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시긴 개혁의 '두 규제자' 비양립성을 분석한 소련 경제학자
「한 기업에 동시에 두 개의 이질적 규제자가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자동차에 두 명의 운전자와 두 개의 핸들이 동시에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회고로 본 계획체제』(2000)에서 코시긴 개혁의 실패를 요약하며.
소련 및 러시아의 경제학자로, 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우랄공대에서 정치경제학을 가르쳤다. 1965년부터 사망까지 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해외 경제이론 비판적 연구 분과를 이끌었고, 후기에는 경제체제 전환 이론과 러시아 경제사상사 연구에 집중했다. 2000년 폴 그레고리와 공저한 『회고로 본 계획체제』에서 1965년 코시긴 개혁의 핵심 모순을 지령적 계획과 준시장이라는 두 이질적 규제자의 한 기업 내 양립 불가능성으로 분석하여, 개혁 연구의 '두 규제자' 학파를 열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51–1957우랄공대 정치경제학 강사
- 1957–1962외국문학출판사 경제편집부 편집자·부장
- 1962–1965IMEMO 선임연구원
- 1965–1968소련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세계가격분과장
- 1968–1992경제연구소 해외경제이론비판분과장
- 1969–2016모스크바국립대 경제학부 교수
- 1992–2016러시아과학아카데미 경제연구소 주력연구원
관련 역사 사건
과학기술혁명과 인프라산업론
1980년대 말부터 오를세비치는 과학기술혁명으로 생산력과 사회경제적 관계가 변하는 양상을 분석하고, 1989년 논문에서 ‘인프라산업’과 ‘인프라시스템’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인프라시스템을 서로 다른 개별 생산을 연결하면서 각 생산에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기능적으로 통일된 하위체계로, 인프라산업을 개별 기계설비와 생산단위들을 하나의 기술적 연쇄로 묶는 생산력의 새로운 역사적 형태로 설명했다. 전력망을 중심 사례로 들고 교통·통신·수도·난방망도 여러 산업을 이어주는 ‘횡단적’ 시스템으로 보았다. 과학기술혁명은 이미 발전하던 기반시설에 새로운 형태와 영역을 더했다. 전력·가스·수도 공급, 자동차·관로 수송, 통신이 결합하면 중소기업과 개인 생산자도 연결된 생산체계 안에서 활동할 수 있고,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도 약해진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생산은 더욱 사회적으로 연결되는 동시에 규모가 작은 단위로 분산될 수 있었다. 오를세비치는 대규모 체계에는 계획을, 변화가 빠른 생산에는 시장기제를 활용하고 소유형태의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다원적 경제가 기술발전의 정체를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련의 과도한 중앙집권을 서방과의 장기 대결 속 자원동원에서 비롯된 관료적 배분체계와 연결하면서도, 컴퓨터화와 수요 변화에 기존의 거대한 중앙계획이 대응하지 못했고 노동 동기도 약해졌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