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가오강

高岗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중국 공산주의 중국 중국 1905–1954 ✕ 자살

만주에서 사실상 독자적 권력을 휘둘렀다가 마오의 함정에 걸려 죽음으로 몰락한 당내 2인자

'이 훈장은 후방의 곰보딱지 가오강에게 가야 합니다': 1953년 7월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 훈장을 받으며 펑더화이가 한 말

산시성 유격 근거지에서 출발해 만주(둥베이)의 당·정·군을 총괄한 중국공산당 초기 지도자로, 1949년 중앙인민정부 부주석이 되었다. 한국전쟁 시기 둥베이 군구 사령원으로서 중국인민지원군의 후방 기지와 보급망 전반을 책임졌으며, 펑더화이조차 '이 훈장은 곰보딱지 가오강에게 가야 한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참전의 물질적 토대를 조직했다. 1952년 국가계획위원회 주석으로 발탁되었으나, 류샤오치를 대체하려 한 권력 투쟁이 '가오-라오 반당 연맹'으로 규정되며 실각, 1954년 가택연금 중 수면제로 자살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926중국공산당 입당
  • 1932–1935산시-간쑤 소비에트 지역 창설, 대장정 종착 기지 제공
  • 1941정풍운동 지도소조 위원
  • 1945–1952둥베이국 부서기(1945), 서기(1946), 둥베이 인민정부 주석(1949), 둥베이 군구 사령원 겸 정치위원
  • 1949중앙인민정부 부주석
  • 1950–1953둥베이 변경 방위군 사령원, 중국인민지원군 후방·보급 총책
  • 1952–1954국가계획위원회 주석, 제1차 5개년 계획 주도
  • 1954'가오-라오 반당 연맹'으로 실각, 8월 자살

리셴녠

李先念
중화인민공화국 국가기관 중국 공산주의 중국 중국 1909–1992 ○ 자연사

문화대혁명을 살아남은 재정 책임자, 4인방 체포에 가담하고 국가주석이 된 「팔대 원로」

중앙계획경제를 굳게 믿은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시장화를 막았고, 1989년 천안문 시위에 대한 군사 진압을 열렬히 주장했다.

후베이 목수 출신으로 제4방면군의 정치위원이었고 서로군 궤멸 뒤 살아남았다. 항일전쟁기 후베이의 신4군 제5사단을 세웠고 국공내전 초기 중원 돌파를 이끌었다. 1954년부터 재정부장으로 22년간 경제 운영을 맡았으며 문화대혁명에서도 저우언라이 곁에서 살아남았다. 1976년 4인방 체포에 참여했고 화궈펑의 「양개범시」와 덩샤오핑 사이에서 천윈과 함께 계획경제 우선을 주장했다. 1983~1988년 국가주석을 지냈으며 1989년 강경 진압을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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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1975재정부장
  • 1983–1988중화인민공화국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