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베스티야 첫 소비에트 편집장, 소비에트 헌법의 설계자
그의 이즈베스티야 사설은 '스테클랴슈키'(유리조각)라 불렸고, 레닌은 직접 쪽지를 보냈다: "스테클로프 동지! 당신 사설을 읽었소. 바로 이렇게 써야 하오, 더 많이!" 스테클로프는 이 쪽지를 액자에 넣어 편집실 벽에 걸었다.
오데사 출신의 볼셰비키 언론인이자 역사가. 1917년 2월 혁명 후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이즈베스티야》 편집장이 되어 1925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1918년 RSFSR 헌법과 1924년 소련 헌법의 공동 기초자였으며 VTsIK 상임간부회 위원을 지냈다. 고리키와 함께 《노바야 지즌》을 편집하고 월간 《노비 미르》 창간을 주도했다. 바쿠닌·체르니솁스키 평전을 비롯해 방대한 사회주의 사상사 저작을 남겼다. 1938년 체포되어 1941년 사라토프 감옥에서 사망, 1956년 복권되었다.
경력 연표
- 1888–1893오데사에서 노동자 서클 조직,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합류
- 1894–1899체포되어 야쿠츠크주 중콜림스크로 10년 유형
- 1901–1903《이스크라》 편집 참여, RSDLP 제2차 대회 후 볼셰비키 합류
- 1905–1910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참가·체포, 두마 사회민주당 분파 자문
- 1911롱쥐모 당학교 교사, 유럽 사회민주주의 언론에 기고
- 1917–1925《이즈베스티야》 편집장, VTsIK 상임간부회 위원
- 1918–19241918년 RSFSR 헌법과 1924년 소련 헌법 공동 기초
- 1920–1930바쿠닌·체르니솁스키 평전 등 사회주의 사상사 저술
- 1925월간 《노비 미르》 창간 주도
- 1929–1938중앙집행위원회 산하 학술위원회 부위원장
관련 역사 사건
소비에트 헌법의 기초자
스테클로프의 가장 지속적인 제도적 유산은 소비에트 국가의 헌법적 토대를 설계한 작업이다. 1918년 4월 전러시아 중앙집행위원회(VTsIK)는 RSFSR 헌법 초안 작성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했고, 스테클로프는 야코프 셰인크만과 함께 볼셰비키 분파의 헌법 초안을 공동 기초했다. 두 사람이 작성한 이 초안은 위원회 내 다른 경쟁안들(미하일 레이스네르의 좌파 공산주의 안, 에스에르 맥시말리스트 안 등)을 제치고 토대가 되었으며, 1918년 7월 제5차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에서 최초의 소비에트 헌법으로 채택되었다. 이 헌법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명문화하고 노동자·병농민 소비에트에 권력을 집중시켰으며, '노동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원칙을 기본법에 새겼다.
스테클로프는 1922년 소련 결성 이후 1924년 소련 헌법 초안 작성에도 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이 헌법은 연방과 공화국들 간의 권한 배분, 연방 중앙집행위원회의 양원제 구조(연방소비에트와 민족소비에트), 공화국의 연방 탈퇴권을 규정한 최초의 연방 기본법이었다. VTsIK 상임간부회 위원이자 당대 소비에트 언론의 중심 인물로서, 스테클로프는 헌법 문안에 법적 형식을 부여하고 광범위한 공개 토론을 주도하는 이중 역할을 수행했다. 그가 편집장으로 있던 《이즈베스티야》 지면은 헌법 초안의 전국적 심의를 위한 핵심 공론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