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에른스트 톨러

Ernst Toller

바이에른 혁명에 참여한 독일 유대계 표현주의 극작가

제1차 세계대전에 자원입대해 베르됭 전투에서 부상한 뒤 1917년 제대했고, 전쟁 경험을 거쳐 평화주의자가 되어 독일독립사회민주당에 가입했다. 1919년 4월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대통령을 엿새간 맡고 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했으며,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대표 희곡들을 썼다. 나치 집권 뒤 망명해 반나치 활동을 이어갔고 1939년 뉴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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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4독일군에 자원입대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다.
  • 1917전쟁 중 부상과 건강 악화 뒤 군에서 제대하다.
  • 1919독일독립사회민주당원으로 바이에른 레테 공화국 지도부에 참여하고, 4월 6~12일 대통령을 맡다.
  • 1919공화국의 무장 저항에 참여한 혐의로 반역죄 5년형을 선고받다.
  • 1925석방되어 바이에른에서 추방되고 베를린으로 가다.
  • 1933나치 집권 뒤 독일을 떠나 스위스·프랑스·영국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다.

서사극과 '낯설게 하기'로 연극을 계급투쟁의 무기로 만든 마르크스주의 극작가

내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희곡들을 이해했다 — 마르크스야말로 내 희곡의 유일한 관객이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주의 극작가이자 서사극의 창시자였다. 1920년대 후반 마르크스주의를 수용한 후, 감정적 몰입을 거부하고 관객의 비판적 성찰을 이끌어내는 '낯설게 하기'와 변증법적 연극론을 정립했으며, 《서푼짜리 오페라》·《억척어멈과 그 자식들》·《사천의 선인》 같은 작품들로 자본주의와 전쟁을 무대 위에서 해부했다. 1933년 나치를 피해 스칸디나비아와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했고, 1947년 HUAC 조사 후 유럽으로 돌아와 1949년 동베를린에 헬레네 바이겔과 함께 베를리너 앙상블을 창립해 전후 세계 연극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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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밤의 북소리』로 클라이스트 상 수상
  • 1924베를린으로 이주, 도이체스 극장 연극부 조수
  • 1928『서푼짜리 오페라』 초연, 1920년대 베를린 최대 흥행작
  • 1933나치 독일을 떠나 15년간의 망명 시작
  • 1947할리우드에서 HUAC에 증언, 다음날 미국을 떠남
  • 1949헬레네 바이겔과 동베를린에 베를리너 앙상블 창립
  • 1954스탈린 평화상 수상

프리츠 젤프만

Fritz Selbmann
동독 국가기관 공산주의 동독 독일 1899–1975 ○ 자연사

1953년 6월 16일 정부 청사 앞에서 파업 노동자들 앞에 나섰던 동독 중공업 장관

헤센 라우터바흐의 구리 세공인 아들로 열일곱에 광부가 되었고, 1차 세계대전에 나가 1918년 병사평의회에 들었다. 1920년 독립사회민주당, 1922년 공산당에 들어가 작센 지구당 정치 책임자와 제국의회 의원이 되었다. 1933년 체포되어 감옥과 작센하우젠·플로센뷔르크 등 강제수용소에서 나치 시대를 버텼다. 전후 작센 경제·계획장관을 거쳐 독일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고, 동독에서 공업장관과 중공업장관을 지냈다. 1953년 6월 16일 각료의 집 앞 군중 속에 들어가 책상 위에서 연설했으나 야유에 묻혔다. 1958년 울브리히트에게 「일탈적 태도」로 몰려 직책에서 밀려난 뒤 작가로 살았고, 1975년 동베를린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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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2독일 공산당 입당
  • 1932–1933제국의회 의원
  • 1933–1945투옥, 작센하우젠·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 수감
  • 1948–1949독일경제위원회 부위원장
  • 1949–1955공업장관, 중공업장관
  • 1958「일탈적 태도」로 직책에서 밀려남

루트 레발트

Ruth Rewald
독일 독일 1906–1942

스페인 내전 속 아이들의 경험을 기록한 망명 작가

국제여단의 아동시설에서 만난 아이들의 경험을 소설로 옮겼다. 전쟁을 겪는 어린이를 선전의 대상만이 아니라 고유한 기억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다루려 했다.

독일계 유대인 아동·청소년 문학 작가. 나치 집권 뒤 프랑스로 망명했고, 스페인 내전 중 국제여단이 세운 에른스트 텔만 아동시설에서 활동했다. 아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네 명의 스페인 소년』을 집필했다. 1942년 아우슈비츠로 강제 이송된 뒤 살해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정확한 사망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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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5–1929베를린과 하이델베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학위 없이 중단했다.
  • 1931아동 도서 연작 「어린이 나라의 해와 비」에 첫 이야기들을 발표했다.
  • 1932베를린 노동자 아이들의 삶을 다룬 『뮐러 거리, 오늘의 소년들』을 출간했다.
  • 1934파리 망명 중 쓴 청소년 소설 『멕시코 소년 얀코』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출간되었다.
  • 1937리자 테츠너의 주선으로 『차오와 징링, 중국의 아이들』이 스위스 노동조합 신문에 실렸다.
  • 1937–1938국제여단 편에서 내전을 다룬 아동·청소년 도서를 준비하기 위해 스페인을 취재했다.
  • 1938연말에 『네 명의 스페인 소년』 원고를 완성했으나 이 작품은 1987년에야 출간되었다.

아네마리 도에르

Annamarie Doherr
서독 독일인 1909–1974 ○ 심장마비

울브리히트의 '장벽 부인'을 끌어낸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기자

보충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자유도시' 형성이 곧 브란덴부르크 문에 국경이 세워진다는 뜻입니까?

함부르크에서 법학을 공부하다 학위를 마치지 못하고 언론에 들어간 독일 기자다. 전후에는 소련이 통제하는 베를린 방송에서 일하다 1949년 서베를린으로 옮겨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특파원이 되었고, 1961년 6월 15일 기자회견에서 '국경이 브란덴부르크 문에 세워지는가'를 물어 울브리히트로부터 '아무도 장벽을 세울 의도가 없다'는 유명한 답을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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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함부르크 대학 법학 수학 시작
  • 1934함부르크 국제정치 연구소 견습
  • 1936함부르크 세계경제자료원 근무
  • 1942Wirtschafts-Ring 편집자로 베를린 이주
  • 1943Transocean-Europapress 중앙편집부 편집자
  • 1945소련 통제 베를린 방송(Berliner Rundfunk) 합류
  • 1946베를린 방송 'Zeitecho' 편집장
  • 1949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 서베를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