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이바노비치 알크스니스

Яков Иванович Алкснис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라트비아 1897–1938 ✕ 처형

세계 최대 폭격기 전력을 구축하고, 자신이 선고한 죽음과 같은 죽음을 맞다

「그는 비행 장교들을 직접 점검했다… 오늘날 소비에트 공군이 강력한 무기로 존재하는 것은 주로 그 덕분이다」 ― 망명자 알렉산드르 바르민

라트비아 출신 볼셰비키로, 붉은 군대 공군을 세계 최대의 폭격기 전력으로 키운 인물. 1931년 공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뒤 직접 비행사 자격을 취득해 거의 매일 비행했으며, 죄수들을 동원한 샤라슈카 설계국에서 폴리카르포프 I-5 전투기를 탄생시켰다. 1937년 6월 투하쳅스키 등 여덟 장군에게 사형을 구형한 특별재판부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사형을 주장했다. 그해 11월 라트비아 작전으로 체포되어 고문 끝에 간첩 혐의를 자백했고, 1938년 7월 콤무나르카에서 총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남북전쟁 시기: 제55소총사단 정치위원

1919년 5월 붉은 군대에 입대한 알크스니스는 오룔 현 군사위원을 거쳐, 그해 9월 직접 편성에 참여한 제55소총사단의 정치위원이 되었다. 이 사단은 주로 라트비아인들로 구성되어 내전기 가장 가혹한 부대 중 하나로 악명을 떨쳤다. 오렌부르크에서 우랄 카자크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알크스니스는 '10분의 1 처형'을 시행했다: 반란 지지 마을 주민 열 명 중 한 명을 공개 처형하는 집단 징벌이었다. 오렌부르크 점령 후에는 카자크 동조 혐의자를 교수형에 처하고 시신을 수일간 방치해 '본보기'로 삼았다.

돈 지역 군사위원으로 전출된 뒤에는 징집 기피자 무리를 체포해 일부를 현장에서 처형한 뒤 생존자들에게 입대를 강요했다. 이 같은 방식은 트로츠키조차 과잉으로 판단했고, 알크스니스는 곧 소환되어 오룔 군관구 부사령관으로 좌천된 뒤 국방인민위원회 예비역으로 밀려나 1924년까지 실질적 보직 없이 프룬제 군사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그가 이 시기 받은 적기훈장 두 개 중 하나는 바로 오렌부르크와 돈 강 유역에서의 이 '공로'에 대한 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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