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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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차이서

Wilhelm Zaisser
동독 국가기관 공산주의 동독 독일 1893–1958 ○ 자연사

동독 초대 국가보안부 장관으로 1953년 울브리히트 퇴진을 꾀하다 숙청된 공산주의자

겔젠키르헨에서 헌병 하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사가 되었고, 1920년 카프 폭동 때 루르 적군을 지휘했다. 소련 군사정보국(GRU) 요원과 코민테른 군사고문으로 중국 광저우 봉기 등에 관여했고, 스페인 내전에서는 「고메스」라는 이름으로 국제여단을 이끌었다. 1947년 귀국해 사회주의통일당에 들어갔고, 1950년 초대 국가보안부 장관과 정치국원이 되어 슈타지를 키웠다. 1953년 6월 봉기 뒤 헤른슈타트를 제1서기로 세우자고 제안했으나, 울브리히트가 흐루쇼프의 지지를 얻자 7월 장관직과 모든 직위를 잃고 당에서 제명되었다. 번역가로 지내다 1958년 동베를린에서 죽었고, 1990년 뒤에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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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0카프 폭동 때 루르 적군 지휘
  • 1927–1930코민테른 군사고문(중국)
  • 1936–1938스페인 내전 국제여단 지휘(「고메스」)
  • 1950–1953동독 국가보안부 장관, 정치국원
  • 1953모든 직위에서 해임, 당에서 제명

에른스트 볼베버

Ernst Wollweber
동독 국가기관 공산주의 동독 독일 1898–1967 ○ 자연사

전간기 반파시즘 파괴공작을 조직했고 1953~1957년 슈타지를 이끈 공산주의자

하노버주 뮌덴에서 태어나 1918년 수병 반란에 가담했고 1919년 공산당에 들어가 당 군사조직을 이끌었다. 1932~1933년 제국의회 의원을 지냈다. 망명 중 1936~1940년 「볼베버 동맹」을 조직해 파시스트 국가들의 선박에 21건의 파괴공작을 벌였고, 스페인 공화국군에 무기를 댔다. 1946년 귀국해 해운 행정을 맡았다. 1953년 7월 차이서가 물러나 국가보안부가 국가보안청으로 격하되자 그 수장이 되었고, 1955년 11월 다시 국가보안부 장관이 되었다. 울브리히트·호네커와 충돌하고 시르데반 편에 섰다가 1957년 물러났고, 1958년 「분파 활동」으로 중앙위원회에서 쫓겨났다. 1967년 동베를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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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수병 반란 가담
  • 1932–1933제국의회 의원(공산당)
  • 1936–1940「볼베버 동맹」 파괴공작 조직
  • 1953–1955국가보안청장(차관급)
  • 1955–1957국가보안부 장관
  • 1958중앙위원회에서 축출

안톤 아커만

Anton Ackermann
독일 사회주의통일당 공산주의 동독 독일 1905–1973 ✕ 암 투병 중 자살

1945년 공산당 호소문을 쓰고 「독일 특유의 사회주의 길」을 내세운 동독 공산주의자

작센 탈하임의 양말공 집안에서 태어나 1926년 독일 공산당에 들어갔고, 모스크바 레닌 학교를 다녔다. 나치 집권 뒤 지하 활동과 망명을 거쳐 스페인 내전의 국제여단 정치학교를 이끌었고, 모스크바에서 자유독일 방송을 맡았다. 1945년 작센으로 파견된 공산당 선발 그룹을 이끌었고, 1945년 6월 11일 공산당 호소문 초안을 썼다. 1946년 프롤레타리아 독재 없이도 독일에서 사회주의를 세울 수 있다는 「독일 특유의 사회주의 길」을 내세웠으나, 1948년 티토-스탈린 결렬 뒤 이를 철회해야 했다. 외무차관과 대외정보기관 책임자를 지냈고, 1953년 차이서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모든 직책에서 쫓겨났다. 1973년 암 투병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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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독일 공산당 입당
  • 1935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 후보위원
  • 1945작센 파견 공산당 그룹 책임자, 6월 11일 호소문 초안
  • 1946사회주의통일당 중앙서기국원
  • 1949–1953외무차관
  • 1953모든 직책에서 해임
동독 국가기관 공산주의 동독 독일 1907–2000 ○ 자연사

동독 '공포의 대가': 32년간 슈타지를 장악한 국가보안 수장

“사형 찬반에 대한 그 모든 헛소리 — 전부 헛소리다, 동무들. 집행하라! 필요하다면 법정 판결 없이도.” — 1982년, 슈타지 간부들 앞에서

베를린 빈민가 출신의 공산주의 투사로, 1931년 경찰관 살해 후 소련으로 망명해 NKVD 훈련을 받았다. 스페인 내전 참전 뒤 1945년 귀환하여 동독 국가보안부 창설을 주도했고, 1957년 장관에 올라 32년간 9만 명 규모의 감시 기구를 이끌었다. 슈타지는 동독 사회 전반을 통제했고, 제3세계 무장투쟁 세력과 서유럽 극좌 조직 지원으로 냉전기 사회주의권 안보 협력망을 확장했다. 1989년 체제 붕괴로 물러났고 통일 후 1931년 살인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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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KPD 입당
  • 1931뷜로플라츠 경관 살해 후 소련 망명
  • 1936–1939스페인 내전 국제여단 참전 (대위)
  • 1945베를린 귀환, 리히텐베르크 경찰서장
  • 1950국가보안부 차관 겸 국무차관
  • 1957–1989국가보안부 장관 (슈타지 수장)
  • 1976SED 정치국 정위원
  • 1993경관 살해 유죄 판결, 6년형

마르쿠스 볼프

Markus Wolf
동독 국가기관 공산주의 독일민주공화국 독일 1923–2006 ○ 자연사

냉전 정보전의 장기 설계자

1984년 8월 RYaN 회의에서 그는 서방의 핵공격 징후보다 ‘실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마르쿠스 볼프는 나치 박해를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 뒤 독일민주공화국의 대외정보기관을 이끈 공산주의 관료이자 정보 책임자였다. 그는 1952년부터 1986년까지 슈타지 해외정보국 HVA를 지휘하며 서독 정치·군사·경제를 겨냥한 첩보와 공작을 조직했다. 1980년대 초 소련이 핵 선제공격 공포 속에서 RYaN 작전을 확대하자, 볼프는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현장 정보가 실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긴장을 드러냈다. 독일 통일 뒤 그는 해외 망명과 재판을 거쳤고, 자신의 국가보안 활동에 대한 책임과 사회주의의 개혁 가능성을 회고록과 공개 발언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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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3–1933슈투트가르트에서 성장
  • 1933–1943소련 망명, 모스크바와 코민테른 학교에서 수학
  • 1943–1945모스크바 독일인민방송 편집자·방송원
  • 1949–1951독일민주공화국 모스크바 대사관 초대 참사관
  • 1952–1986대외정보기관 IWF와 HVA 국장
  • 1953–1986국가보안부 장관 제1차관
  • 1986–1990퇴임 후 회고록 집필과 개혁 논쟁 참여
  • 1990–2006망명과 재판을 거쳐 베를린에서 사망

하랄트 예거

Harald Jäger

국경 통제관에서 장벽 개방의 명령자로

“내 부하들에게 장벽을 열라고 명령했습니다.”

하랄트 예거는 동독 국가보안부에 복무한 국경 통제 장교로, 국가의 여행 통제와 정보활동을 집행했다. 1989년 11월 9일 그는 상관의 명확한 지시를 받지 못한 채 Bornholmer Straße에 몰린 군중과 폭력 위험에 직면했다. 그는 통제 체계의 일부였지만 그날 밤 장벽을 열어 수천 명의 동독 시민이 서베를린으로 건너게 했다. 이후 그는 동독 체제의 내부 모순과 장벽 붕괴의 자유를 함께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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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3바우첸에서 출생
  • 1961독일 국경경찰 자원 입대
  • 1964–1989국가보안부 여권통제부대 복무
  • 1976–1981국가보안부 법률고등학교 수학, 법학사 취득
  • 1989Bornholmer Straße 국경통과소 부지휘관
  • 1989.11.09상관의 지시 없이 국경 통과소 장벽 개방 명령
  • 1990국가보안부 해체 과정에서 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