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페트로비치 피토브라노프

Евгений Петрович Питовранов
소련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15–1999 ○ 자연사

스탈린의 방첩 수장에서 브레즈네프의 무역 외교관으로 변신한 생존자

1951년 체포되어 고문받으면서도 자백을 거부하고, 감방에서 스탈린에게 국가보안 기관 개편안을 작성해 보내 결국 풀려났다.

스탈린 시대 소련 방첩의 핵심 인물로, 29세에 NKVD에 투신하여 빠르게 승진했다. 1946년부터 1950년까지 MGB 제2총국(방첩) 국장을 맡아 전후 소련 방첩 체계를 이끌었고, 1950년 국가보안부 차관이 되었다. 1951년 '아바쿠모프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투옥되었으나 끝내 자백하지 않았고,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1953년 초 MGB 제1총국(해외정보) 국장으로 소련 대외정보를 지휘했다. 이후 동독과 중국에서 KGB 고문으로 활동했고, 1962년부터 KGB 고등학교장을 지냈으며, 말년에는 소련 상공회의소 의장(1983–1988)으로서 무역 외교와 산업 스파이 활동을 조율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1951~1952년 체포와 재임명

1951년 10월 29일 피토브라노프는 이른바 ‘시오니스트 음모’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국가보안부에서 심문을 받았으나 자백하지 않았다. 그는 수감 중 스탈린에게 제출할 정보·방첩 업무 재편 계획을 작성했다. 그 계획은 ‘유대 민족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도발을 활용하고 전국에 허구의 반소 시오니스트 조직을 세우자는 내용을 담았다. 따라서 그의 비자백은 탄압에 맞선 저항으로만 서술할 수 없다. 그는 석방 전에 오히려 유대인을 겨냥한 국가보안 작전의 확대 방안을 제안했다. 피토브라노프는 1952년 11월 2일 혐의를 벗고 풀려나 국가보안부 제4국장에 임명되었다. 1953년 1월에는 대외정보 부문 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 카드로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