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샹첸

徐向前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마오주의 중국 중국 1901.11.8.–1990.9.21. ○ 자연사

제4방면군 총지휘로 장궈타오의 분열을 겪고, 1979년 국방부장으로 베트남 전쟁을 지휘한 원수

1990년 6월 결핵이 재발해 입원했고 9월 21일 89세로 사망했다. 유언은 시신 인사도 추도회도 없이, 유골을 대별산·대파산·태행산·하서회랑에 뿌리라는 것이었다. 화장한 유골은 네 곳에 나뉘어 뿌려졌다.

산시 출신 황푸 1기생으로 광저우 봉기 뒤 어위완 소비에트에서 제4방면군 총지휘가 되었고, 대장정 중 장궈타오의 남하 결정에 따르다 1936년 서로군이 하서회랑에서 궤멸하는 참패를 겪었다. 항일전쟁기 129사단 부사단장, 국공내전기 화베이 군구 부사령관으로 타이위안을 점령했다. 1955년 원수가 되었고 문화대혁명 「2월 역류」 뒤 한직에 있다가 1978년 복귀해 국방부장으로 1979년 중월전쟁을 지휘했다.

다른 이름: 서향전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서로군의 서진과 하서회랑 전투

1936년 10월, 중앙군사위원회는 황하를 건넌 홍군 부대에 닝샤 작전 수행을 명령했으나 작전 구상이 바뀌면서 11월 8일 하서회랑에서 서쪽으로 진출할 서로군을 편성했다. 총지휘 쉬샹첸과 정치위원 천창하오는 11월 12일 중앙의 서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답했다. 쉬는 부대를 하서회랑에서 소모시키지 말고 신장 방향으로 계속 진격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정치위원 천창하오는 량저우와 융창 일대에 근거지를 세우자는 방침을 지지했다. 중앙군사위원회가 현지 작전을 지시하면서 부대는 서진을 멈추고 전투를 이어갔다. 1937년 1월 가오타이가 함락되고 제5군이 전멸하는 등 손실이 커졌으며, 중앙의 동진·서진 명령이 거듭 바뀌는 가운데 서로군은 포위와 추격에 직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