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전후 재정을 버틴 장기 재무장관
1960년 5월 16일, 흐루쇼프의 화폐개혁이 단순한 '디노미네이션'이 아니라 평가절하라고 보고 재무장관직을 내려놓았다. 원자재 수출 중심으로 경제가 기울 것을 우려한 결정이었다.
농민 출신으로 1919년 볼셰비키에 입당해 지방 재정기관에서 성장했다. 1938년 38세로 소련 재무인민위원이 된 뒤 22년간 재무장관을 지내며 대조국전쟁 군수 재원 조달, 국채 발행, 1942년 원자력 개발용 라듐·백금 지급을 감독했다. 1947년 전시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킨 화폐개혁을 설계했으며, 1960년 흐루쇼프의 새로운 화폐개혁 방안에 반대해 사임했다. 스탈린과 흐루쇼프 두 체제를 관통한 유일한 장기 재무수장이었다.
경력 연표
- 1920s–1930s지방 재정기관에서 성장, 스탈린기 재정관료로 부상
- 1938–1941재무인민위원, 전쟁 전 재정동원 체계 정비
- 1941–1945전쟁 재정, 국채, 배급경제의 재정 기반 관리
- 1947전후 화폐개혁과 배급제 폐지 국면에 관여
- 1950s–1960흐루쇼프와 재정 노선 충돌 뒤 퇴임
관련 역사 사건
1947년 화폐개혁
즈베레프가 재무인민위원으로서 가장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은 1947년 12월의 화폐개혁이었다. 그는 이미 전쟁 중이던 1943년부터 비밀리에 개혁을 준비했으며, 전쟁으로 불어난 통화량을 흡수하고 배급제를 폐지하기 위한 방안을 설계했다. 1947년 12월 14일 스탈린과 즈다노프가 서명한 각료회의·당중앙위 결정에 따라 12월 16일부터 29일까지 단 2주간 구권이 신권으로 교환되었다. 현금은 10:1로 교환되어 가정에 쌓아둔 지폐 저축의 90% 이상이 소멸했고, 저축예금은 3천 루블까지 1:1, 3천~1만 루블은 3분의 1 삭감, 1만 루블 초과분은 절반만 인정되었다. 동시에 배급제가 폐지되고 단일소매가격이 도입되었으나, 새 가격은 전쟁 전보다 평균 2.5배 이상 높았다. 개혁은 공개적으로 '몰수적' 성격을 띠었고, 투기 이익뿐 아니라 농민·고임금 노동자·기술자의 전쟁 중 근로소득까지 광범위하게 흡수했다는 비판을 낳았다. 그럼에도 이 개혁으로 전후 인플레이션은 진정되었고, 1948~1953년 스탈린의 반복적 '가격 인하'가 가능한 기반이 마련되었다. 즈베레프는 훗날 회고록 『장관의 수기』(1973)에서 개혁의 내막을 상세히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