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민병대를 관장한 부인민위원
1931년 야고다의 '베스나' 사건 조작에 항의했다 해고된 인물이, 6년 후 예조프 휘하에서 대숙청 트로이카를 조직했다.
체카 출신으로 1934년 소비에트 민병대 총국장, 1936년 예조프 휘하의 내무부인민위원이 되어 대숙청기 지방 트로이카를 조직했다. 1939년 체포돼 1941년 처형됐으며 복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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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1936NKVD 노농민병대 총국장
- 1936–1938내무부인민위원
- 1938–1939철도 제1부인민위원
- 1939–1941체포, 재판과 처형
10월 혁명기 페트로그라드의 선전 인민위원, 암살로 붉은 테러의 불씨가 되다
「동지들이여, 내가 시계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 나는 인류의 시계, 세계 혁명의 시계를 보고 있다」
페트로그라드의 출판·선전 인민위원이자 탁월한 군중 연설가. 볼셰비키 검열 체계를 구축하고 『크라스나야 가제타』를 창간했다. 1918년 6월 SR 전투원의 총에 암살되어 우리츠키 피살·레닌 피격과 함께 붉은 테러 전면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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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14세에 분트 가입, 불온 혐의로 김나지움 퇴학
- 1908–1911볼린·포돌리아에서 사민주의 선동원 활동
- 1911–1913피네가 유형, 로마노프 300주년 사면으로 석방
- 1913–1917미국 망명: 필라델피아 재단사, 『노비 미르』 공동 발행
- 1917.05귀국, 메즈라욘치(지역간파) 합류
- 1917.06–08볼셰비키 합류, 수석 선동원, 제6차 당대회 대의원
- 1917.09–10페트로그라드 평의회 간부회, 10월 봉기
- 1917.11–1918.06VTsIK 간부회, 출판·선전·선동 인민위원, 『크라스나야 가제타』 창간
Израиль Моисеевич Леплевский
우크라이나 대량작전을 정점으로 끌어올린 자
GB 소령 우샤코프의 증언에 따르면, 레플렙스키는 자신의 상관인 예조프마저 두려워할 정도로 무자비한 인물이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출신의 체키스트. 벨로루시 NKVD를 거쳐 우크라이나 NKVD 수장으로 대숙청 대량작전을 주도했으며, 예조프의 측근으로서 가장 먼저 숙청된 이들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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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4–1936벨로루시 내무인민위원
- 1936–1937국가보안총국 특별부장
- 1937–1938우크라이나 내무인민위원
- 1938NKVD 제6부장, 이어 제3관리국장(수송·통신)
- 1938체포와 처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