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법 개혁 협회
Abortion Law Reform Association
1936년 2월 17일 스텔라 브라운, 재닛 챈스, 앨리스 젱킨스, 조앤 맬리슨이 세운 영국의 낙태 합법화 운동 단체. 1938년 회원 맬리슨이 연결한 강간 피해 소녀의 수술로 「렉스 대 본」 판례를 끌어냈고, 전후 운동 끝에 1967년 낙태법 제정을 이끌었다. 2003년 전국 낙태 운동과 합쳐 「낙태권」이 되었다.
상세
낙태법 개혁 협회는 1936년 2월 17일 스텔라 브라운, 재닛 챈스, 앨리스 젱킨스, 조앤 맬리슨이 세웠다. 챈스가 자금과 홍보를, 젱킨스가 명예 서기로 지지자 연결망을 맡았다. 첫해 35명이던 회원은 1939년 400명 가까이로 늘었고, 노동 단체와 협동조합 여성 지부를 통해 모인 노동계급 여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돈 있는 계급이 오래 누려 온」 특권을 원했다. 협회는 1936~1939년 강연자를 전국에 보내고 신문에 편지와 글을 실었다.
낙태법 개혁 협회를 세운 스텔라 브라운은 1929년 런던 세계 성개혁 대회에서 「낙태할 권리」를 발표했고, 1926년에는 피임과 낙태를 정치 의제로 올리려 첼시 노동당 서기가 되기도 했다. 1938년 4월 근위병들에게 강간당해 임신한 열네 살 소녀가 5월 병원에서 중절을 거절당하자, 협회 의료·법률 위원회의 의사 맬리슨이 산부인과 의사 앨렉 본에게 소녀를 보냈다. 본은 6월 14일 경찰에 미리 알린 채 공개적으로 임신을 중절하고 체포를 자청했고, 7월 재판에서 무죄가 되었다. 「렉스 대 본」 판결은 산모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낙태가 합법일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전후 낙태법 개혁 협회는 법적 장애를 없애는 운동을 이어 갔다. 젱킨스는 1960년 『부자를 위한 법』에서 부유한 여성은 개인 의사를 설득해 낙태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성은 그럴 수 없는 이중 잣대를 고발했다. 1963년부터 협회를 이끈 베라 호턴은 자유당 하원 의원 데이비드 스틸의 지지를 얻었고, 스틸의 의원 입법이 1967년 낙태법이 되었다. 협회는 2003년 전국 낙태 운동과 합쳐 「낙태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