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반란과 포그롬으로 돌아선 우크라이나 아타만
5월 반란을 선포한 「우니베르살」에서 그는 “우크라이나 인민이여! 권력을 직접 잡으라. 개인의 독재도, 당의 독재도 없어야 한다”고 외쳤다.
1919년 봄 소비에트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우크라이나 아타만으로 5월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부대는 옐리사베트흐라드 등에서 유대인을 학살했다. 7월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주요 활동과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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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19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국가기관헤르손 사단장
군사·지휘 -
1919
독립 활동대표
군사·지휘 -
1919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국가기관제6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단장
군사·지휘
경력 연표
- 1901–1907제국군에 자원입대해 러일전쟁에 참전하고 성 게오르기 십자훈장 3개를 받았다.
- 1914–19161차 세계대전에서 남서부 전선 장교로 활약하며 참모대위까지 진급했다.
- 1918헤르손 지역에서 빈농 의용대를 이끌고 오스트리아·독일 점령군과 헤트만 정권에 맞섰다.
- 1918–1919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디렉토리아)의 헤르손 사단장을 맡았다.
- 1919.02적군으로 전향해 1차 자드니프롭스카 여단, 이어 제6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단을 지휘했고 4월 오데사를 점령했다.
- 1919.05적군에 맞선 흐리호리우 봉기를 주도했다.
- 1919.07마흐노 부대에 사살되었다.
관련 역사 사건
- 1914–19181차 세계대전남서부 전선 장교1차 세계대전에서 남서부 전선 장교로 복무했다.
- 1917–1921우크라이나 혁명과 전쟁적군과의 동맹을 뒤집은 우크라이나 아타만1919년 4월 소비에트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5월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부대는 옐리사베트흐라드에서 유대인 1,500명 이상을 학살했다. 7월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 1918–1922내전과 열강의 개입적군과의 동맹을 뒤집은 우크라이나 아타만1919년 4월 소비에트군 편에서 오데사를 점령한 뒤 5월 반란을 일으켰고, 그의 부대는 옐리사베트흐라드에서 유대인 1,500명 이상을 학살했다. 7월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혁명과 독립전쟁
러시아 제국군의 하급 장교로 1918년 헤트만에 맞선 봉기에 참여해 헤르손 지방의 아타만이 되었고, 디렉토리아의 지휘를 받다가 1919년 2월 부대를 이끌고 소비에트군에 합류했다. 3월 헤르손과 니콜라예프를 점령하고 4월 6일 프랑스군과 그리스군이 철수하는 오데사에 입성해 남부의 연합국 개입을 끝냈다. 그러나 5월 7일 「우니베르살」을 발표하고 곡물 징발과 외지인 관료를 겨눠 소비에트 권력에 반란을 일으켰으며, 그의 부대는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옐리사베트흐라드에서 유대인 1,500명 이상을 학살하는 등 봉기 중 수십 건의 포그롬을 저질렀다. 봉기가 5월 말 진압된 뒤 마흐노와의 연합을 꾀했으나, 7월 27일 센토베 마을의 회담에서 마흐노 측에 사살되었다. 같은 이름의 사회주의 정치인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출생연도는 자료마다 달라 확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