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경제 개혁의 이론적 촉매
「사회에 이로운 것은 모든 기업에도 이로워야 한다」 — 1962년 《프라우다》 논문의 핵심 명제
소련의 경제학자. 1962년 9월 《프라우다》에 발표한 논문 「계획, 이윤, 프리미엄」으로 전연방 경제 토론을 촉발하여 1965년 코시긴 개혁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이윤 지표를 기업 평가의 핵심으로 삼고 '사회에 이로운 것이 개별 기업에도 이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 소련 최초의 기계식 회계 스테이션을 창설했고, 1938년 조작된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939년 말 복권되었다. 아내 레기나 고로비츠는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누이이다.
경력 연표
- 1897볼린현 슬라부타에서 산림영지 관리인의 아들로 출생
- 1920키예프대학교 법학부 졸업
- 1923–1929우크라이나 노동연구소 실습생, 할키우 공장에 소련 최초 기계식 회계 스테이션 창설
- 1930–1941하리코프 공학경제연구소 기계제조업 조직·계획 주임
- 1938–1939NKVD에 간첩·테러 혐의로 체포, 15년형 선고 후 1939년 말 복권
- 1941–1943키르기스 SSR 재무부 근무
- 1947–1962하리코프 공학경제연구소 교수, 기계제조업 경제·계획 연구실 창설
- 1956경제학 박사 (논문: 사회주의 기업의 수익성 제고 방안)
- 1962《프라우다》에 「계획, 이윤, 프리미엄」 발표 — 전연방 개혁 논쟁 촉발
- 1962–1981하리코프대학교 통계·회계학과 교수
- 1981할키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관련 역사 사건
리베르만 개혁안: 이윤, 유인, 기업 자율
리베르만의 1962년 《프라우다》 논문 「계획, 이윤, 프리미엄」은 당시 소련 공업 관리의 핵심 모순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기업은 수십 개의 총생산·원자재 소비·노동생산성 지표로 평가받았지만, 정작 가장 효율적으로 생산했는지는 아무도 측정하지 않았다. 리베르만은 이 복잡한 지표 체계를 과감히 단순화하자고 제안했다. 기업을 오직 하나의 종합 지표인 수익성(이윤율)으로 평가하고, 이윤의 일정 비율을 노동자와 경영진에게 상여금으로 돌려주며, 나머지는 기업의 자체 투자 재원으로 삼도록 하자는 구상이었다. 핵심은 '사회에 이익이 되는 일이 개별 기업에도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였다.
리베르만의 구상은 계획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앙 계획은 여전히 국가적 생산 목표와 가격을 설정하되, 기업은 그 틀 안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할 재량을 갖는다. 그는 계획, 이윤, 프리미엄이라는 세 개념을 연결해 중앙집권과 분권의 새로운 균형을 모색했다. 이는 1920년대 부하린 식 시장사회주의와도, 스탈린 식 행정명령 체계와도 다른 제3의 경로였다.
이 논문은 발표 즉시 전연방적 논쟁을 촉발했다. 《프라우다》와 《이즈베스티야》, 학술지 《보프로시 에코노미키》에는 수백 통의 찬반 논평이 쏟아졌다. 흐루쇼프는 두 개의 대규모 실험 공장에서 리베르만 식 유인 체계를 시험하도록 승인했다. 1964년 가을 흐루쇼프 실각 뒤에도 논의는 멈추지 않았고, 1965년 9월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수익성 지표와 기업 자율을 대폭 수용한 코시긴 개혁을 채택했다. 흐루쇼프가 망설인 결단을 오히려 후임이 내린 셈이다. 하지만 1968년 프라하의 봄 이후 시장적 요소는 정치적 위험으로 간주되었고 개혁의 범위는 꾸준히 축소되었다. 그럼에도 리베르만의 제안은 소련사에서 관료적 명령이 아닌 가격과 이해관계로 움직이는 사회주의를 진지하게 설계한 몇 안 되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