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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페트로비치 스코로파츠키

Павло Петрович Скоропадський

독일 점령 하 우크라이나국의 마지막 헤트만

1918년 4월 29일 키예프에서 전우크라이나 지주대회가 만장일치로 '헤트만 만세!'를 외치며 파울로 스코로파츠키를 우크라이나의 헤트만으로 추대했다.

코사크 헤트만 가문의 후예이자 제정 러시아 군단장으로 1차 세계대전을 치른 귀족 장군. 1918년 4월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이후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독일군의 후원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중앙라다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고 우크라이나국의 헤트만으로 즉위했다. 8개월간의 집권기 동안 우크라이나 과학아카데미와 국립대학을 세우고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나, 대지주 중심의 토지 정책과 독일 점령군의 곡물 강제 징발이 농민의 광범한 저항을 불렀다. 1918년 11월 독일 패전과 함께 페틀류라가 이끈 반헤트만 봉기에 밀려 퇴위했고,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나치 협력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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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93근위 기병연대 장교 임관
  • 1904–1905러일전쟁에서 코사크 부대 지휘, 훈장 수훈
  • 1912소장 승진, 니콜라이 2세의 시종무관
  • 1914–1916제1차 세계대전에서 기병사단 지휘, 중장 승진
  • 1917제34군단장, 우크라이나화하여 제1우크라이나군단으로 개편
  • 1917.10자유코사크 총사령관(오타만)으로 선출
  • 1918.04–12우크라이나국 헤트만
  • 1919–1945독일 망명, 헤트만 운동 지도

시몬 바실리요비치 페틀류라

Симон Васильович Петлюра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을 이끌었으나 유대인 학살의 책임 논쟁에 휩싸인 독립운동가

러시아의 운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운명을 떼어놓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가 패배하면 그 재앙은 우크라이나에도 미칠 것입니다.

폴타바 출신의 사회민주주의 언론인으로, 1917년 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를 시작으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군 총사령관과 집정내각(디렉토리야) 수반을 지냈다. 볼셰비키·백군·폴란드 사이에서 독립을 수호하려 싸웠으나 1920년 패퇴 후 폴란드, 이어 파리로 망명했다. 그의 군대 휘하에서 약 5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으며, 페틀류라가 이를 막지 못했는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는지는 오늘날까지 논쟁의 대상이다. 1926년 파리에서 유대인 아나키스트 숄롬 슈바르츠바르트에게 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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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0–1917우크라이나 혁명당(RUP)·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USDRP) 활동, 언론인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운동 주도
  • 1917.05–12중앙라다 군사사무총서기, 우크라이나 군 편성 주도
  • 1918.01–03하이다마키 코쉬 지휘관, 키예프 아르세날 봉기 진압
  • 1918.11–1919.02우크라이나 집정내각(디렉토리야) 군사총책
  • 1919.02–1920.12집정내각 수반 겸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군 총사령관
  • 1920.04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 체결, 대볼셰비키 동맹
  • 1924–1926파리 망명정부에서 주간지 『트리주브(Тризуб)』 발행

볼로디미르 빈니첸코

Володимир Винниченко

중앙라다 총서기국과 디렉토리아를 이끈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의 작가

당신들이 러시아에 노동자·농민 독재를 세웠듯,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우크라이나어의 독재를 세워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당의 작가로 1917년 중앙라다 총서기국을 이끌고 1918년 디렉토리아 초대 의장으로 키예프를 되찾았다. 소비에트와의 협상을 주장하다 페틀류라와 갈라져 1919년 사임했고 프랑스에서 1951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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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 창립
  • 1917중앙라다 부의장 겸 총서기국 초대 의장(내무 겸임)
  • 1918.01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총리, 곧 사임
  • 1918.12디렉토리아 의장으로 키예프 탈환
  • 1919–1920회고록 「민족의 재생」 집필
  • 1920우크라이나 SSR 인민위원회 부의장 겸 외무인민위원, 곧 재망명

스테판 반데라

Степан Андрійович Бандера
민족주의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1909–1959 ✕ 독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정치가이자 OUN-B 지도자다.

반데라는 폴란드령 동부 갈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지하조직 활동을 이끌었다. OUN 지도부였던 그는 1934년 폴란드 내무장관 브로니스와프 피에라츠키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1940년 OUN이 분열하자 급진파 OUN-B를 이끌었고,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 직후 리비우에서 선포한 우크라이나 국가가 나치 독일과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독일 당국은 그를 구금하고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보냈으며, 전후 서독에서 OUN-B 망명 조직을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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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OUN)에 가입했다.
  • 1931OUN 선전 책임자가 되었다.
  • 1933OUN의 폴란드 국내 지도부를 이끌었다.
  • 1934폴란드 내무장관 암살을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고,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 1940OUN이 분열한 뒤 OUN-B 파벌의 지도자가 되었다.
  • 1941–1944독일 당국에 체포되어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 1945OUN 해외 조직을 이끌었다.
  • 1959뮌헨에서 KGB 요원 보단 스타신스키에게 독살당했다.

니키포르 흐리호리우

Никифор Григор'єв
독립 활동 반혁명 세력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 c.1885–1919 ✕ 살해

적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반란과 포그롬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아타만

5월 반란을 선포한 「우니베르살」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인민이여! 권력을 직접 잡으라. 개인의 독재도, 당의 독재도 없어야 한다"고 외쳤다.

1919년 봄 소비에트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우크라이나 아타만으로 5월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부대는 옐리사베트흐라드 등에서 유대인을 학살했다. 7월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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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1–1907제국군에 자원입대해 러일전쟁에 참전하고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 3개를 받았다.
  • 1914–19161차 세계대전에서 남서부 전선 장교로 활약하며 참모대위까지 진급했다.
  • 1918헤르손 지역에서 빈농 의용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독일 점령군과 헤트만 정권에 맞섰다.
  • 1918–1919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디렉토리아)의 헤르손 사단장을 맡았다.
  • 1919.02적군으로 전향해 1차 자드니프롭스카 여단, 이어 제6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단을 지휘했고 4월 오데사를 점령했다.
  • 1919.05적군에 맞선 그리호리우 봉기를 주도했다.
  • 1919.07마흐노 부대에 사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