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에서 스탈린 시대의 책임을 다시 물은 역사가
그의 연구는 해빙의 공식 기억 뒤에 가려진 가해자의 책임을 다시 기록보관소로 돌려놓았다.
유리 주코프는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가로, 러시아 역사연구소에서 스탈린 시대와 소비에트 정치사를 연구했다. 그는 기록보관소 자료를 바탕으로 니키타 흐루쇼프를 대숙청의 집행자이자 책임 있는 정치가로 재평가하는 논의를 제기했다. 동시에 스탈린의 대중 탄압 책임을 축소하는 ‘다른 스탈린’ 해석으로 학계의 강한 비판을 받았으며, 그의 작업은 탈스탈린화 이후의 역사 기억이 지닌 정치성을 드러냈다.
주요 활동과 소속
경력 연표
- 1961모스크바 국립역사·기록보관학연구소 졸업
- 1962–1973노보스티 통신사 기자
- 1976역사학 후보학위 취득
- 1981–2023러시아 역사연구소 연구원, 수석연구원
- 1992역사학 박사학위 취득
- 1993『에르미타시 작전』 출간
- 2003『다른 스탈린』 출간
- 2022그리고리 지노비예프 연구 출간
관련 역사 사건
‘다른 스탈린’과 대숙청 해석을 둘러싼 논쟁
1993년 주코프는 『에르미타시 작전』에서 굴라크 희생자와 소비에트 과학계에 미친 탄압을 다뤘다. 2000년대에는 『다른 스탈린: 1933~1937년 소련의 정치개혁』(2003)을 비롯한 저술과 방송 출연으로 대숙청 해석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는 스탈린이 대중 탄압을 주도했다는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고, 당 간부들이 대규모 탄압을 촉발했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 올레그 흘레브뉴크는 주코프와 아치 게티의 수정주의적 설명이 스탈린의 결정적 역할을 약화시키며, 지역 당 간부들이 스탈린에게 탄압을 강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비판했다. 흘레브뉴크는 1937년 7월 31일 정치국이 승인한 내무인민위원부 명령 00447호가 모스크바에서 정한 체포·처형 할당량과 중앙의 지휘 아래 시행됐다고 논증했다. 명령은 처음 약 27만 명의 체포를 계획하고 그중 7만6천 명을 처형 대상으로 삼았다. 이 수치는 초기 계획이며 실제 결과와 같지 않다. 주코프의 저술을 평가할 때는 기록자료에 기반한 대숙청 연구 기여와 스탈린의 책임을 줄이는 해석에 대한 동시대 역사학계의 비판을 함께 다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