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치
afgantsy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1989)에 파병된 소련 군인, 즉 아프가니스탄 주둔 소련군 제한부대(ОКСВА) 출신 예비역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구어 표현이다. 공식 호칭인 '국제주의 전사(воины-интернационалисты)'와 구분되며, 아프가니스탄 측이 소련 군인을 부르던 'шурави'와도 다른 말이다. 참전용사들은 사회적 무관심과 함께 '아프간 신드롬(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이라 불린 전쟁 후유 정신 외상을 겪었다. 이 명칭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현재까지 쓰이며, 참전용사 단체와 기념 문화도 소련 해체 이후 소비에트 이후 공간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다.
상세
역사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귀환한 병사들은 전사자 기념비를 세우고 군사애국 클럽을 조직하며 참전용사 운동의 기초를 놓았다. 1989년 3월 13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소련 참전용사 전연합 대회에서 전국적 참전용사 연합이 결성되어 알렉산드르 코테네프가 이끌었고, 이것이 '아프간치' 운동의 중심 조직이 되었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이 해체된 뒤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역사화가 15개 독립국의 각자 과제가 되면서 단일한 조직망도 해체되었다.
글라스노스트로 전쟁에 대한 공개 토론이 허용된 뒤 '아프간치'에 관해 형성된 유일한 일치된 인식은 정치국이 이들을 잘못 파병했다는 것이었고, 소련 해체 이후 많은 이들에게 그 판결은 의미를 잃었다. 참전용사 조직화는 소련 해체 뒤에도 이어졌다. 카자흐스탄에 약 1만 6천 명, 벨라루스의 아프간 참전용사 연합에 1만 2천 명 이상의 회원이 있는 등 독립국들에 참전용사 단체가 남았으나, 소련 시기의 단일 조직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구분
이 말은 공식 호칭 및 다른 이름들과 구별된다. 공식 문서는 '국제주의 전사'만을 쓰고, 'афганцы'는 구어 명칭이다. 아프가니스탄 측에서 쓰던 'шурави'는 1956년부터 소련의 민간·군사 전문가를 가리키던 중립적 호칭이었으나 소련군 진주 전후인 1970년대 말~1980년대 초에 부정적 함의를 얻었고, 뒤에 참전용사들이 '우리는 슈라비다'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부르는 데 받아들였으므로 '아프간치'의 동의어가 아니다.
의학·심리학 문맥에서 'афганский синдром(아프간 신드롬)'은 'вьетнамский синдром'과 나란히 전쟁 관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가리키는 통칭으로 쓰인다. 러시아의 한 정신과 의사는 이를 전투 참전자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상태로 설명하면서 만성 피로, 불안 고조, 두통, 기억력 저하, 불면, 민간 생활 적응의 어려움을 증상으로 든다. 전쟁 자체의 명칭도 진영에 따라 갈린다. 러시아와 구소련권에서는 보통 '아프간 전쟁(Афганская война)'이라 부르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소련 전쟁'이라 하며, 국제적으로는 이슬람권과 서방 진영이 '침공', 동구권이 '합법적 개입'으로 규정해 왔다.
사례
귀환 경험은 물질적 조건에 크게 좌우되었다. 사회적 도움과 국가 지원이 필요했던 많은 귀환 병사와 장교는 혜택과 연금 대신 'Мы вас туда не посылали'(우리가 너희를 그곳에 보내지 않았다)라는 말을 듣고 스스로 조직화하게 되었다. 장애를 입은 이들에게는 의수·의족과 의약품이 필요했다. 1980년대에 'Я вас в Афганистан не посылал!'(내가 너희를 아프가니스탄에 보낸 적 없다) 같은 표현이 일부 사람들의 어휘로 자리 잡아 귀환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거부의 상징이 되었고, 일부 군인들은 '자기들의' 아프가니스탄으로 걸어 돌아가겠다고 답했다.
소련 사회에서 심리·의료 지원이 시작된 것은 1987년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였고, 1989년 3월 13일에는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 연합의 첫 심리지원 봉사단이 만들어졌다. NPR이 인터뷰한 참전용사들은 자부심과 외상을 함께 말한다. 마지막 철수 부대에 속했던 세르게이 오팔레프는 철수가 조직적으로 진행되었고 군사적 노력이 성공이었다고 평가하는 반면, 1979년 12월에 징집된 루스탐 호자예프는 지금도 악몽에 시달리고 그의 아내는 그가 전쟁 후유 외상(Afghanskii syndrome)을 겪고 있는지 걱정한다.
관계
1990년 11월 17~20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 연합(РСВА) 창립대회는 강령과 정관, 상징을 채택하고 랴핀을 초대 회장으로 선출했다. 소련 해체 이후 СВА는 1992년 국제 연합체로 등록되었다. 오늘날 РСВА는 약 50만 명 회원과 76개 지역 조직, 수백 개의 군사애국·체육 클럽을 두고 세계재향군인연맹(WVF) 회원으로 활동하며, 2022년에는 '특수군사작전' 참전용사까지 포함하도록 개칭되었다.
전쟁은 1979년 12월 25일 시작되어 1989년 2월 15일 마지막 소련군 종대가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오며 끝났다. 모두 62만 명의 소련 군인이 복무했고, 사망 1만 4,453명(다른 집계는 2만 6천 명까지), 부상 5만 3,753명, 질병으로 인한 입원 41만 5,932명으로 집계된다. NPR은 소련군 사망 1만 5천 명 이상, 부상 6만 명, 아프가니스탄인 사망 최소 100만 명으로 전한다.
기념 문화도 남았다. 2010년 크렘린은 소련군 철수일인 2월 15일을 '조국 밖에서 복무 의무를 수행한 러시아인 추모의 날'이라는 국가 기념일로 지정했고, 9중대 같은 러시아 영화는 참전용사의 이미지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벨라루스(2017년 1월 1일 기준 다른 국가 전투 참전용사 2만 4,600명)와 우즈베키스탄(우즈베크 출신 6만 5천 명 참전, 1,500명 이상 사망, 500명 실종)도 같은 날을 기념하며, 우크라이나는 2004년 대통령령으로 2월 15일을 '다른 국가 영토에서의 전투 참전자 기념일'로 제정했다.
참전용사 조직은 논란과 범죄 연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 지원과 무역 특혜를 받고 1991년 설립된 러시아 아프간전 장애인 기금은 부패의 중심이 되었고, 1996년 11월 10일 코틀랴롭스코예 묘지에서 일어난 폭발로 지도부를 포함해 14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쳐 참전용사 운동 전체의 위신이 타격을 입었다. РСВА 항목에는 청소년 애국 교육과 클럽 활동 외에, 니즈네캄스크의 한 지역 참전용사 회장이 직책과 범죄 활동을 겸한 사례 같은 비판도 기록되어 있다.
평가
브레이스웨이트의 저서 《아프간치》는 제목을 아프간전 참전용사의 러시아어 별칭에서 가져왔으며,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점령을 냉정하고 균형 있게 다룬 책으로 평가된다. 전후 참전용사의 처지는 크게 바뀌었다. 프린스턴대 세르게이 오우샤킨은 참전용사들이 숭배받는 지위에서 완전히 멸시받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평가하고, NPR은 '이번 세기의 상당 기간 동안 소련 아프간 참전용사들은 일종의 추방자였다'고 전한다.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러시아어) Russian Wikipedia: definition, etymology of the terms воины-интернационалисты vs афганцы, the emblematic phrase 'Я вас в Афганистан не посылал!', and the social rejection veterans faced
- 위키백과 (영문) English Wikipedia: 'Veterans of the war are often referred to as афганцы, Afgantsy in Russian'; 620,000 total soldiers served; 14,453 killed; legacy of the war in the former Soviet Union
- thenation.com The Nation review of Rodric Braithwaite's Afgantsy: 'takes its title from the Russian nickname for Afghan war vets'; describes the book as 'a sober and balanced antidote' covering the Soviet experience
- utoronto.scholaris.ca University of Toronto PhD dissertation by Ben McVicker: 'private narratives and popular myths about those at war — known as the afgantsy — circulated for years'; covers grassroots veterans' organizing and the Committee of Soldiers' Mothers
- npr.org NPR: 'Afghanskii syndrome — the PTSD-like term that Soviets gave to unexplained emotional trauma'; interviews with afgantsy veterans Sergei Opalev and Rustam Khodzhayev
- meduza.io Meduza: PTSD 'also referred to as the Afghan Syndrome or the Chechen Syndrome in Russian'; photo series on veterans
- 위키백과 (러시아어)
- rsva.ru
- mir24.tv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러시아어)
- gazeta.ru
- meduza.io
- 위키백과 (러시아어)
- 위키백과 (영문)
- thenation.com
- utoronto.scholaris.ca
- np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