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서부의 가난한 세르비아계 농가에서 태어나 사라예보에서 공부했고, 1911년 오스트리아 지배에서 보스니아를 해방하고 남슬라브를 통일하려는 비밀 결사 청년 보스니아에 들어갔다. 반오스트리아 시위로 퇴학당해 베오그라드로 갔다. 세르비아 비밀 결사 흑수단에게 무기와 훈련을 받아,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황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아내 조피를 권총으로 쏘아 죽였다. 이 암살이 7월 위기와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재판에서 자신을 유고슬라비아 민족주의자라 밝혔고, 스무 살이 안 되어 사형을 면하고 징역 20년을 받았다. 1918년 테레지엔슈타트 요새 감옥에서 결핵으로 죽었다.
스레텐 주요비치는 세르비아계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이자 노동운동 조직가로, 제1차 세계대전과 유고슬라비아 인민해방전쟁을 거쳤다. 그는 전쟁기 파르티잔 봉기를 조직하고 최고사령부에서 활동했으며, 해방 뒤 재무장관을 맡았다. 1948년 티토와 스탈린의 충돌에서 그는 소비에트 노선을 지지한 유일한 반대자로 중앙위원회 회의에 나섰고, 그 선택으로 당과 공직에서 축출되어 구금되었다. 1950년 자기비판 뒤 석방되고 훗날 당에 복귀했지만, 그의 경력은 혁명적 국제주의와 유고슬라비아의 자율성 사이의 균열을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