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M 조약
ABM Treaty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 닉슨과 브레즈네프가 서명한 미소 간 군비통제 조약. 각국은 수도와 ICBM 기지 중 한 곳에만 100기 이하의 요격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도록 제한하여, 상호확증파괴에 기반한 전략적 안정성을 유지하려 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일방 탈퇴하여 30년간 유지된 이 체제를 종결시켰다.
상세
배경과 전략적 논리
1960년대 후반 미소 양국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요격 체계를 개발 중이었다. 그러나 전략적 요격 미사일(ABM) 체계가 전국적으로 배치될 경우 역설적으로 핵전쟁 위험을 높인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ABM이 상대방의 보복 타격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믿게 되면 선제타격의 유인이 생기고, 이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도 먼저 공격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즉 ABM은 상호확증파괴(MAD)의 토대인 '상호 취약성'을 훼손했다.
조약의 내용
1972년 5월 26일 모스크바에서 리처드 닉슨과 레오니트 브레즈네프가 서명한 이 조약은 SALT I 협상의 일부였다. 각국은 수도와 ICBM 발사 기지 두 곳에 각 100기 이하의 요격 미사일을 배치할 수 있었고, 해상·공중·우주·이동식 지상 발사 ABM은 개발·시험·배치가 전면 금지되었다. 1974년 의정서는 허용 기지를 수도 또는 ICBM 기지 중 한 곳으로 축소했으며, 소련은 모스크바를, 미국은 노스다코타의 세이프가드 기지를 선택했다.
레이캬비크 정상회담과 SDI
1983년 로널드 레이건이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하면서 ABM 조약은 다시 냉전 긴장의 중심에 섰다. 1986년 레이캬비크 정상회담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SDI를 실험실 수준으로 제한하고 10년간 조약 탈퇴를 금지할 것을 요구했으나, 레이건은 SDI가 '방어막'이라며 양보하지 않았다. 이 충돌로 회담은 핵무기 전면 폐기라는 획기적 합의 직전에서 결렬되었다.
종말
냉전 종식 후에도 이 조약은 전략적 안정성의 초석으로 간주되었으나,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불량 국가'의 ICBM 위협을 이유로 2001년 12월 탈퇴를 통보했고, 2002년 6월 조약은 공식 종료되었다. 이후 미국은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에 지상배치 중간단계 방어(GMD) 체계를 구축했다.
출처
- 위키백과 (영문) Full treaty history, provisions, Reykjavik/SDI conflict, and 2002 withdrawal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article: strategic logic of ABM paradox, Krasnoyarsk radar violation, SDI impact from Soviet perspective
- 2009-2017.state.gov U.S. State Department: official treaty text, site limits (100 interceptors, 2 areas), Standing Consultative Commission, review process
- nsarchive2.gwu.edu National Security Archive: Kissinger's strategic rationale, ABM Treaty as source of strategic stability, Reagan/Bush reinterpretation dispu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