 추진
- 1939–1943런던 망명정부 수상, 폴란드군 총사령관
- 1941시코르스키-마이스키 협정 체결, 소련과 관계 복원
- 1943카틴 국제 조사 요구 뒤 지브롤터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1926년 쿠데타 반대와 사나치아 체제하의 야당 활동
1926년 5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시코르스키는 민주주의자이자 세임(의회) 지지자로서 쿠데타 반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그는 르부프에 남아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를 출동시키기를 거부했고,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이어진 짧은 무력 충돌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다. 쿠데타가 성공하고 사나치아 체제가 들어선 뒤 그는 새 정권의 미움을 샀으며, 1928년 피우수트스키에 의해 지휘권에서 해임되었다. 현역 신분은 유지했지만 이후 아무런 보직도 받지 못했다.
같은 해 그는 폴란드-소비에트 전쟁을 다룬 책 《비스와 강과 브크라 강에서》를 출간했고, 이후 군사 이론과 역사, 외교 정책에 관한 저술에 힘을 쏟았다. 1934년의 《미래의 전쟁》에서는 기동전의 귀환을 예견하고 독일의 급속한 군비 확장을 경고했다.
지휘권을 잃은 직후 그는 반피우수트스키 야당에 합류했고, 파리에 머물며 프랑스 육군대학에서 일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 활동에서는 상당히 물러나 있었다. 1935년 피우수트스키가 사망한 뒤에도 피우수트스키의 후계자들은 그를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계속 주변부에 밀어냈다. 1936년 2월 그는 빈첸티 비토스, 이그나치 파데레프스키, 유제프 할레르 등과 함께 반사나치아 정치 연합인 모르주 전선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