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사회당을 코민테른에 가입시켰으나 개량주의파 축출을 거부해 1921년 리보르노 분열을 낳은 지도자
전쟁 중 사회당을 좌파로 이끌고 코민테른 가입을 주도했으나, 1921년 개량주의자와의 단절을 거부해 공산당 분립을 낳았다.
스포토르노 출신으로 이탈리아 사회당의 중심 지도자가 되었고, 1914년 참전론으로 쫓겨난 무솔리니의 뒤를 이어 『아반티!』 편집장을 맡았다. 전쟁 중 당을 왼쪽으로 이끌며 치머발트 운동에 참여했고, 10월 혁명 뒤 사회당을 코민테른에 가입시켰다. 1920년 제2차 대회에서 의장단과 집행위원회에 들었지만, 1921년 개량주의자와 절연하라는 원칙을 거부하고 공산당이 떨어져 나간 뒤에도 사회당을 이끌었다. 1924년 사회당 좌파를 이끌고 공산당에 합류했고, 1926년 지하 당 회의로 가던 길에 심부전으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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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베니토 무솔리니의 뒤를 이어 사회당 기관지 『아반티!』 편집장이 되었다.
1920코민테른 제2차 대회 의장단에서 활동하고 집행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21개량주의자와의 단절을 거부하고 이탈리아 사회당 지도자로 남아 공산당 분립을 맞았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언론인에서 출발한 무솔리니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민족주의 혁명으로 전향해 파시즘을 창시했다. 그는 1922년 로마 진군 뒤 총리가 되었고, 폭력과 제도 개편으로 자유주의 체제를 일당 독재로 바꾸었다. 식민 전쟁과 나치 독일과의 동맹,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이탈리아를 심각한 군사적·정치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1943년 실각한 뒤 독일 점령지의 이탈리아 사회공화국을 이끌었으나, 1945년 파르티잔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