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프 흐리스토포로비치 페테르스

Яков Христофорович Петерс
소련 라트비아 1886–1938 ✕ 처형

체카 창설 부의장, 명예체키스트 제2호

“그는 사형 영장에 서명할 때마다 육체적 고통을 느낀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의 성격에는 감상적인 면이 강했지만, 볼셰비즘과 자본주의의 충돌에 관해서는 광신자였고 무자비한 의무감으로 목표를 추구했다.” — 영국 외교관 로버트 브루스 록하트, 1918년 회고

라트비아 출신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체카의 핵심 설계자. 1904년 라트비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 1905년 혁명 참여 후 런던 망명. 1917년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10월 봉기를 준비했고, 혁명 후 체카 부의장으로 보안기관의 초석을 놓았다. 1918년 좌파SR 반란 당시 체카 권한대행, 이후 GPU·OGPU 동부국장으로 중앙아시아 바스마치 소탕을 지휘했다. 1937년 체포되어 1938년 총살, 1956년 복권.

경력 연표

관련 역사 사건

1918년 여름: 체카 권한대행과 좌파SR 반란

1918년 7월 6일, 좌파SR(사회혁명당) 대원 야코프 블륨킨과 니콜라이 안드레예프가 독일 대사 빌헬름 폰 미르바흐를 암살했다. 범행에는 펠릭스 제르진스키 체카 의장이 서명한 체카 신임장이 사용되었고, 제르진스키 자신도 좌파SR 본부로 가서 체포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같은 날 저녁 레닌의 지시로 페테르스가 체카 권한대행 의장에 임명되었다.

페테르스는 전적으로 공산주의자로만 새 체카 콜레기움을 구성하고 좌파SR 반란 진압을 지휘했다. 반란은 수일 내로 진압되었고, 제르진스키는 석방되었으나 한 달 이상 체카 지휘에서 물러나 있었다. 그 사이 페테르스는 영국 외교관 로버트 브루스 록하트가 연루된 이른바 '대사들의 음모' 수사를 주도했다. 록하트는 회고록에서 페테르스에게 심문받은 경험을 상세히 남겼다.

8월 30일 레닌 암살 미수 사건이 발생하자 페테르스는 범인 파니 카플란을 직접 심문했다. 카플란이 범행을 곧바로 자백했음에도 페테르스는 신속한 즉결처형 대신 동기와 공범 여부를 밝히기 위한 신중한 수사를 이어갔다. 카플란은 9월 3일 크렘린에서 총살되었고, 페테르스는 같은 달 제르진스키 복귀 후 부의장으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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