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서는 쥐밖에 만날 수 없다" — 반체제 활동은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담아 회고록 제목이 된 말.
소련군 소장(1959) 출신의 반체제 인사로, 크림 타타르인의 귀환 권리 투쟁을 이끌고 모스크바·우크라이나 헬싱키 그룹 창립에 모두 참여한 인권운동가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공개 규탄하고 두 차례 정치적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1964–65, 1969–74)되면서 소련의 정신의학 정치적 남용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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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1929콤소몰 간부 · 우크라이나 콤소몰 중앙위원
1934–1939군사공학 아카데미 및 참모 아카데미 우등 졸업
1939–1943할힌골 전투 · 극동전선 참모 · 여단장
1943–1945독소전: 제10근위군 부참모장 · 제8소총사단 참모장 (부상)
1945–1961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수 · 군사사이버네틱스 학과장 (1959 소장 진급)
1978년 5월 폐쇄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말했다: "이런 재판으로는 헬싱키 그룹의 문서가 증언하는 사회의 병폐와 결함을 없앨 수 없습니다."
입자가속기 물리학자에서 소련 최초의 인권감시 조직을 세운 반체제 운동가로 선 인물. 1956년 당 회의에서 스탈린과 베리야를 '권력을 쥔 살인자'라 칭해 제명·해고당했고, 그로부터 20년 뒤인 1976년 5월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인권 조항 이행을 감시하는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을 창립했다. 이는 소련 스스로 서명한 제3바스켓의 약속을 내부에서 뒤집어 맞대결시키는 일이었다. 1977년 2월 체포되어 7년 수용소와 5년 유형을 선고받고, 1986년 국적을 박탈당한 채 미국으로 추방되어 코넬대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역사의 심판대에》 서문에서: "나는 젊은 시절의 신념과 이상을 결코 배반한 적이 없다. 그것이 아버지의 영향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물론 변했지만, 깊은 확신 없이는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공산주의자 출판인. 1960년대부터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며 사미즈다트 저널 《정치일기》를 편집했고, 20년 가까이 집필한 대작 《역사의 심판대에》에서 스탈린주의의 기원과 결과를 방대한 사료로 분석했다. 이 책으로 1969년 제명되었으나 사회주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1989년 복당 후 인민대표·최고회의 의원·중앙위원을 지냈다. 평생 35권 이상의 저작을 남기며 사회주의 내부에서의 자기비판적 역사학을 개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