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보리스 레오니도비치 파스테르나크

Борис Леонидович Пастернак
반체제 인사 소련 러시아 1890–1960 ○ 자연사

《닥터 지바고》와 거부된 노벨상의 시인

《닥터 지바고》 사건은 출판·국제정치·작가의 생존이 한 작품을 둘러싸고 충돌한 장면이다.

러시아 시와 번역의 거장이자 소설 《닥터 지바고》의 작가다. 이탈리아에서 먼저 출간된 소설과 1958년 노벨문학상은 소련 당국의 격렬한 비난을 불렀고, 그는 압력 아래 수상을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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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첫 시집 《구름 속의 쌍둥이》 발표
  • 1957《닥터 지바고》 이탈리아에서 첫 출간
  • 1958노벨문학상 수상 뒤 압력 아래 거부

페트로 그리고리예비치 그리고렌코

Пётр Григорьевич Григоренко
소련 국가기관 반체제 인사 소련 우크라이나 1907–1987 ○ 뇌졸중

소련 장성에서 인권·민족 권리 옹호로 전향한 반체제 인사

"지하에서는 쥐밖에 만날 수 없다" — 반체제 활동은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을 담아 회고록 제목이 된 말.

소련군 소장(1959) 출신의 반체제 인사로, 크림 타타르인의 귀환 권리 투쟁을 이끌고 모스크바·우크라이나 헬싱키 그룹 창립에 모두 참여한 인권운동가다.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공개 규탄하고 두 차례 정치적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1964–65, 1969–74)되면서 소련의 정신의학 정치적 남용을 상징하는 사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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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7–1929콤소몰 간부 · 우크라이나 콤소몰 중앙위원
  • 1934–1939군사공학 아카데미 및 참모 아카데미 우등 졸업
  • 1939–1943할힌골 전투 · 극동전선 참모 · 여단장
  • 1943–1945독소전: 제10근위군 부참모장 · 제8소총사단 참모장 (부상)
  • 1945–1961프룬제 군사아카데미 교수 · 군사사이버네틱스 학과장 (1959 소장 진급)
  • 1961–1964정치 연설로 해임 · 극동 좌천 · '레닌주의 부활 동맹' 결성
  • 1964–1974정치적 정신병원 강제 수감 (1964–65, 1969–74)
  • 1976–1977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 우크라이나 헬싱키 그룹 창립 멤버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반체제 인사 소련 러시아 1918–2008 → 추방 1974

수용소 군도를 세계에 증언한 죄수 Щ-854

1945년 2월 9일, 동프로이센 전선. 적 포대를 탐지해 훈장을 받은 포병 대위가 부대 본부에서 체포됐다. 전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파한(Пахан)'이라는 은어로 스탈린을 조롱한 죄였다. 군복의 계급장이 뜯겨나갔고, 루뱐카로 향하는 호송열차에 올랐다.

포병 대위로 참전 중 사신(私信)에서 스탈린을 비꼬았다가 8년형을 받았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로 해빙의 상징이 되었고, 『수용소군도』로 노벨상과 국외 추방(1974)을 함께 얻었다. 1994년 귀국해 러시아에서 죽었다. 자신이 증언한 체제보다 17년을 더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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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5–1953사신 검열로 체포, 수용소 8년(마르피노·에키바스투즈)
  • 1953–1956카자흐스탄 유형, 교사 생활
  • 1962『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흐루쇼프의 재가로 출간
  • 1970노벨문학상
  • 1973–1974『수용소군도』 파리 출간, 국외 추방
  • 1976–1994미국 버몬트 은둔, 1994년 귀국

안드레이 드미트리예비치 사하로프

Андрей Дмитриевич Сахаров
소련 국가기관 반체제 인사 소련 러시아 1921–1989 → 유형 1980

수소폭탄을 만들고, 체제에 등을 돌린 물리학자

1986년 12월 15일 고리키의 아파트에 전화가 놓였고, 다음 날 고르바초프가 직접 전화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오십시오." 사하로프는 감사 인사와 동시에 정치범 석방을 꺼냈다. 7년 가까운 유형이 끝났지만 그는 양심의 의제를 내려놓지 않았다.

소련 수소폭탄의 아버지이자, 그 특권을 내려놓은 양심. 결정적 이탈은 1967년 7월 21일 미사일방어 배치에 반대한 비밀 서한과, 1968년 5월 완성되어 지하 출판으로 유통된 「진보, 평화공존, 지적 자유에 관한 성찰」을 거치며 이루어졌고, 그 후 무기 연구에서 배제되었다. 그해 8월 체코슬로바키아 진입도 비판했다.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비판하다 1980년 고리키로 유형당했다. 1986년 고르바초프의 전화 한 통으로 돌아와, 인민대의원 자격으로 연단에서 싸우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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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8–1953수소폭탄 개발 참여, 1953년 실험 성공
  • 195332세에 과학아카데미 정회원
  • 1961대기권 실험 반대를 흐루쇼프에게 직접 진언
  • 1968『진보, 평화공존, 지적 자유』 지하 유통
  • 1975노벨평화상(출국 불허, 아내가 대리 수상)
  • 1980–1986고리키 유형
  • 1989인민대의원, 12월 사망

유리 표도로비치 오를로프

Юрий Фёдорович Орлов
소련 국가기관 반체제 인사 소련 러시아 1924–2020 → 국적 박탈 · 강제 추방 1986

소련이 서명한 헬싱키 인권 약속을 내부에서 감시한 물리학자

1978년 5월 폐쇄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말했다: "이런 재판으로는 헬싱키 그룹의 문서가 증언하는 사회의 병폐와 결함을 없앨 수 없습니다."

입자가속기 물리학자에서 소련 최초의 인권감시 조직을 세운 반체제 운동가로 선 인물. 1956년 당 회의에서 스탈린과 베리야를 '권력을 쥔 살인자'라 칭해 제명·해고당했고, 그로부터 20년 뒤인 1976년 5월 헬싱키 최종의정서의 인권 조항 이행을 감시하는 모스크바 헬싱키 그룹을 창립했다. 이는 소련 스스로 서명한 제3바스켓의 약속을 내부에서 뒤집어 맞대결시키는 일이었다. 1977년 2월 체포되어 7년 수용소와 5년 유형을 선고받고, 1986년 국적을 박탈당한 채 미국으로 추방되어 코넬대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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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2–1956보안 원자력 연구소(훗날 이테프) 물리학자
  • 1956스탈린·베리야를 격렬히 비판, 당 제명과 해고
  • 1956–1972예레반 물리연구소, 1963년 이학박사
  • 1968아르메니아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
  • 1973소련 최초 국제앰네스티 그룹 창립 참여
  • 1976.05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창립, 초대 의장
  • 1977–1986체포, 7년 수용소와 5년 유형 선고
  • 1986국적 박탈·미국 추방, 코넬대 교수

안드레이 도나토비치 시냡스키

Андрей Донатович Синявский
반체제 인사 소비에트 러시아 1925–1997 ○ 자연사

『노비 미르』의 비평가에서 반체제 운동의 상징이 된 아브람 테르츠

1966년 2월 재판에서 시냡스키는 무죄를 주장했다 — 소비에트 정치 재판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역사가 프레드 콜먼은 이 재판을 "현대 소비에트 반체제 운동의 탄생"이라 불렀다.

소비에트 문학학자, 비평가, 작가. 필로로기야 학위 후보(1952년)로, 고리키 세계문학연구소 연구원 및 모스크바 국립대·예술극장 학교 강사였다. 알렉산드르 트바르돕스키의 『노비 미르』에서 주요 비평가로 활약했으며, 당시 가장 자유주의적인 소비에트 합법 출판물이었다. 아브람 테르츠 필명으로 서방에 풍자 소설과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란 무엇인가」(1959)를 발표했다. 1966년 율리 다니엘과 함께 순수 창작물로만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소비에트 작가가 되었고, 이 재판은 근대 소비에트 반체제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6년간 수용소 복역 후 1973년 프랑스로 망명, 소르본에서 러시아 문학 교수로 재직하며 『신탁시스』를 창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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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49모스크바 국립대 문헌학부 졸업
  • 1952필로로기야 학위 후보 취득; IMLI 연구원
  • 1955–1965아브람 테르츠 필명으로 서방에 소설·에세이 발표
  • 1950년대 후반–1965『노비 미르』 주요 문학비평가
  • 1960소비에트 작가동맹 가입
  • 1966반소비에트 선동 혐의로 7년형 선고; 두브라블라크 수감
  • 1971조기 석방
  • 1973–1997소르본 대학 러시아 문학 교수; 『신탁시스』 공동 창간

조레스 알렉산드로비치 메드베데프

Жорес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едведев
반체제 인사 소련 그루지야 1925–2018 ○ 자연사

스탈린의 유대인 추방 계획을 기록 부재로 반박한 반체제 생물학자

1970년 정신병원 석방 후: "어떤 정직하고 원칙 있는 학자도 그러한 근거로 정신병원 무기한 수용이라는 탄압이 가능하다면 자신의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소련의 생물학자이자 반체제 역사가. 트빌리시에서 태어나 티미랴제프 농업아카데미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노화의 분자생물학적 기전을 연구했다. 1962년 리센코의 유사과학을 폭로한 사미즈다트 원고 「생물학과 개인숭배」를 집필했고, 이는 1969년 《리센코의 흥망》으로 미국에서 출간되며 국제적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 강제로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가 사하로프·솔제니친 등의 항의로 석방되었고, 1973년 런던 체류 중 소련 시민권을 박탈당했으며, 말년의 저작 《스탈린과 유대인 문제》(2003)에서는 의사들의 음모 사건이 유대인 추방 계획으로 이어지려 했다는 통설을 기록 부재로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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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트빌리시 출생, 프랑스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
  • 1943붉은 군대 징집, 타만 반도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제대
  • 1950티미랴제프 농업아카데미 졸업, 식물생리학 후보학위 취득
  • 1962사미즈다트 「생물학과 개인숭배」로 티미랴제프 아카데미에서 해고
  • 1963–1969오브닌스크 의학방사선연구소 분자방사선생물학 연구실장
  • 1970강제 정신병원 수용, 국내외 학자·작가들의 항의로 3주 만에 석방
  • 1973런던 국립의학연구소 초청 연구 중 소련 시민권 박탈, 영국 망명
  • 1990–1992소련 시민권 회복, 체르노빌 출입금지구역 방사선생물학 조사 참여

로이 알렉산드로비치 메드베데프

Ро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Медведев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심판한 역사가

《역사의 심판대에》 서문에서: "나는 젊은 시절의 신념과 이상을 결코 배반한 적이 없다. 그것이 아버지의 영향이며,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생각은 물론 변했지만, 깊은 확신 없이는 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소련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이자 공산주의자 출판인. 1960년대부터 반체제 운동에 참여하며 사미즈다트 저널 《정치일기》를 편집했고, 20년 가까이 집필한 대작 《역사의 심판대에》에서 스탈린주의의 기원과 결과를 방대한 사료로 분석했다. 이 책으로 1969년 제명되었으나 사회주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고, 1989년 복당 후 인민대표·최고회의 의원·중앙위원을 지냈다. 평생 35권 이상의 저작을 남기며 사회주의 내부에서의 자기비판적 역사학을 개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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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트빌리시 출생, 인도 공산주의자 M. N. 로이의 이름을 따서 명명
  • 1946–1951레닌그라드대 철학부 우등 졸업, 콤소몰 서기 활동
  • 1958교육학 후보학위 취득 (모스크바 국립사범대)
  • 1960년대사미즈다트 저널 《정치일기》 편집, 반체제 운동 참여
  • 1969《역사의 심판대에》 집필로 공산당 제명
  • 1970사하로프·투르친과 브레즈네프 지도부에 개방서한 발표
  • 1989–1991소련 인민대표·최고회의 의원, 복당 후 중앙위원
  • 1991–2002러시아연방 노동자사회당 공동의장

안드레이 알렉세예비치 아말리크

Андрей Алексеевич Амальрик
반체제 인사 소련 러시아 1938–1980 ✕ 교통사고

1984년 소련 붕괴를 예견한 역사가이자 극작가

“이 재판은 나에게 두려움조차 일으키지 못한다. 이미 시작된 사상 해방의 과정은 되돌릴 수 없다.” — 1970년 11월 스베르들롭스크 법정 최후 진술

역사가이자 부조리극 작가로, 「소련은 1984년까지 존속할 것인가」(1970)에서 소련 체제의 내재적 붕괴를 예견했다. 반체제 활동으로 두 차례 수감, 1976년 강제 이주 후 서방에서 저술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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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9–1963모스크바 국립대학교 역사학부 재학, 노르만 기원론 학위논문으로 퇴학
  • 1963–1965부조리극 희곡 창작 및 아방가르드 미술 수집
  • 1965–1966무위도식 혐의로 체포, 시베리아 톰스크주 유형 2년 6개월 선고
  • 1966–1968조기 석방 후 모스크바 귀환, 노보스티 통신사 프리랜서 근무
  • 1969「소련은 1984년까지 존속할 것인가」 집필 및 해외 출판
  • 1970–1975반소 선전 혐의 체포·수감, 3년 노동교화형 후 추가 3년형, 항의 끝에 마가단 유형으로 감형
  • 1976모스크바 헬싱키 그룹 구상 참여, 강제 이주로 네덜란드행
  • 1976–1980위트레흐트대 연구원, 미국 강연, 프랑스 저술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