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미래의 설계자
1931년 6월, 자먀틴은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작가인 나에게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이 한 문장으로 그는 소련을 떠날 허가를 받아냈다.
볼셰비키였던 해군기술자·작가는 통제와 순응의 미래를 『우리들』에 그렸다. 이 소설은 소비에트 검열이 금지한 첫 작품이 되었고, 그는 작가로서의 삶이 불가능해진 뒤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써 출국 허가를 받았다. 파리 망명 중에도 소련 여권을 지키며 1935년 반파시스트 작가대회에 소련 대표로 참석했으나, 결국 조국 밖에서 숨을 거두었다.
경력 연표
- 1905–1917볼셰비키 지하활동·기술자 생활
- 1921『우리들』 완성과 금지
- 1920년대풍자소설·문학비평 활동
- 1931출국 허가
- 1932–1937파리 망명 생활
관련 역사 사건
1905년의 볼셰비키, 쇄빙선의 기술자
예브게니 자먀틴은 1905년 혁명의 볼셰비키였다. 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학생 시절 당의 볼셰비키 분파에 가담해 선전 활동을 벌였고, 1905년 12월 체포되어 독방에서 몇 달을 보낸 뒤 수도에서 추방당했다. 훗날 그는 「그 시절 볼셰비키가 된다는 것은 최대 저항선을 따라가는 일이었고, 나는 그때 볼셰비키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조선 기사로서도 일급이었다. 1916년 러시아 정부의 주문으로 영국 뉴캐슬에 파견되어 쇄빙선 건조를 감독했는데, 그중에는 훗날 「레닌」으로 개명되는 상트 알렉산드르 넵스키 호가 있었다. 기계의 정밀함과 타고난 이단자의 기질을 한 몸에 지닌 이 「영국풍의 러시아인」은 1917년 9월 혁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귀국했고, 페트로그라드 문단의 장인이자 스승이 되어 세라피온 형제들을 길러 냈다.
『우리들』: 최초의 검열된 반烏托邦
1920년 자먀틴이 완성한 『우리들』(Мы)은 20세기 반烏托邦 문학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32세기의 유리벽 도시 '단일국가'를 무대로, 주인공 D-503은 우주선 인테그랄의 설계자이자 체제의 충실한 톱니바퀴였으나, 여성 넘버 I-330을 만나면서 내면에 '영혼'이 생기고 지하혁명에 휘말린다. 국가는 주민의 이름마저 번호로 대체하고, '성時間'과 '분홍 티켓'으로 사생활을 통제하며, 만장일치로 '은인(Благодетель)'을 재선출한다. 자먀틴은 영국 조선소 체류 중 목격한 테일러주의의 극단화와 전시공산주의 시기 소비에트 현실을 한데 녹여, 기술진보가 인간성을 말살하는 전체주의의 설계도를 그려냈다.
1921년 원고는 베를린의 그르제빈 출판사로 보내졌으나, 소비에트 검열은 '공산주의 체제를 조롱한다'며 출판을 금지시켰다. 이는 소련 문학사상 첫 공식 금서 사건이었다. 그러나 뉴욕에서 영어판(1924), 체코·프랑스에서 번역본이 잇달아 출간되면서 오웰의 『1984』,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소련 국내에서는 1988년에야 처음 공식 출판되었다. 이 한 권의 소설은 자먀틴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겼으나 동시에 조국에서 작가로서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든, 그를 규정하는 작품이었다.
1931년 6월, 스탈린에게 보낸 편지
1920–1921년에 쓴 소설 『우리들』은 국내에서 출판을 거부당했고, 1924년 뉴욕에서 영역본으로 먼저 세상에 나왔다. 1927년 프라하의 망명 잡지에 러시아어 축약본이 실리자 1929년 문단에서 자먀틴 규탄 운동이 벌어졌다. 그의 희곡은 무대에서, 책은 서가에서 사라졌고, 그는 작가 단체에서 스스로 탈퇴했다.
1931년 6월 자먀틴은 스탈린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작가에게 침묵은 사형 선고와 같으니, 쓸 수 없다면 떠나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고리키가 힘을 보탰고, 스탈린은 이례적으로 출국을 허가했다. 자먀틴은 1931년 11월 소련 여권을 지닌 채 파리로 떠났고, 1935년 파리 문화옹호 국제작가대회에는 소련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다. 그는 끝까지 망명자가 아니라 일시 체류자로 남고자 했으며, 1937년 3월 파리에서 사망했다. 『우리들』은 1988년 소련에서 정식으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