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사전: 혁명과 소련의 사람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Alfred Rosenberg
독일 국가기관 파시스트·나치 독일 발트 독일인 1893–1946 ✕ 처형(교수형)

나치 인종 이론가로서 1941~1945년 동부 점령지 장관을 지낸 레발 태생의 발트 독일인

1893년 러시아 제국 에스토니아현의 레발(탈린)에서 태어나 리가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1918년 물러가는 독일군과 함께 독일로 건너가 1919년 1월 히틀러보다 먼저 독일노동자당에 들어갔고, 1923년 당 기관지 『푈키셔 베오바흐터』의 편집장이 되었다. 1930년 인종 이론서 『20세기의 신화』를 냈고, 히틀러에게 「시온 장로 의정서」를 소개해 유대인 음모론을 심었다. 1941년 7월 17일 동부 점령지 장관이 되어 힌리히 로제를 오스트란트 국가판무관으로 두었으나 실권은 크게 제한되었다. 발트 지역을 독일의 「생존 공간」으로 보았다.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네 죄목 모두 유죄를 받고 1946년 10월 16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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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독일노동자당 입당
  • 1923『푈키셔 베오바흐터』 편집장
  • 1930『20세기의 신화』 출간
  • 1941–1945동부 점령지 장관
  • 1946뉘른베르크 재판 사형 선고, 처형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

나치당 선전 책임자이자 선전장관으로 반유대주의와 독재를 선전했다.

요제프 괴벨스는 나치당 선전 책임자로서 1926년부터 베를린 당 조직을 이끌고, 1930년 당 선전 책임자가 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선전장관으로 임명한 뒤 언론·영화·라디오·문화계를 나치 이념에 맞춰 통제하고, 반유대주의 선전과 유대인 박해를 부추겼다. 1938년 11월 포그롬의 주요 선동자였으며, 전쟁 말기에는 총력전을 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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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1945나치당 베를린 대관구 지도자
  • 1930–1945나치당 선전 책임자
  • 1933–1945국민계몽선전부 장관
  • 1944–1945총력전 전권위원

햘마르 매에

Hjalmar Mäe
파시스트·나치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1901–1978 ○ 망명지 그라츠에서 사망

1941~1944년 독일 점령하 「에스토니아 자치행정」을 이끈 밥스 운동 출신의 협력 정치인

하리우주 투할라에서 태어나 베를린·빈·인스브루크·그라츠에서 공부해 1927년 지구물리학, 1930년 헌법학 박사가 되었다. 두 차례 총선에 출마했다가 해방전쟁참전자동맹(밥스)에 들어가 선전 책임자가 되었고, 1935년 20년 강제노동형을 받았으나 1938년 사면으로 풀려나 독일로 건너가 독일 국적을 얻었다. 1941년 5월 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해방위원회를 세웠고, 그해 독일군과 함께 돌아와 1941~1944년 에스토니아 자치행정을 이끌었다. 1944년 오스트리아로 달아나 서방 연합국에게 나치 범죄 혐의를 벗었고 오스트리아 정부 자문으로 일했다. 1990년대 에스토니아의 국제 조사위원회는 그를 에스토니아 경찰·친위대 부대의 범죄에 책임 있는 주요 인물로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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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7–1930인스브루크 지구물리학·그라츠 헌법학 박사
  • 1935밥스 운동으로 20년 강제노동형
  • 1941헬싱키에서 에스토니아 해방위원회 결성
  • 1941–1944에스토니아 자치행정 수장
  • 1944오스트리아로 망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