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브세볼로드 세라피모비치 무라홉스키

Всеволод Серафимович Мураховск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6–2017 ↓ 퇴임 1989

고스아그로프롬의 초대 의장

1985년 10월 고르바초프는 6개 농업 부처를 하나로 통합한 국가농공위원회를 구상하며 "몇 년 동안 이 생각을 품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 달 뒤 무라홉스키가 초대 의장에 임명되었으나, 반년 만에 스스로 개편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15세에 붉은 군대에 합류해 노보로시스크 방어전과 만주 작전에서 싸운 전쟁 참전자였다. 스타브로폴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후임 변경주당 제1서기(1978~1985)로 지역 농업과 산업 발전을 이끌며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른 직후 소련 부총리 겸 국가농공위원회 초대 의장으로 발탁되어 6개 농업 관련 부처를 하나로 통합하는 대대적 행정 개편을 단행했으나, 거대 관료 기구의 비효율이 드러나 1989년 기구 폐지와 함께 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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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1989국가농공위원회 의장

빅토르 페트로비치 니코노프

Виктор Петрович Никоно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29–1993 ↓ 해임 1989

고르바초프의 농업 후임자이자 마지막 내부 비판자

1989년 1월 정치국 회의에서 고르바초프에게 반박했다: "농업의 이런 조직 개편들에 지쳤습니다. 농업이 우선순위를 얻지 못하면 프로그램은 실패할 것입니다. 정말 이게 각료회의와 정치국, 그리고 당신, 미하일 세르게예비치에게 이해되지 않습니까?"

마리 자치공화국 제1서기를 12년(1967~1979) 역임한 농학자 출신 당 간부로, 1985년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오르자 농업 담당 중앙위 서기를 이어받았다. 안드로포프 시절 구상된 농업 부흥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고 6개 농업 부처를 통합한 국가농공위원회 창설을 지지했으나, 관료적 통합이 생산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판단한 후 정치국에서 수차례 고르바초프와 충돌했다. 1989년 9월 만 60세로 정치국과 서기국에서 동시 해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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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1958MTS 주임 농학자, 농업학교 교사, 크라스노야르스크 당 기관 근무
  • 1961–1967타타르 주당 제2서기
  • 1967–1979마리 주당 제1서기
  • 1979–1983소유즈셀호즈히미야 의장 · 소련 농업차관
  • 1983–1985러시아 공화국 농업장관
  • 1985–1989중앙위 서기 (농업 담당)
  • 1987–1989정치국 위원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데멘테이

Николай Иванович Дементе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벨라루스 1930–2018 ○ 자연사

연방의 보존과 벨라루스 주권 사이에 선 의장

“내가 권력을 잡고 있었다면 소련은 해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니콜라이 데멘테이는 농업 전문가에서 벨로루시 공산당의 고위 간부와 최고회의 의장으로 올라선 소련·벨라루스 정치가였다. 그는 1990년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국가주권 선언을 주재했지만, 연방을 해체하지 않는 개혁을 지지했다. 1991년 8월 국가비상위원회의 쿠데타를 공개 지지한 뒤 사임하며, 소련 질서의 마지막 국면을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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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1962비쳅스크주 당위원회 강사, 비쳅스크 구역 당위원회 제2서기, 비쳅스크 구역 집행위원회 의장
  • 1974벨로루시 공산당 비쳅스크주위원회 서기
  • 1977벨로루시 공산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 1979–1989벨로루시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농업 담당
  • 1989–1990소련 최고회의 상무회 의장, 소련 최고회의 부의장
  • 1990–1991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최고회의 의장
  • 1997–2000벨라루스 공화국 국민회의 공화국 평의회 의원
  • 2005회고록 「삶의 교훈」 출간

블라디미르 미그라노비치 몹시샨

Վլադիմիր Միգրանովիչ Մովսիսյան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아르메니아계 1933–2014 ○ 자연사

소련 아르메니아의 마지막 공산당 제1서기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의 미해결을 이유로 소련 공산당 정치국에서 물러났다.

블라디미르 몹시샨은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의 농업·당 관료로 성장한 정치가였다. 1990년 공산당 제1서기와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이 되었지만,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의 해결이 지연되자 정치국을 떠났다. 소련 해체 뒤에도 난민 행정과 국방, 농업 정책에 관여하며 독립 아르메니아의 국가 건설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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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1965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여러 지역의 수석 수의사
  • 1969–1973아르타샤트 지구당 제1서기
  • 1975–1978아르메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농업부장
  • 1984–1990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각료회의 제1부의장
  • 1990아르메니아 공산당 중앙위원회 제1서기 ·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
  • 1991소련 농업·식량부 차관
  • 1996–1999아르메니아 농업부 장관

예고르 세묘노비치 스트로예프

Егор Семёнович Строев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러시아 1937–

고르바초프 시기 마지막 농업 정치국원, 페레스트로이카 농정의 실무 책임자

1991년 8월, 국가비상사태위원회(GKChP)가 발족되자 스트로예프는 이를 승인하기를 거부했다 — 페레스트로이카기 정치국원 중 쿠데타에 동조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1937년 오룔 지역 집단농장의 목동으로 일을 시작해 미추린스크 원예대학을 졸업한 농업 테크노크라트다. 30년간 오룔 주 당조직에서 성장하여 1985년 주당 제1서기가 되었고, 1989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중앙위원회 농업 담당 비서로 발탁되어 1990년 정치국 위원에 올랐다. 농공복합체 개편과 식량 위기 대응 등 페레스트로이카기 농업 정책의 최고 실무 책임자로 활동했으며, 1991년 8월 쿠데타 당시 국가비상사태위원회 승인을 거부했다. 소련 해체 후 오룔 주지사(1993~2009)와 연방평의회 의장(1996~2001)을 지내며 탈소비에트 러시아 지역 엘리트로 재편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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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1984오룔 주당위원회 농업 담당 비서
  • 1984–1985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지도원
  • 1985–1989오룔 주당위원회 제1서기
  • 1986–1991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 1989–1991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비서 (농업)
  • 1990–1991소련 공산당 정치국 위원
  • 1993–2009오룔 주지사
  • 1996–2001러시아 연방평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