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미하일 타리엘로비치 로리스-멜리코프

Михаил Тариелович Лорис-Меликов
러시아 제국 국가기관 제정·백색진영 러시아 제국 아르메니아 1824–1888 ○ 개혁안 폐기 후 은퇴

"마음의 독재"라 불린 아르메니아 출신의 개혁적 내무장관

1881년 3월 13일 아침, 알렉산드르 2세는 로리스-멜리코프의 개혁안에 서명하며 말했다: "나는 승인했다. 그러나 이것이 헌법을 향한 첫걸음임을 스스로 숨기지 않는다." 몇 시간 후 차르는 암살당했다.

아르메니아 귀족 출신으로 캅카스 전쟁과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기병 장군이었으나, 그의 역사적 무게는 군사적 공적보다 정치 개혁에 있다. 1880년 겨울궁전 폭파 사건 이후 전제적 권한을 위임받아 '마음의 독재'로 불린 온건 노선을 펼쳤으며, 혁명 탄압과 동시에 검열 완화·지방 자치·선거 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혁안을 추진했다.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한 1881년 3월 13일 아침, 차르는 로리스-멜리코프의 선거 자문위원회 구상을 승인했으나, 알렉산드르 3세가 즉위 후 콘스탄틴 포베도노스체프의 조언으로 개혁안을 폐기하고 전제정치를 선언했다. 러시아 최초의 헌정 실험을 설계했으나 반동에 좌절된 그는 개혁과 전제의 분기점에서 상실된 개혁의 순간을 상징한다.

상세 이력 보기
  • 1847캅카스로 전속, 체첸·다게스탄 전투 참전
  • 1853–1856크림 전쟁 참전, 바얀두르·바슈카드클라르 전투
  • 1855카르스 지역 사령관
  • 1863–1875테레크주 총독 겸 테레크 카자크군 아타만
  • 1877–1878러시아-튀르크 전쟁 캅카스 전선 사령관, 아르다한·카르스 점령
  • 1879하리코프 임시 총독
  • 1880최고행정위원회 위원장
  • 1880–1881내무장관

보그단 미르자자노비치 크누냔츠

Богдан Мирзаджанович Кнунянц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러시아 아르메니아 1878–1911 ○ 옥사

제2차 대회의 이스크라 다수파, 감옥에서 스러진 캅카스 볼셰비키 선구자

1905년 3월 모스크바 법정에서 차르 체제를 정면으로 고발하는 연설을 했다. 유형지에서 탈출한 후에도 바쿠 지하로 돌아갔고, 결국 바일로프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나고르노-카라바흐 출신의 아르메니아계 볼셰비키. 1897년 '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에 가입하고 1901년 바쿠로 유배된 후 캅카스 사회민주주의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1902년 스테판 샤우먄과 '아르메니아 사회민주주의자 연맹'을 공동 창립했고, 1903년 RSDLP 제2차 대회에서 이스크라 다수파로 서며 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의 현장에 섰다. 1905년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 종신 유형 후 탈출해 슈투트가르트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했다. 바쿠 지하로 돌아와 활동하다 1910년 체포되어 바일로프 감옥에서 32세로 사망했다.

상세 이력 보기
  • 1896페테르부르크 공과대학 입학
  • 1897'노동계급 해방 투쟁 동맹' 가입
  • 1901바쿠로 유배, RSDLP 바쿠·캅카스 연합위원회 위원
  • 1902스테판 샤우먄 등과 '아르메니아 사회민주주의자 연맹' 공동 창립
  • 1903RSDLP 제2차 대회 바쿠 대의원 — 이스크라 다수파(볼셰비키)
  • 1904–1905모스크바에서 체포, 재판에서 반차르 연설;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 위원
  • 1905.12체포되어 종신 유형 선고
  • 1907유형지 탈출, 슈투트가르트 제2인터내셔널 대회 및 헬싱포르스 RSDLP 제4차 협의회 참석
  • 1907–1910바쿠 지하 활동
  • 1910.09체포, 바일로프 감옥 수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