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스창

徐世昌
북양정부·군벌 중국 중국 1855–1939 ○ 톈진에서 사망

위안스카이의 오랜 벗으로 국무경을 거쳐 베이양 정부 유일의 문관 대총통이 된 관료

허난 웨이후이에서 태어났고 위안스카이의 가장 가까운 벗이었다. 청에서 동삼성 총독과 경친왕 내각의 협리대신을 지냈고, 문관이면서도 청 말에 군자대신을 맡았다. 1914년 5월 위안이 총통제로 바꾸며 둔 정사당 국무경이 되었으나, 1915년 위안의 칭제에 항의해 물러났다가 1916년 3월 위안이 제정을 거둔 뒤 잠시 복귀했다. 1918년 돤치루이의 안푸 국회에서 대총통으로 뽑혔고, 군대가 없어 돤치루이·차오쿤·장쭤린을 서로 견제시키며 자리를 지켰다. 1919년 5·4 운동의 학생 시위를 대량 체포로 억눌렀다. 1922년 직계의 압박으로 물러나 톈진 영국 조계에 은거했고, 1939년 그곳에서 죽었다.

다른 이름: 서세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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