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주재 대사로 독일과의 동맹을 밀어붙이고 점령 뒤 총리로서 유대인 이송을 앞당긴 군인 외교관
베르셰츠(브르샤츠)의 세르비아계 가정에서 디미트리예 스토야코비치로 태어나,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트리아-헝가리군 참모본부의 정보장교로 일했다. 전쟁 뒤 호르티의 반혁명 군대에서 방첩을 맡았고, 1927~1933년 베를린 주재 무관을 지낸 뒤 1935년부터 1944년까지 베를린 주재 대사로 있으며 독일과의 동맹을 밀어붙였다. 1944년 3월 독일 점령 뒤 총리 겸 외무장관이 되어 화살십자당을 합법화하고 노동조합을 해산하고 정적을 투옥했으며, 유대인 강제 이송의 속도를 크게 높였다. 8월 호르티의 압력으로 물러났고, 전후 미군에 붙잡혀 헝가리로 넘겨진 뒤 인민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아 1946년 총살되었다.
스탈린은 1948년 3월 27일 서한에서 이렇게 썼다: '영국 스파이 벨레비트가 여전히 유고슬라비아 외무부 제1차관으로 남아 있는 이유를 우리는 이해할 수 없다.'
유고슬라비아의 변호사 출신 파르티잔 장군이자 외교관으로, 전시에는 연합군 군사 임무단과의 접촉 창구를 맡았고 전후에는 외무차관으로서 서방과 협상했다. 1948년 3월 스탈린은 그를 '영국 스파이'라고 직접 지목하며 티토와의 솔직한 외교 서신 교환을 거부했고, 이는 티토-스탈린 결별의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사임 후 복권되어 로마·런던 주재 대사와 유엔 유럽경제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으며, 냉전기 유고슬라비아의 독자 노선을 외교적으로 구현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