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림

楊林

청산리 전투의 교관에서 대장정의 간부단 참모장으로, 황허 도하에서 전사한 조선인 혁명가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본명은 김훈이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했다가 아버지를 잃었고, 신흥무관학교를 거쳐 북로군정서 사관연성소 교관으로 1920년 청산리 전투에 참전했다. 윈난 강무학교를 마친 뒤 광저우의 황푸군관학교에서 교관으로 조선인 생도들을 가르쳤고, 1925년 동정에 참가하고 그해 공산당에 들어갔다. 예팅의 독립연대 대대장을 거쳐 북벌과 광저우 봉기에도 참가했다. 모스크바 공산대학에서 다시 군사 교육을 받고 1930년 만주에 가 만주성위 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34년 10월 비스티라는 이름으로 홍군 간부단 참모장을 맡아 대장정에 올랐고, 1936년 2월 제15군단 제75사단 참모장으로 동정의 황허 도하 돌격대를 이끌다 전사했다.

다른 이름: 김훈 · 비스티 · 양녕 · 양주평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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