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트프롭
Agitprop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지방 당 위원회의 선동·선전 부서를 가리키는 약칭으로, 러시아어 아지타치야(선동)와 프로파간다(선전)의 합성어다. 1920년 설치되어 모든 공식 정보의 내용을 결정하고 학교의 정치교육과 대중매체를 감독하며 당 강령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동원했고, 선전열차·포스터·구두선동망·문맹퇴치 운동 등으로 전개되었다. 1935년 스탈린이 해산한 뒤에도 여러 이름으로 재편되어 1991년까지 당의 중앙 이데올로기 기관으로 존속했다.
상세
기원과 초기 조직
선동·선전 부서의 출발점은 제8차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 대회(1919년 3월 18~23일)로, 이 대회는 처음으로 "공산주의 사상의 가장 광범한 선전의 발전과 이를 위한 국가권력 기구와 수단의 이용"을 제기했다. 1919년 4월 중앙위원회에 설치된 정보부는 1920년 초 정보통계부로 개편되었다가 1920년 말 폐지되어 그 기능이 조직·지도부로 넘어갔다. 선동선전부 자체는 1920년 6월 중앙위원회에 설치되어 R. P. 카타냐니가 이끌었고, 국립출판국·중앙출판·적군 정치총국 등을 조정했으며 1920년 9월에는 직원 13명을 두었다.
1920년 9월 22~25일 제9차 전러시아 당 회의는 선동선전부가 국립출판국·중앙출판·적군 정치총국 등 모든 종류의 선동선전·문화계몽 사업을 포괄하고 통일하도록 지시하고, 농촌사업부·여성부·소수민족 부서를 그 직접 지도 아래 두게 했다. 이는 당 기관과 국가 기관이 뒤섞여 가는 징후였다. 부서는 1928~1930년 선동선전출판부, 1930~1934년 문화선전부, 1934~1935년 레닌주의 문화선전부, 1935~1938년 당선전선동부, 1938~1939년 구두·인쇄 선전선동부, 1939~1948년 선전선동관리국, 1948~1956년 선전선동부, 1988~1991년 이데올로기부 등으로 거듭 개칭되었다.
1930년 1월부터 선동선전 기능은 문화선전부로 넘어갔고, 1935년 5월 스탈린은 선동선전부를 해산하고 여러 중앙위원회 부서를 새로 만들었으며, 이 부서들은 1938년 다시 선동선전부로 통합되었다.
활동 형태와 사례
내전기 선동선전은 언론(1917년 복간된 볼셰비키의 『프라우다』는 적군 통제 지역의 지배적 활자 매체가 되었다), 농민에게 파견된 구두선동망, 전단과 포스터를 실은 선동열차·선동선박 등으로 전개되었다. 열차에는 오토바이와 자동차, 무선, 자체 인쇄기가 실렸고 선전 도서관을 갖춘 선동거점이 딸려 있었으며, 그 활동은 동유럽까지 미쳤다. 1917년 러시아 농민 사회는 대부분 문맹이어서 인쇄 선동의 접근이 어려웠기에 문맹퇴치 운동이 벌어졌다. 교육인민위원회가 이를 주도해 1919년 교원을 양성하고 문맹퇴치소망을 세웠으며, 새 교과서는 새로 글을 깨친 이들에게 볼셰비키 이데올로기를 설명했고 군대 내 문맹퇴치 훈련도 확대되었다. 1920년 5월 13일 국방위원회 결정으로 철도가 연결된 도시에는 소비에트 권력의 의미와 과제를 주민에게 설명하는 선동거점(아지트풍크트)이 설치되었다. 초기에는 구성주의 계열을 비롯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엘 리시츠키, 알렉산드르 로드첸코 등)이 포스터 디자인을 중심으로 선동선전 작업에 참여했다.
영어권 사료는 이 부서가 1920년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설치된 뒤 소련 전역에서 상시적 활동이 되었다고 서술하며, 문화의 궁전, 구호와 포스터로 뒤덮인 선동열차와 선동차, 포스터 운동, 수많은 선동거점, 도서관 등을 그 형태로 든다.
선동과 선전의 구분
플레하노프는 선전을 여러 관념을 개인이나 소집단에 전파하는 것, 선동을 단일한 관념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1902년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은 이를 확장해, 선전원은 주로 인쇄물을 매개로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설명하고 선동원은 주로 말을 매개로 그 감정적 측면을 붙잡아 청중을 분노와 행동으로 이끈다고 보았다.
브리태니커는 선동을 정치 구호와 절반의 진실로 대중의 불만을 이용해 여론을 빚는 것으로, 선전을 역사적·과학적 논거로 당원 같은 교양 있는 이들을 교화하는 합리적 수단으로 규정한다. 이 용어와 집착 자체가 소련식 마르크스주의 특유의 것이었고, 영어 단어는 예술을 정치 목적에 노골적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서구의 반감을 반영해 대체로 부정적 함의를 띤다.
여기서 파생된 선동선전 연극은 1920년대 유럽에서 생겨 미국까지 퍼진 고도로 정치화된 연극으로(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이 대표적), 완벽한 미덕과 완전한 악이라는 판에 박은 인물형과 조야한 조롱으로 유명했으며, 이후 이 용어는 모든 종류의 고도로 정치화된 예술을 가리키게 되었다.
위상과 대외 선전
N. A. 미트로힌에 따르면 선동선전부는 조직·당 사업을 맡은 조직부 다음으로 중앙위원회 기구에서 '제2' 부서로 꼽혔다. 1949년 4월 1일 NATO 창설 뒤 작가 콘스탄틴 시모노프는 말렌코프에게 '반미 선전 강화 조치에 관하여' 초안을 보냈고, 선동선전부는 '가까운 장래의 반미 선전 강화 조치 계획'을 승인했다.
역대 책임자
부서 책임자로는 예. A. 프레오브라젠스키(1920년 4월~6월), R. P. 카타냐니(1920년 6월~1921년 10월), L. S. 소스놉스키, A. S. 붑노프, S. I. 시르초프, V. G. 크노린, A. I. 크리니츠키, A. I. 스테츠키, A. A. 즈다노프(1938년 11월~1940년 9월), G. F. 알렉산드로프, M. A. 수슬로프(1947년 9월~1948년 7월 및 1949년 7월~1952년 10월), D. T. 셰필로프, L. F. 일리체프, A. N. 야코블레프, 유. A. 스클랴로프 등이 있다.
다만 사료 간 차이가 있다. 영어 사료는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의 첫 책임자를 예브게니 프레오브라젠스키로 서술하는 반면, 러시아어 사료는 그를 1920년 4월~6월의 책임자로 두고 1920년 6월 창설된 부서를 카타냐니가 이끌었다고 적는다. 단일한 연대기로 단정하지 않고 교차 확인이 필요한 지점이다.
기관 연속성
러시아어 사료는 기관 계보를 1920~1991년으로 제시하며, 1935년의 해산을 영구적 종료가 아닌 재편으로 다룬다. 즉 1920년 6월 창설 이후 여러 명칭을 거쳐 1988~1991년의 이데올로기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관련 인물
출처
- 위키백과 (영문) department origin, Plekhanov–Lenin distinction, forms (agit-trains, posters, oral networks, literacy campaigns)
- 위키백과 (러시아어) full institutional history 1920–1991, list of heads, department reorganizations and renaming chronology
- britannica.com definition, Plekhanov's original formulation of agitation vs. propaganda, Lenin's elaboration in What Is to Be Done?, party apparatus structure from republic to local level
- tate.org.uk 1920 founding by Central Committee, agit-trains, agitpunkts, Constructivist poster artists
- 위키백과 (영문)
- britannica.com
- 위키백과 (러시아어)
- tate.org.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