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수술을 앞둔 병상에서 아내 소피야 알렉세예브나에게 "토요일에 새 회진이 있을 예정이다. 수술을 거부당하지나 않을까 두렵다"고 썼다.
1885년 러시아령 투르키스탄 피슈페크(현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태어나 1925년 모스크바에서 사망한 혁명가이자 소비에트 군사 지도자다. 1904년 페테르부르크 폴리테크닉에 입학해 사회민주노동당에 가입했고, 1905년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 직물 총파업을 이끌고 12월 모스크바 무장봉기에 참가했다. 1907년 체포되어 카토르가형을 선고받고 1909년과 1910년 두 차례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모두 감형되어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고, 1916년 탈출해 1917년 민스크에서 민병대를 지휘했다. 내전기에는 동부전선에서 콜차크를, 남부전선에서 브란겔을 격파하고 크림을 점령했으며, 1924년부터 군사개혁을 추진하다 1925년 1월 혁명군사평의회 의장이 되었다.
홀로 무장해제한 채 러스키섬 사관생도들 앞에 선 라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러시아 땅을 위해 우리는 죽을지언정 그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몰도바 보야르 가문 출신의 러시아 제국군 장교로 1917년 혁명에 합류하여 시베리아와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 수립을 이끈 볼셰비키 군사 지도자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소비에트를 장악하고 자바이칼 전선 사령관으로 그리고리 세묘노프의 백군과 싸웠으며, 블라디보스토크 지하활동과 유격전을 거쳐 1920년 1월 봉기를 조직해 콜차크의 극동 통치를 무너뜨렸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동료들과 함께 증기기관차 화실에서 불태워졌으며, 소련에서 가장 널리 기념된 내전 순교자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