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보리스 예프스타피예비치 부토마

Борис Евстафьевич Бутома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계 1907–1976 ○ 자연사

19년간 소련 조선을 지휘한 핵잠수함 함대의 설계자

1959년 7월 23일, '특수장비 제작에 관한 정부 과업 수행'이라는 비밀 포고령으로 부토마는 사회주의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그 '특수장비'란 K-3 '레닌스키 콤소몰' — 소련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이었다.

소련의 조선 기술관료이자 당·국가 지도자로, 195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19년간 소련 조선산업을 총괄했다. 흐루쇼프와 브레즈네프 두 시대를 관통하며 국내 최초의 원자력 잠수함(프로젝트 627, K-3 '레닌스키 콤소몰'), 세계 최초의 탄도미사일 잠수함(프로젝트 V611), 그리고 전략미사일 잠수함 667B형의 건조를 진두지휘하여 소련 해군을 대양함대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지휘 아래 220여 개 조선·선박기계 공장이 신설·재건되었고, 민간 부문에서도 원자력 쇄빙선과 초대형 유조선 건조가 본격화되었다. 스탈린상(1949), 사회주의노동영웅(1959), 레닌상(1974)을 수상했으며, 1966년부터 사망 시까지 CPSU 중앙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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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6레닌그라드 조선연구소 졸업
  • 1936–1944블라디보스토크 달자보트 조선소에서 정비공·진수기사·수석기사 역임
  • 1944–1948젤레노돌스크 제340조선소 수석기사, 이후 소장
  • 1948–1952소련 조선공업부 본부장
  • 1952–1953소련 조선공업부 차관
  • 1954–1957소련 조선공업부 차관
  • 1957–1965소련 각료회의 국가조선위원회 의장
  • 1965–1976소련 조선공업부 장관

표트르 스테파노비치 네포로즈니

Пётр Степанович Непорожний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0–1999 ○ 자연사

통합에너지시스템을 만든 최장수 에너지 장관

미국 방문 중 닉슨 대통령을 만난 네포로즈니는 지역 전력망을 연결하라고 조언했다. 「미국인들은 그 충고를 받아들였고, 이제 미국의 주요 지역들은 500kV와 750kV 송전선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러시아 위키백과는 전한다.

우크라이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수력 기술자가 된 네포로즈니는, 1962년부터 23년간 소련 에너지·전화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수력발전소들과 원자력발전 프로그램을 총괄했다. 브라츠크, 크라스노야르스크, 사야노-슈셴스카야 등 시베리아의 거대 댐들과 볼가 강 cascade, 중앙아시아의 고압력 댐들을 동시에 추진했고, 소련 전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한편 세계에서 가장 신뢰성 높은 통합에너지시스템(ЕЭС)을 구축했다. 그의 재임 기간 소련의 발전 용량은 8,200만 kW에서 3억 1,500만 kW로 거의 네 배 성장했다. 레닌상 수상자이자 소련 과학아카데미 통신회원으로, 2000년 사야노-슈셴스카야 수력발전소에 그의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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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9–1933중앙아시아 수자원·관개 및 수력 건설 현장에서 기술자로 활동
  • 1933–1935발트 해군 복무
  • 1935–1940레닌그라드 Гидропроект, 치르치크ГЭС 건설, 중공업인민위원부 수력건설총국 근무
  • 1940–1954중앙아시아·레닌그라드·카홉카 수력발전소 건설에서 수석기술자 역임
  • 1954–1959우크라이나 SSR 부수상 겸 국가건설위원회 의장
  • 1959–1962소련 발전소건설부 제1차관
  • 1962–1985소련 에너지·전화부 장관
  • 1985–1999은퇴 후 에너지 분야 베테랑 협의회 지도

이반 파블로비치 카자네츠

Иван Павлович Казанец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 1918–2013 ○ 자연사

우크라이나 총리에서 소련 철강부 장관으로: 20년간 소련 철강을 지배한 드네프르 출신 기술관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카자네츠 동지. 미국보다 더 많이 제련한다고 자랑하지만, 금속 품질은 어떻습니까? 생산된 톤당 40%만 제품이 되고 나머지는 슬래그와 부스러기로 나갑니다!» — 1972년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브레즈네프의 질책.

드네프르 강 도선사 집안 출신의 우크라이나인 기술관료로, 전기기사로 시작해 쿠즈네츠크 제철소와 예나키예베 제철소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53년 흐루쇼프의 발탁으로 35세에 도네츠크 주당위 제1서기가 되었고, 1960년 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1963–1965년 우크라이나 SSR 각료회의 의장을 지냈다. 1965년 코시긴 개혁으로 소련 철강부가 재설립되자 초대 장관에 임명되어 20년간 재임하며 소련을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으로 올려놓았다. 브레즈네프 시기 내내 중앙위원을 지냈고, 1985년 고르바초프 집권 직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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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7–1944쿠즈네츠크 제철소 전기기사·기사·변전소 구역장, 시베리아 야금연구소 졸업
  • 1944–1952예나키예베 제철소 압연공장 교대장·당위 부비서·공장장, 1950년 당조직자
  • 1952–1953예나키예베 시당위 제1서기 → 마케예프카 시당위 제1서기
  • 1953–1960우크라이나 공산당 도네츠크 주당위 제1서기
  • 1960–1963우크라이나 공산당 중앙위 제2서기
  • 1963–1965우크라이나 SSR 각료회의 의장
  • 1965–1985소련 철강부 장관
  • 1961–1986CPSU 중앙위원 (1956–1961 후보위원)

보리스 예브도키모비치 셰르비나

Борис Евдокимович Щербина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1919–1990 ○ 자연사

시베리아 유전을 일군 체르노빌 사령관

1986년 4월 27일 오전 10시, 프리피야티에서 정부위원회를 소집한 셰르비나는 단 한 마디로 회의를 열었다. '피난을 시작한다.' 사고 32시간 만에 5만 명의 도시 전체가 버스에 올랐다.

소련을 세계 1위 탄화수소 생산국으로 만든 서시베리아 석유·가스 단지의 설계자. 튜멘주 당서기와 석유가스건설장관으로서 타이가와 영구동토를 뚫고 송유관·도시·철도를 건설했으며, 부총리로서 체르노빌 사고(1986)와 아르메니아 지진(1988) 정부대책위원회를 직접 지휘했다. 방사능에 노출된 건강 악화 속에서도 현장을 떠나지 않은 기술관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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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9소련-핀란드 전쟁 자원입대 (제316스키대대)
  • 1942–1944하리코프주 콤소몰 서기
  • 1951–1961이르쿠츠크주 당서기 → 제2서기
  • 1961–1973튜멘주 당 제1서기
  • 1973–1984소련 석유·가스공업 건설장관
  • 1984–1989소련 각료회의 부의장 (에너지 부문 총괄)
  • 1986체르노빌 사고 정부대책위원장
  • 1988아르메니아 지진 구호위원장

아나톨리 이바노비치 마요레츠

Анатолий Иванович Майорец
소련 국가기관 소련 공산주의 소련 우크라이나인 1929–2016 ○ 자연사

체르노빌 현장에 투입된 마지막 소련 에너지장관

1986년 4월 26일 새벽, 체르노빌 사고 첫 보고를 받은 마요레츠는 니콜라이 리즈코프 총리에게 이를 알린 직후 현장으로 날아갔다. 도착하자마자 정격 출력으로 가동 중인 두 원자로 블록을 즉각 정지·비상 차단하라고 명령했다.

자포리자 변압기 공장의 전기기사에서 소련 전기공업장관·에너지장관까지 오른 산업 관료로, 송배전망과 원자력 발전을 사반세기 동안 이끌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가장 먼저 보고받아 곧장 현장으로 가 가동 중인 두 원자로를 비상 정지시키고, 소련 원자력 안전 체계 재편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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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3–1962자포로지에 변압기 공장 전기기사 → 선임 작업반장 → 책임자
  • 1962–1965자포로지에 변압기 공장장
  • 1965–1974소련 전기공업부 차관
  • 1974–1980소련 전기공업부 제1차관
  • 1980–1985소련 전기공업장관
  • 1985–1989소련 에너지·전화장관
  • 1986체르노빌 사고 정부위원회 위원 (셰르비나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