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체렌도르지

Цэрэндорж
몽골 국가기관 공산주의 몽골 몽골 1868–1928 ○ 재임 중 병사

몽골 인민공화국 초대 총리, 구체제의 외교관

1924년 9월 23일 총리 체렌도르지가 의장을 맡은 헌법 기초위원회가 설치되었고, 같은 해 11월 26일 첫 대후랄이 6장 50조의 헌법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헌법은 몽골 최초로 공화정을 규정했다.

1868년 헤를렌 바얀울란에서 제브춘담바 후툭투의 대샤비 속민으로 태어났다. 몽골어·만주어·중국어·러시아어를 익혀 1885~1911년 허레 만주 행정청의 서기와 통역관으로 일했고, 1911년 독립 후 외무부에 들어가 1913~1915년 차관, 1915~1919년 수석장관을 지냈다. 1919년 중국 점령기에 자치 철회 문서에 서명했고, 1921년 혁명 후 인민정부의 외무차관이 되었다. 1923년 총리로 임명되어 1924년 헌법 기초위원회를 이끌고 인민공화국 초대 총리가 되었다. 1926년 이후 소련의 통제가 강화되자 사유재산 폐지와 불교 탄압에 저항했으며, 1928년 재임 중 병사했다. 사망일은 2월 13일설과 11월 13일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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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85–1890허레 만주 행정청 서기
  • 1890–1904러시아 영사관 통역학교 교사
  • 1904–1911허레 만주부 중국어 통역관(6품)
  • 1913–1915자치 몽골 외무차관
  • 1915–1919외무부 수석장관
  • 1923–1928몽골 총리(1924년부터 인민공화국 총리)

단잔

Данзан
몽골인민당·인민혁명당 공산주의 몽골 몽골 1885–1924 ✕ 총살 · 1962년 복권

초대 당 의장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처형된 창당 공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체포된 그는,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하루도 못 되어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1919년 몽골인민당 창립에 참여했고, 1921년 혁명 뒤 초대 중앙위원회 의장과 재무장관을 지내며 초기 인민정부 수립을 이끌었다. 1922년 총리 보도를 숙청·처형하는 데 앞장섰다. 제한된 자본주의와 소련 고문 축소를 주장하다 코민테른 좌파와 충돌했고, 1924년 8월 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몰려 하루 만에 체포·총살됐다. 그 숙청이 당을 비자본주의 노선과 공화국으로 돌려세우는 분수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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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동(東) 후레' 그룹 결성, 몽골인민당 창당 참여
  • 1920모스크바 방문 대표단으로 레닌 접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의장 선출 (3–9월)
  • 1921–1922재무장관
  • 1922보도 총리의 숙청·처형 주도
  • 1923중앙위원회 상임위원회 위원
  • 1924제3차 당대회에서 '부르주아'로 규탄·처형

수흐바타르

Сүхбаатар
몽골 국가기관 공산주의 몽골 몽골 1893–1923 독살설 · 병사설, 미확정

1921년 몽골 인민혁명의 군사 지도자, 사후에 '혁명의 아버지'로 정전화됐다

1921년 2월 인민유격대 총사령관에 임명되어 3월 캬흐타를 점령하고 7월 6일 후레에 입성했으며, 7월 11일 새 정부에서 군사부 장관이 됐다. 이 임명을 1922년 7월로 적는 몽골어권 기록도 있다.

몽골의 혁명가이자 몽골인민당 창립 성원이며, 1921년 혁명에서 인민유격대를 이끌어 후레(오늘날 울란바타르)에 입성했다. 가난한 아랫(평민) 출신으로 활자공과 역참 마부로 일했고, 1919년 후레의 반중국 지하조직에 참여했다. 1920년 소련 방문에 나섰고 1921년 캬흐타에서 총사령관으로 확정됐으며, 같은 해 7월 군사부 장관이 됐고 11월 모스크바에서 레닌을 만났다. 사인은 확정되지 않았고, 사후 신격화 경위도 주요 논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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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1920후레의 지하 반중국 조직에 참여
  • 1920–1921몽골인민당 대원으로 소련 방문
  • 1921인민유격대 총사령관, 캬흐타 점령과 후레 입성
  • 1921–1923군사부 장관 겸 총사령관

초이발산

Чойбалсан
몽골 국가기관 공산주의 몽골 몽골 1895–1952 ○ 자연사

몽골 혁명과 권력 집중

1945년 8월 스탈린에게 보낸 축전에서, 몽골과 소련 인민의 우정은 영원히 불멸하리라고 다짐했다.

몽골의 1921년 혁명에 참여한 군사·정치 지도자다. 소련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권력을 집중했고 1930년대 후반 대규모 숙청을 이끌었다. 그의 지도기는 국가 기반 형성과 정치·종교적 억압을 함께 살펴야 하는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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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4–1928인민혁명군 총사령관
  • 1928–1930소후랄 상임위원회 의장
  • 1930외무장관
  • 1935–1939제1부수상
  • 1936몽골 인민공화국 원수 칭호
  • 1939–1952수상 (정부 수반)
  • 1939할힌골 전투에서 몽골군 지휘

담바도르지

Дамбадорж
몽골인민당·인민혁명당 공산주의 몽골 몽골 ?–1934 모스크바에서 사망, 중독 의혹 미확인

단잔 숙청에 가담하고 우경으로 몰려 밀려난 몽골인민혁명당 지도자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 세력으로 몰아 체포·처형했고, 그 뒤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몽골의 혁명가이자 언론인으로, 1921년 제1차 당대회에서 몽골인민당 중앙위원회에 선출되어 서기와 부의장을 지냈고 1923~1928년에는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을 맡았다. 1924년 제3차 당대회에서 좌파의 린치깅 엘베그도르지와 함께 온건파 솔린 단잔을 부르주아로 몰아 체포·처형하는 데 가담했고, 이후 당 우파를 이끌며 신경제정책을 본뜬 노선을 폈다. 1928년 제7차 당대회에서 '우경'으로 제명되어 모스크바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로 밀려났으며 1934년 6월 그곳에서 사망했다. 『아르딘 에르흐』, 『위넨』과 잡지 『몽골 아르딘 남』의 초대 편집인이자 엥겔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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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8–1920나이슬레l 후레와 히악트에서 전신·철도 통신 노동자
  • 1920가을부터 애국자 운동에 참여
  • 1921제1차 당대회에서 중앙위원회 선출, 임시정부 대외관계부 관료; 3월 중앙위원회 대행 의장
  • 1921–1923중앙위원회 서기; 1922년 1~3월 부의장, 3월 15일~1923년 1월 12일 의장
  • 1921서부 국경 담당 전권 대표로 백위군과 싸우고 서부 국경 정부·인민당 위원회 수립에 참여
  • 1924–1928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의장 (1924년 8월 31일~1928년 10월 27일)
  • 1928–1929소련 주재 몽골 대사관 무역대표; 1929~1932년 모스크바 국민경제고등학교 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