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무엇을 할 것인가? (발췌: 자생성과 의식성, 혁명가 조직)

인물블라디미르 레닌, 카를 카우츠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 파벨 악셀로드,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 표트르 스트루베, 세르게이 주바토프, 안드레이 젤랴보프, 소피야 페롭스카야, 베라 피그네르, 페르디난트 라살레, 빌헬름 리프크네히트, 프란츠 메링, 시드니 웹, 비어트리스 웹,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표트르 라브로프 용어경제주의, 이스크라,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인민의 의지당, 노동해방단, 수정주의, 볼셰비키, 멘셰비키, 젬스트보, 독일 사회민주당 (SPD) 학습사회주의의 분기 · 6장 혁명가의 당은 어떻게 조직해야 할까?

II. 대중의 자생성과 사회민주주의의 의식성

우리는 70년대의 운동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우리 운동을 그때와 같은 헌신적인 결단과 정력으로 고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오늘날 운동의 힘은 대중(그리고 주로 산업 프롤레타리아트)의 각성에 있고, 그 약점은 혁명가인 지도자들의 의식성과 주도성 부족에 있다는 것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주 최근에 이 문제에 관해 지금까지 지배하던 모든 견해를 뒤집어엎겠다고 위협하는 기막힌 발견이 이루어졌다. 이 발견을 한 것은 《라보체예 델로》다. 《라보체예 델로》는 《이스크라》와 《자랴》를 상대로 논쟁하면서 개별적인 반박에 그치지 않고, “전반적 의견 차이”를 더 깊은 뿌리, 곧 “자생적 요소와 의식적으로 ‘계획적인’ 요소의 상대적 의의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로 귀착시키려 했다. 《라보체예 델로》의 고발 명제는 이렇다. “객관적 또는 자생적 발전 요소의 의의를 과소평가한다”[1].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다. 《이스크라》와 《자랴》의 논쟁이 《라보체예 델로》로 하여금 이 “전반적 의견 차이”를 생각해 내게 한 것 말고는 정말 아무런 다른 결과도 낳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 결과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크게 만족할 것이다. 이 명제는 그만큼 의미심장하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오늘날 이론적·정치적 의견 차이의 핵심 전체를 그만큼 환히 비추어 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의식성과 자생성의 관계 문제는 거대한 일반적 관심거리이며, 이 문제를 아주 자세히 다루어야 한다.

가) 자생적 고양의 시작

우리는 앞 장에서 90년대 중반 러시아의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휩쓸리듯 열중했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와 거의 같은 시기에 노동자들의 파업도 1896년의 그 유명한 페테르부르크 산업 전쟁 뒤로 휩쓸리듯 번졌다. 파업이 러시아 전역으로 퍼진 것은 새로 일어나는 인민 운동이 얼마나 깊은지를 뚜렷이 보여 주었다. “자생적 요소”를 말하자면 무엇보다도 바로 이 파업 운동을 자생적이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생성에도 차이가 있다. 러시아에서는 70년대에도 60년대에도(그리고 19세기 전반에도) 파업이 있었고, 기계를 “자생적으로” 부수는 따위의 일이 뒤따랐다. 이런 “폭동”에 견주면 90년대의 파업은 “의식적”이라고까지 부를 수 있다. 그동안 노동운동이 내디딘 걸음은 그만큼 컸다. 이것은 “자생적 요소”가 본질적으로 의식성의 맹아 형태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원시적인 폭동도 이미 어느 정도 의식성의 각성을 표현했다. 노동자들은 자기들을 짓누르는 질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오랜 믿음을 잃어 갔고, 집단적으로 맞서야 할 필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느끼기 시작했으며, 윗사람에 대한 노예적 순종과 단호하게 결별했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투쟁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절망과 복수의 표현이었다. 90년대의 파업은 의식성의 번득임을 훨씬 더 많이 보여 준다. 일정한 요구를 내걸고, 어느 때가 더 유리한지 미리 계산하고, 다른 곳의 알려진 사례와 본보기를 토론하는 따위다. 폭동이 그저 억압받는 사람들의 봉기였다면, 체계적인 파업은 이미 계급투쟁의 맹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맹아일 뿐이었다. 그 자체로 보면 이 파업들은 트레이드유니언주의 투쟁이었지 아직 사회민주주의 투쟁은 아니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적대가 깨어나고 있음을 알렸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자기들의 이익이 현대의 정치·사회 체제 전체와 화해할 수 없이 대립한다는 의식, 곧 사회민주주의적 의식은 없었고 또 있을 수도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90년대의 파업은 “폭동”에 견주어 엄청난 진보를 이루었음에도 순전히 자생적인 운동으로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적 의식이 있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의식은 외부로부터만 들여올 수 있었다. 모든 나라의 역사가 증언하듯이, 노동계급은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는 트레이드유니언주의적 의식, 곧 조합으로 단결하고 고용주와 투쟁하며 노동자에게 필요한 이런저런 법률을 정부가 공포하도록 쟁취해야 한다는 확신 따위만을 만들어 낼 수 있다[2]. 그런데 사회주의 학설은 유산계급의 교육받은 대표자들, 곧 인텔리겐치아가 다듬어 낸 철학적·역사적·경제적 이론들에서 자라났다. 현대 과학적 사회주의의 창시자인 마르크스와 엥겔스 자신도 사회적 처지로 보면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에 속했다. 러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학설은 노동운동의 자생적 성장과는 전혀 무관하게 생겨났다. 그것은 혁명적 사회주의 인텔리겐치아에게서 사상이 발전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로 생겨났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시기, 곧 90년대 중반에 이르러 이 학설은 이미 노동해방단의 완전히 짜인 강령이었을 뿐 아니라 러시아 혁명적 젊은이들의 대다수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이렇게 해서 노동자 대중의 자생적 각성, 의식적 생활과 의식적 투쟁을 향한 각성도 있었고, 사회민주주의 이론으로 무장하고 노동자들에게 다가가려 애쓰던 혁명적 젊은이들도 있었다. 이때 특히 중요한 것은 흔히 잊히는(그리고 비교적 덜 알려진) 사실을 확인해 두는 일이다. 이 시기의 첫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열심히 경제적 선동을 하면서도(그리고 이 점에서 당시 아직 원고 상태였던 소책자 『선동에 관하여』의 참으로 유익한 지침을 충분히 고려하면서도) 그것을 자기들의 유일한 과제로 여기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처음부터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폭넓은 역사적 과제 일반을, 특히 전제정 타도라는 과제를 내세웠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을 세운 페테르부르크 사회민주주의자 그룹은 이미 1895년 말에 《라보체예 델로》라는 이름의 신문 창간호를 만들었다. 인쇄 준비가 완전히 끝난 이 창간호는 1895년 12월 8일에서 9일로 넘어가는 밤에 헌병대의 습격으로 그룹 성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나톨리 알렉세예비치 바네예프[3]의 집에서 압수되었고, 첫 번째 《라보체예 델로》는 끝내 세상 빛을 보지 못했다. 이 신문의 사설(아마 30년쯤 뒤에 어느 《루스카야 스타리나》가 경찰국 문서고에서 끄집어낼 것이다)은 러시아 노동계급의 역사적 과제를 그려 보이고, 그 과제의 맨 앞에 정치적 자유의 쟁취를 두었다. 이어서 문맹퇴치위원회에 대한 경찰의 탄압을 다룬 글 「우리 장관들은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있었고, 페테르부르크만이 아니라 러시아 다른 지방에서 온 통신도 여러 편 있었다(예컨대 야로슬라블현의 노동자 학살에 관한 통신). 이렇게 이것은,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면, 90년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첫 시도”로서, 좁게 지방적이지도 않고 더구나 “경제적”이지도 않은 신문이었다. 그것은 파업 투쟁을 전제정에 맞선 혁명 운동과 결합하고, 반동적 몽매주의 정책에 억압받는 모든 사람을 사회민주주의 지지로 끌어들이려 했다. 당시 운동의 상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신문이 수도의 노동자들과 혁명적 인텔리겐치아 양쪽에서 전폭적인 공감을 얻고 가장 널리 퍼졌으리라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이 사업의 실패는 그저 당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혁명적 경험과 실천적 준비가 모자라서 그때의 절실한 요구를 채울 힘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소식지》에 대해서도, 특히 《라보차야 가제타》와 1898년 봄에 결성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선언」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이런 준비 부족을 당시 활동가들의 탓으로 돌릴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러나 운동의 경험을 활용하고 그 경험에서 실천적 교훈을 끌어내려면, 이런저런 결함의 원인과 의미를 남김없이 따져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1895~1898년에 활동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일부(어쩌면 다수)가 바로 그때, “자생적” 운동의 맨 처음에 가장 폭넓은 강령과 전투적 전술을 들고 나서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긴 것은 아주 옳았다는 점을 확인해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4]. 그리고 대다수 혁명가들의 준비 부족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으므로 특별한 우려를 불러일으킬 수 없었다. 과제 설정이 올바르고, 그 과제를 실현하려고 거듭 시도할 정력이 있는 한, 일시적인 실패는 그리 큰 탈이 아니었다. 혁명적 경험과 조직 솜씨는 얻으면 되는 것이다. 필요한 자질을 몸에 익히려는 의욕만 있다면! 결함을 의식하기만 한다면! 혁명 사업에서 그런 의식은 절반 넘게 고친 것과 같다!

그러나 이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때(위에 든 그룹들의 활동가들에게는 그 의식이 매우 생생했다), 결함을 미덕으로 치켜세울 태세가 된 사람들이, 심지어 사회민주주의 기관지들이 나타났을 때, 자기들의 자생성 앞의 굴종과 자생성 숭배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려고까지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그리 큰 탈이 아니었던 것이 진짜 탈이 되었다. 이 경향은 그 내용을 담기에는 너무 좁은 “경제주의”라는 개념으로는 아주 부정확하게만 특징지어지는데, 이제 이 경향을 결산할 때가 되었다.

나) 자생성 숭배. 《라보차야 미슬》

이 숭배가 문헌에서 드러난 모습으로 넘어가기 전에,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사실을 짚어 두자(위에서 말한 출처에서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이다). 이 사실은 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던 동지들 사이에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장래 두 경향 사이의 불화가 어떻게 생겨나고 커졌는지를 얼마간 비추어 준다. 1897년 초, 유형지로 보내지기 전에 아나톨리 바네예프와 그의 동지 몇 사람은 노동계급해방투쟁동맹의 “늙은” 성원들과 “젊은” 성원들이 함께 모인 어느 사적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주로 조직에 관한 것이었고, 특히 최종 형태로 《라보트니크 소식지》 제9~10호(46쪽)에 실린 바로 그 「노동자 기금 규약」에 관한 것이었다. “늙은이들”(당시 페테르부르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농담 삼아 “데카브리스트”라고 부르던 사람들)과 “젊은이들” 몇몇(나중에 《라보차야 미슬》에 가까이 참여한 사람들) 사이에서 곧바로 날카로운 의견 차이가 드러났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젊은이들”은 인쇄된 형태 그대로 규약의 주요 원칙을 옹호했다. “늙은이들”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결코 그것이 아니라, 투쟁동맹을 혁명가 조직으로 굳건히 다지는 일이며, 여러 노동자 기금, 학생 청년들 사이의 선전 서클 따위는 그 조직에 종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논쟁하던 사람들은 이 의견 차이에서 분열의 시작을 보려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그것을 개별적이고 우연한 일로 여겼다. 그러나 이 사실은 러시아에서도 “경제주의”가 생겨나고 퍼진 것이 “늙은”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투쟁 없이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오늘날 “경제주의자들”은 이것을 자주 잊는다). 그리고 이 투쟁이 대부분 “문서로 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그 까닭은 오로지 활동하는 서클들의 구성원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자주 바뀌었고, 아무런 계승성도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래서 의견 차이도 어떤 문서로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라보차야 미슬》의 등장은 “경제주의”를 세상에 드러냈지만, 이것도 한꺼번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새 경향이 여러 도시에서 성공하거나 실패한 데에 우연한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이 “새것”의 지지자도 반대자도 그것이 정말 독자적인 경향인지 아니면 그저 개인들의 준비 부족이 드러난 것인지를 얼마나 오랫동안 판단할 수 없었는지, 말 그대로 판단할 아무런 방도도 없었는지 이해하려면, 활동 조건과 러시아 서클 대다수의 짧은 수명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아야 한다(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것을 겪어 본 사람뿐이다). 예컨대 등사판으로 찍은 《라보차야 미슬》 초기 호들은 사회민주주의자의 압도적 다수에게 아예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그 창간호 사설을 인용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V. I.의 글(《라보트니크 소식지》 제9~10호, 47쪽 이하)에 그 사설이 다시 실린 덕분이다. 그는 물론 위에서 우리가 든 신문들이나 신문 계획들과 그토록 날카롭게 다른 이 새 신문을 열심히, 분별없이 열심히 칭찬해 마지않았다[5]. 그런데 이 사설은 자세히 살펴볼 만하다. 그것은 《라보차야 미슬》과 “경제주의” 일반의 정신 전체를 그만큼 뚜렷하게 표현했다.

사설은 푸른 소맷부리를 단 손(헌병의 손)으로는 노동운동의 발전을 붙잡아 둘 수 없다고 지적한 다음 이렇게 이어 간다. “… 노동운동이 이처럼 끈질긴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은, 노동자가 마침내 자기 운명을 지도자들의 손에서 빼앗아 스스로 떠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기본 명제가 뒤에서 자세히 전개된다. 실제로는 지도자들(곧 사회민주주의자들, 투쟁동맹의 조직가들)이 이를테면 노동자들의 손에서 경찰에게 빼앗겼는데[6], 이야기는 마치 노동자들이 이 지도자들과 투쟁을 벌여 그들의 멍에에서 벗어난 것처럼 그려진다! 혁명 조직을 다지고 정치 활동을 넓히는 쪽으로 앞으로 나아가자고 부르는 대신, 트레이드유니언주의 투쟁 하나로 뒷걸음질 치자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치적 이상을 늘 잊지 않으려는 노력 때문에 운동의 경제적 기초가 흐려진다”고, 노동운동의 표어는 “경제적 처지를 위한 투쟁”(!)이라고, 더 낫게는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라고 선언했다. 파업 기금이 “운동에는 다른 조직 백 개보다 더 소중하다”고 공언했다(1897년 10월의 이 주장을 1897년 초 “데카브리스트”와 “젊은이들” 사이의 논쟁과 견주어 보라) 따위다. 노동자의 “정수”가 아니라 “평균적” 노동자, 대중적 노동자를 머릿돌로 삼아야 한다느니, “정치는 언제나 고분고분 경제를 따른다”느니[7] 하는 따위의 말들이 유행이 되었고, 운동에 끌려 들어온 젊은이들 대다수에게 거역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다. 이 젊은이들은 대개 합법적으로 서술된 마르크스주의의 부스러기만을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자생성이 의식성을 완전히 짓누른 것이었다. V. V. 씨[옮긴이 1]의 “사상”을 되풀이하던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자생성, 그리고 1루블에 1코페이카라도 더 받는 것이 어떤 사회주의나 어떤 정치보다도 가깝고 소중하다는 논거, 노동자들은 “어떤 미래 세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위해 싸운다는 것을 알면서 투쟁”해야 한다는 논거(《라보차야 미슬》 제1호 사설)에 넘어간 노동자들의 자생성이 그랬다. 이런 문구는 언제나 서유럽 부르주아들이 즐겨 쓰는 무기였다. 그들은 사회주의를 미워하면서도, (독일의 “사회정책가” 히르슈처럼) 스스로 영국의 트레이드유니언주의를 제 나라 땅에 옮겨 심는 일에 매달렸고, 노동자들에게 직업별 투쟁[8]만이 바로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들을 위한 투쟁이지 어떤 미래의 사회주의를 지닌 어떤 미래 세대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V. V.들”이 이 부르주아적 문구를 되풀이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세 가지 사정을 짚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이 사정들은 뒤에서 오늘날의 의견 차이를 분석할 때 우리에게 아주 쓸모가 있을 것이다[9].

첫째, 우리가 지적한 자생성의 의식성 압살도 자생적인 길로 일어났다.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아아! 이것은 쓰라린 진실이다. 그것은 완전히 상반된 두 견해가 공공연히 투쟁해 한쪽이 다른 쪽을 이긴 길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헌병들이 “늙은” 혁명가들을 점점 더 많이 “빼앗아 가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V. V.들”인 “젊은이들”이 점점 더 많이 무대에 등장하는 길로 일어났다. 오늘날의 러시아 운동에 참여한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공기를 조금이라도 맡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정이 바로 그렇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 그런데도 우리가 독자에게 이 누구나 아는 사실을 똑똑히 이해해 달라고 특히 고집한다면, 이를테면 눈에 보이게 하려고 첫 번째 《라보체예 델로》에 관한 자료와 1897년 초 “늙은이들”과 “젊은이들” 사이의 논쟁에 관한 자료를 든다면, 그것은 자기들의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또는 아주 어린 젊은이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이용해 투기를 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하겠다.

둘째, 우리는 “경제주의”가 문헌에 처음 드러났을 때부터 이미 아주 독특하고,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모든 의견 차이를 이해하는 데 극히 특징적인 현상을 볼 수 있다. “순수한 노동운동”의 지지자들,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가장 긴밀하고 가장 “유기적인”(《라보체예 델로》의 표현) 연관을 숭배하는 자들, 노동자가 아닌 모든 인텔리겐치아(그것이 사회주의적 인텔리겐치아일지라도)의 반대자들이 자기 입장을 지키려고 부르주아적 “순수 트레이드유니언주의자들”의 논거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현상이다. 이것은 《라보차야 미슬》이 처음부터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크레도」의 강령을 실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라보체예 델로》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노동운동의 자생성에 대한 모든 숭배, “의식적 요소”의 역할, 사회민주주의의 역할에 대한 모든 깎아내리기가 깎아내리는 사람이 그것을 바라든 바라지 않든 전혀 상관없이, 노동자들에 대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강화하는 것을 바로 그 자체로 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10], 의식적 요소의 역할에 대한 과장[11] 따위를 떠드는 사람은 모두, 노동자들이 “지도자들의 손에서 자기 운명을 빼앗기만” 하면 순수한 노동운동이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낼 수 있고 또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러나 이것은 깊은 오류다. 위에서 말한 것에 덧붙여 카를 카우츠키가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새 강령 초안에 관해 한, 깊이 옳고 중요한 다음 말을 들어 보자[12].

“우리 수정주의 비판가들 가운데 많은 이들은 마르크스가 경제 발전과 계급투쟁이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만이 아니라 그 필연성에 대한 의식(강조는 카를 카우츠키)까지 직접 낳는다고 주장했다고 여긴다. 그러고는 자본주의가 가장 높이 발전한 나라인 영국이 이 의식과 가장 거리가 멀다고 반박한다. 초안을 보면, 이런 식으로 반박당하는 이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 견해를 오스트리아 강령을 기초한 위원회도 공유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초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자본주의 발전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늘릴수록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또 투쟁할 수 있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의식에 이른다’, 곧 사회주의의 가능성과 필연성에 대한 의식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는 사회주의적 의식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필연적이고 직접적인 결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히 틀렸다. 물론 학설로서의 사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경제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고, 계급투쟁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가 낳는 대중의 빈곤과 궁핍에 맞선 투쟁에서 흘러나온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계급투쟁은 서로 나란히 생겨나는 것이지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서로 다른 전제 아래서 생겨난다. 현대의 사회주의적 의식은 깊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실제로 현대 경제학은 이를테면 현대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이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리 원해도 그 어느 것도 만들어 낼 수 없다. 둘 다 현대의 사회적 과정에서 생겨난다. 그런데 과학의 담지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강조는 카를 카우츠키)다. 현대 사회주의도 이 층의 개별 성원들의 머릿속에서 생겨났고, 그들이 지적 발달이 뛰어난 프롤레타리아들에게 전해 주었으며, 이 프롤레타리아들이 다시 조건이 허락하는 곳에서 그것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속으로 가져간다. 이렇게 사회주의적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 속으로 외부로부터 들여온 것(von außen Hineingetragenes)이지, 계급투쟁에서 자생적으로(urwüchsig)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옛 하인펠트 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그 처지에 대한 의식과 그 과제에 대한 의식을 불어넣는 것(말 그대로 옮기면 프롤레타리아트를 그 의식으로 채우는 것)이라고 아주 옳게 말했다. 이 의식이 계급투쟁에서 저절로 흘러나온다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새 초안은 이 명제를 옛 강령에서 가져와 위에 인용한 명제에 꿰매 붙였다. 그러나 이로써 생각의 흐름이 완전히 끊어져 버렸다…”

노동자 대중이 자기 운동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독자적 이데올로기란 것이 말이 안 되는 이상[13], 문제는 오직 이렇게 놓인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냐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냐. 여기에 중간은 없다(인류는 어떤 “제3의” 이데올로기도 만들어 내지 못했고, 일반적으로 계급 대립으로 찢긴 사회에서는 계급 밖의 이데올로기나 계급 위의 이데올로기란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조금이라도 깎아내리는 것, 거기서 조금이라도 멀어지는 것은 바로 그 자체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생성을 떠든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자생적 발전은 바로 노동운동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종속시키는 쪽으로, 바로 「크레도」의 강령대로 나아간다. 자생적 노동운동은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이고 순수 노동조합주의(Nur-Gewerkschaftlerei)이며, 트레이드유니언주의는 바로 부르주아지에 의한 노동자들의 사상적 예속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과제, 사회민주주의의 과제는 자생성과의 투쟁에 있다. 부르주아지의 날개 밑으로 들어가려는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이 자생적 지향에서 노동운동을 떼어 내어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날개 밑으로 끌어오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스크라》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 편지의 필자들이 쓴 문구, 곧 가장 영감에 찬 이데올로그들의 어떤 노력도 물질적 요소와 물질적 환경의 상호작용이 정하는 길에서 노동운동을 떼어 낼 수 없다는 문구는 사회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완전히 같다. 문필 활동과 사회 활동의 무대에 나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야 하듯이, 이 필자들이 자기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두려움 없이 일관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면, 그들에게는 “텅 빈 가슴 위에 쓸모없는 팔을 포개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고 노동운동을 “최소 저항선을 따라”, 곧 부르주아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선을 따라 끌고 가는 스트루베 씨와 프로코포비치 씨 같은 이들에게, 또는 노동운동을 사제와 헌병의 “이데올로기”의 선을 따라 끌고 가는 주바토프 씨 같은 이들에게 활동 무대를 내주는 것밖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독일의 예를 떠올려 보라. 독일 노동운동에 대한 라살레의 역사적 공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가 이 운동을, 그 운동이 (슐체-델리치 같은 이들의 호의적인 참여 아래) 자생적으로 향하던 진보당식 트레이드유니언주의와 협동조합주의의 길에서 떼어 낸 데 있었다. 이 과제를 해내는 데는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니, 과정으로서의 전술이니, 요소와 환경의 상호작용이니 하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러려면 자생성과의 필사적인 투쟁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랜,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벌어진 그런 투쟁의 결과로만, 예컨대 베를린의 노동자 주민이 진보당의 버팀목에서 사회민주당의 가장 좋은 요새 가운데 하나로 바뀌는 일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투쟁은 지금도 결코 끝나지 않았다(독일 운동의 역사를 프로코포비치에게서, 그 철학을 스트루베에게서 배우는 사람들에게는 끝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독일 노동계급은,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여러 이데올로기 사이에 쪼개져 있다. 노동자의 일부는 가톨릭과 군주제의 노동자 조합으로, 다른 일부는 영국 트레이드유니언주의를 숭배하는 부르주아들이 세운 히르슈-둥커 조합으로, 셋째 부분은 사회민주주의 조합으로 묶여 있다. 마지막 부분은 다른 모든 부분보다 헤아릴 수 없이 크지만, 사회민주주의 이데올로기는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와 끈질기게 투쟁함으로써만 이 우위를 얻을 수 있었고, 또 그렇게 해야만 이 우위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는 물을 것이다. 왜 자생적 운동, 최소 저항선을 따르는 운동은 바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지배로 나아가는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기원으로 보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오래되었고, 더 다방면으로 다듬어졌으며, 헤아릴 수 없이 더 많은 전파 수단을 지니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14]. 그러므로 어떤 나라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젊을수록, 비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굳히려는 모든 시도에 맞선 투쟁은 더 힘차야 하고, “의식적 요소의 과장” 따위를 외치는 나쁜 조언자들을 경계하라고 노동자들에게 더 단호하게 일러 주어야 한다. “경제주의” 편지의 필자들은 《라보체예 델로》와 한목소리로 운동의 유아기에 특유한 편협함을 공격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그렇다, 우리 운동은 정말로 유아기에 있다. 그리고 더 빨리 어른이 되려면 운동은 바로, 자생성 숭배로 그 성장을 가로막는 사람들에 대한 편협함에 감염되어야 한다. 투쟁의 결정적인 고비를 모두 오래전에 겪어 낸 늙은이 행세를 하는 것만큼 우스꽝스럽고 해로운 것은 없다!

셋째, 《라보차야 미슬》 제1호는 “경제주의”라는 이름(물론 우리는 이 이름을 버릴 생각이 없다. 어쨌든 이 별명은 이미 굳어졌기 때문이다)이 새 경향의 본질을 충분히 정확하게 전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라보차야 미슬》은 정치투쟁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다. 《라보차야 미슬》 제1호에 실린 기금 규약에도 정부와의 투쟁이 언급된다. 《라보차야 미슬》은 다만 “정치는 언제나 고분고분 경제를 따른다”고 여길 뿐이다(그리고 《라보체예 델로》는 이 명제를 변주해 자기 강령에서 “러시아에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경제투쟁이 정치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다”고 장담한다). 《라보차야 미슬》과 《라보체예 델로》의 이 명제들은 정치를 사회민주주의 정치로 이해한다면 완전히 틀렸다. 이미 보았듯이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은 아주 흔히 부르주아 정치, 성직자 정치 따위와 (떼려야 뗄 수 없이는 아니지만) 연결된다. 《라보체예 델로》의 명제는 정치를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로, 곧 자기 처지에 따르는 고통에 맞서는, 그러나 그 처지 자체를 없애지는 못하는, 곧 노동이 자본에 종속된 상태를 폐기하지는 못하는 이런저런 조치를 국가로부터 얻어 내려는 모든 노동자의 일반적 지향으로 이해한다면 옳다. 이 지향은 정말로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영국의 트레이드유니언주의자들에게도, 가톨릭 노동자들에게도, “주바토프식” 노동자들에게도,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공통된다. 정치에도 정치 나름이다. 이렇게 우리는 《라보차야 미슬》이 정치투쟁에 대해서도 그것을 부정한다기보다는 그 자생성, 그 무의식성을 숭배한다는 것을 본다. 노동운동 자체에서 자생적으로 자라나는 정치투쟁(더 정확히 말하면 노동자들의 정치적 바람과 요구)은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사회주의의 일반적 과제와 오늘날 러시아의 조건에 부응하는 특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독자적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뒤에서 《라보체예 델로》의 오류도 이와 같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다) “노동자 자기해방단”과 《라보체예 델로》

우리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은 거의 잊힌 《라보차야 미슬》 창간호 사설을 이렇게 자세히 분석한 것은, 그 사설이 나중에 수없이 많은 작은 물줄기로 세상에 흘러나온 전반적인 흐름을 누구보다 먼저, 누구보다 뚜렷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V. I.는 《라보차야 미슬》 창간호와 그 사설을 칭찬하면서 그것이 “날카롭게, 패기 있게” 쓰였다고 말했는데(《라보트니크 소식지》 제9~10호, 49쪽), 그 말은 아주 옳았다. 자기 의견을 확신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내놓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패기 있게” 쓰며, 자기 견해를 뚜렷하게 드러내도록 쓴다. 두 의자 사이에 앉는 데 익숙한 사람들에게만 아무런 “패기”도 없다. 그런 사람들만이 어제는 《라보차야 미슬》의 패기를 칭찬하고 오늘은 그 반대자들을 “논쟁적 패기”를 이유로 공격할 수 있다.

『《라보차야 미슬》 별책 부록』은 건너뛰고(이 저작은 “경제주의자들”의 사상을 가장 일관되게 표현하므로 뒤에서 여러 계기에 인용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 자기해방단의 호소문」(1899년 3월, 런던의 《나카누네》 제7호, 1899년 7월에 다시 실림)만 간단히 짚어 두겠다. 이 호소문의 필자들은 “노동자 러시아는 이제 막 깨어나고 있을 뿐이며, 이제 막 주위를 둘러보며 본능적으로 손에 잡히는 대로 투쟁 수단을 붙잡고 있다”고 아주 옳게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기서 《라보차야 미슬》과 똑같은 그릇된 결론을 끌어낸다. 본능성이란 바로 무의식성(자생성)이며 사회주의자들이 그것을 도와야 한다는 것, 현대 사회에서 “손에 잡히는 대로”의 투쟁 수단은 언제나 트레이드유니언주의적 투쟁 수단일 것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트레이드유니언주의) 이데올로기일 것이라는 사실을 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필자들도 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다만(다만!) V. V. 씨를 따라 정치가 상부구조이며, 그러므로 “정치 선동은 경제투쟁을 위한 선동 위의 상부구조여야 하고, 이 투쟁의 토양에서 자라나 그 뒤를 따라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라보체예 델로》로 말하자면, 그것은 아예 “경제주의자들”을 “변호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라보체예 델로》는 바로 창간호(제1호, 141~142쪽)에서 자기는 악셀로드가 유명한 소책자에서 “경제주의자들”에게 경고하며 “어떤 젊은 동지들을 말했는지 모른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15]. 그러고는 이 거짓말을 둘러싸고 악셀로드와 플레하노프를 상대로 불붙은 논쟁에서, 자기는 “의아해하는 형식으로 국외의 더 젊은 사회민주주의자들 모두를 이 부당한 비난에서 변호하려 했다”고(악셀로드가 “경제주의자들”의 편협함을 비난한 것을 두고) 인정해야 했다. 실제로는 이 비난은 아주 정당했고, 《라보체예 델로》는 그 비난이 무엇보다 자기 편집부원인 V. I.에게도 떨어진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이 논쟁에서 내 소책자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과업』을 해석하는 데서 악셀로드는 완전히 옳았고 《라보체예 델로》는 완전히 틀렸다. 이 소책자는 1897년, 아직 《라보차야 미슬》이 나오기 전에 쓴 것이다. 그때 나는 위에서 그 특징을 그려 보인 페테르부르크 투쟁동맹의 처음 경향이 지배적이라고 여겼고, 그렇게 여길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1898년 중반까지는 이 경향이 실제로 지배적이었다. 그러므로 1897~1898년 페테르부르크에서 “경제주의적” 견해에 밀려난 견해를 서술한 소책자를 들어 “경제주의”의 존재와 위험을 반박할 권리가 《라보체예 델로》에게는 조금도 없었다[16].

그러나 《라보체예 델로》는 “경제주의자들”을 “변호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도 끊임없이 그들의 기본 오류로 빠져들었다. 이런 헷갈림의 근원은 《라보체예 델로》 강령의 다음 명제를 두 가지 뜻으로 이해하는 데 있었다. “우리는 최근 몇 해 사이에 생겨난 대중적 노동운동(강조는 《라보체예 델로》)을 러시아 생활의 가장 중요한 현상으로 여기며, 이 현상이 주로 동맹의 문필 활동의 과제(강조는 우리)와 성격을 정할 것이다.” 대중운동이 가장 중요한 현상이라는 데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문제는 모두 이 대중운동이 “과제를 정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있다. 이것은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이 운동의 자생성을 숭배하는 의미로, 곧 사회민주주의의 역할을 노동운동 그 자체에 대한 단순한 시중으로 끌어내리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라보차야 미슬》, “자기해방단”, 그 밖의 “경제주의자들”의 이해). 다른 하나는 대중운동이 우리 앞에 대중운동이 생겨나기 전 시기에 만족할 수 있었던 과제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새로운 이론적·정치적·조직적 과제를 내놓는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다. 《라보체예 델로》는 바로 첫째 이해로 기울었고 지금도 기울어 있다. 그것은 어떤 새로운 과제에 대해서도 무엇 하나 분명히 말하지 않았고, 시종일관 마치 이 “대중운동”이 그것이 내놓는 과제를 분명히 의식하고 해결해야 할 필요에서 우리를 면제해 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추론했기 때문이다. 《라보체예 델로》가 전제정 타도를 대중적 노동운동의 첫째 과제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대중운동의 이름으로) 이 과제를 당면한 정치적 요구를 위한 투쟁 과제로 끌어내렸다는 것(「답변」, 25쪽)을 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라보체예 델로》 편집자 보리스 크리쳅스키가 제7호에 쓴 글 「러시아 운동에서의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은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므로 건너뛰고[17], 곧바로 《라보체예 델로》 제10호로 넘어가자. 물론 우리는 크리쳅스키와 마르티노프가 《자랴》와 《이스크라》에 대해 내놓은 개별 반박을 하나하나 분석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라보체예 델로》가 제10호에서 취한 원칙적 입장뿐이다. 예컨대 우리는 《라보체예 델로》가 다음 두 명제 사이에서 “정반대의 모순”을 찾아냈다는 웃음거리는 분석하지 않겠다. 하나는 이것이다.

“사회민주주의는 미리 고안해 낸 어떤 한 가지 정치투쟁 계획이나 방법으로 제 손을 묶지 않고 제 활동을 좁히지 않는다. 사회민주주의는 당이 지닌 힘에 걸맞기만 하다면 모든 투쟁 수단을 인정한다” 등등(《이스크라》 제1호). 다른 하나는 이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시기에든 정치투쟁에 단련된 튼튼한 조직이 없다면, 확고한 원칙에 비추어진,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체계적인 활동 계획, 오직 그것만이 전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그런 계획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이스크라》 제4호).

원칙적으로 모든 투쟁 수단, 모든 계획과 방법을 그것이 목적에 맞기만 하다면 인정하는 것과, 전술을 말하려면 주어진 정치적 시점에서 흔들림 없이 실행되는 계획을 따라야 한다는 요구를 섞어 버리는 것은, 의학이 온갖 치료 체계를 인정하는 것과 주어진 병을 치료할 때 한 가지 특정한 체계를 고수하라는 요구를 섞어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라보체예 델로》가 우리가 자생성 숭배라고 부른 병을 스스로 앓고 있으면서 이 병의 어떤 “치료 체계”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것은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제10호, 18쪽)는 놀라운 발견, 전술이란 “당과 함께 자라는 당 과제의 성장 과정”(11쪽, 강조는 《라보체예 델로》)이라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이 마지막 금언은 유명한 금언이 될 가능성, 《라보체예 델로》의 “경향”을 기리는 무너지지 않는 기념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지도 기관이 내놓는 대답은 이렇다. 운동이란 운동의 출발점과 그다음 지점 사이의 거리가 바뀌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비할 데 없는 심오함은 웃음거리일 뿐 아니라(그렇다면 특별히 붙들고 늘어질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한 경향 전체의 강령이기도 하다. 바로 R. M.이 (『《라보차야 미슬》 별책 부록』에서) “바람직한 것은 가능한 투쟁이며, 가능한 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다”라는 말로 표현한 그 강령이다. 이것이야말로 자생성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끝없는 기회주의 경향이다.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중상이요, 마르크스주의를 인민주의자들이 우리와 전쟁하면서 우리에게 들이대던 바로 그 캐리커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의식적 활동가들의 주도성과 정력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반대로 마르크스주의는 사회민주주의자의 주도성과 정력에 엄청난 추진력을 주며, 그에게 가장 넓은 전망을 열어 주고, (이렇게 표현해도 된다면) “자생적으로” 투쟁에 떨쳐 일어나는 수백만, 수백만 노동계급의 강력한 힘을 그의 손에 맡겨 준다! 국제 사회민주주의의 역사 전체에는 이 정치 지도자 또는 저 정치 지도자가 내놓은 계획이 넘쳐 난다. 그 계획들은 어떤 이의 정치적·조직적 견해의 선견지명과 올바름을 입증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근시안과 정치적 오류를 드러내기도 했다. 독일이 제국의 형성, 제국의회의 개원, 보통선거권 부여라는 가장 큰 역사적 전환 가운데 하나를 겪었을 때, 사회민주주의 정치와 활동 일반에 대해 리프크네히트에게는 한 가지 계획이, 슈바이처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독일 사회주의자들에게 예외법이 떨어졌을 때, 그냥 폭력과 테러를 부르짖을 태세였던 모스트와 하셀만에게는 한 가지 계획이 있었다. 회흐베르크, 슈람, 그리고 (부분적으로) 베른슈타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분별없는 날카로움과 혁명성으로 그 법을 불러들였으니 이제 모범적인 행실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셋째 계획은 비합법 기관지를 준비하고 펴낸 사람들에게 있었다. 길을 고르는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 끝나고 역사가 고른 길이 쓸모 있는지에 대해 최종 판결을 내린 지 여러 해 뒤에 뒤돌아보면서, 당과 함께 자라는 당 과제의 성장에 관한 금언으로 심오함을 뽐내기란 물론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혼란의 시기에[18], 러시아의 “비판가들”과 “경제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를 트레이드유니언주의로 끌어내리고 테러리스트들이 옛 오류를 되풀이하는 “계획으로서의 전술”을 받아들이라고 열심히 설교하는 그런 때에 이런 심오함으로 그친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빈곤 증명서”를 떼어 주는 것이다. 많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바로 주도성과 정력의 부족, “정치 선전·선동·조직의 폭”의 부족[19], 혁명 사업을 더 넓게 펼칠 “계획”의 부족에 시달리는 때에, 그런 때에 “계획으로서의 전술은 마르크스주의의 기본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속되게 만드는 것일 뿐 아니라 실천적으로 당을 뒤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라보체예 델로》는 이어서 이렇게 가르친다. “혁명가인 사회민주주의자의 과제는 자신의 의식적 활동으로 객관적 발전을 앞당기는 것일 뿐, 그것을 폐지하거나 주관적 계획으로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크라》는 이론으로는 이 모든 것을 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의식적 혁명 활동에 정당하게 부여하는 거대한 의의 때문에, 《이스크라》는 전술에 대한 교조적 견해 탓에 실천에서는 객관적 또는 자생적 발전 요소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쪽으로 이끌린다”(18쪽).

또다시 V. V. 씨와 그 무리에게나 어울릴 엄청난 이론적 혼란이다. 우리는 우리 철학자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주관적 계획을 짜는 사람이 객관적 발전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날 수 있는가? 분명 이 객관적 발전이 이런저런 계급, 계층, 집단, 이런저런 민족, 민족 집단 따위를 만들어 내거나 강화하고, 망하게 하거나 약화하며, 그로써 이러저러한 국제적 정치 세력 배치, 혁명 정당들의 입장 따위를 규정한다는 것을 놓치는 데서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 경우 그런 사람의 잘못은 자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의식적 요소를 과소평가한 데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객관적 발전을 올바로 이해할 “의식성”이 모자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생성과 의식성의 “상대적(강조는 《라보체예 델로》) 의의를 평가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의식성”이 완전히 없다는 것을 드러낸다. 어떤 “자생적 발전 요소”가 대체로 인간의 의식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그릇되게 평가하는 것은 “의식적 요소의 과소평가”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의식에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것에 대해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크리쳅스키는 무엇을 떠드는 것인가? 그가 《이스크라》의 “주관적 계획”을 그릇되다고 여긴다면(그는 바로 그것을 그릇되다고 선언한다), 그는 이 계획이 바로 어떤 객관적 사실들을 무시하는지 보여 주고, 이 무시를 이유로 《이스크라》를 의식성 부족으로, 그의 말투를 빌리면 “의식적 요소의 과소평가”로 비난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가 주관적 계획이 못마땅하면서도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를 들먹이는 것 말고 다른 논거가 없다면, 그는 그로써 다음을 증명할 뿐이다. (1) 이론적으로 그는 벨토프에게 실컷 조롱당한 카레예프나 미하일롭스키 같은 이들 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이해한다. (2) 실천적으로 그는 우리의 합법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베른슈타인주의로, 우리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을 “경제주의”로 이끈 그 “자생적 발전 요소”에 아주 만족하며, 무슨 일이 있어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를 “자생적” 발전의 길에서 떼어 내기로 결심한 사람들에게 “몹시 성이 나” 있다.

그다음은 아주 우스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자연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의 방식으로 번식하듯이, 새로운 사회질서의 탄생도 사회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의식적 투사들이 아무리 늘어나도 앞으로 주로 자생적 폭발의 결과일 것이다”(19쪽). 아이를 갖는 데 머리가 모자랄 사람이 누가 있느냐는 것이 조상 대대로의 지혜이듯이, “최신 사회주의자들”(나르치스 투포릴로프 식)의 지혜는 새로운 사회질서의 자생적 탄생에 참여하는 데는 누구나 머리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누구나 충분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런 참여를 하려면 “경제주의”가 판을 칠 때는 “경제주의”에, 테러리즘이 생겨났을 때는 테러리즘에 휩쓸리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라보체예 델로》는 올봄, 테러에 대한 열광을 경계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했을 때 자기에게는 “새로운” 이 문제 앞에서 어리둥절해 서 있었다. 그런데 반년이 지나 이 문제가 더는 그렇게 절박한 화제가 아니게 된 지금, 그것은 우리에게 “우리는 테러리즘적 분위기의 고조에 맞서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과제일 수 없고 과제여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보체예 델로》 제10호, 23쪽)는 선언과 “대회는 체계적인 공세적 테러를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인정한다”(『두 대회』, 18쪽)는 대회 결의를 한꺼번에 내놓는다. 이 얼마나 놀랍도록 분명하고 조리 있는가! 맞서지는 않지만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선언한다. 그것도 체계적이지 않고 방어적인 테러는 “결의”에 포함되지 않도록 선언한다. 이런 결의는 아주 안전하며 오류로부터 완전히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말한 사람이 오류로부터 보장되어 있듯이! 그리고 이런 결의를 짜는 데는 한 가지만 있으면 된다. 운동의 꼬리를 붙들고 있을 줄 아는 것이다. 《이스크라》가 《라보체예 델로》가 테러 문제를 새로운 문제라고 선언한 것을 비웃자, 《라보체예 델로》는 성이 나서 《이스크라》가 “15년도 더 전에 망명 문필가 그룹이 내린 전술 문제의 해답을 당 조직에 강요하려는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주제넘음”(24쪽)을 지녔다고 비난했다. 정말이지 이 얼마나 주제넘고 의식적 요소를 과장하는 일인가. 문제를 미리 이론적으로 해결해 두었다가 나중에 그 해결이 옳다고 조직도, 당도, 대중도 설득하려 하다니![20] 그보다는 그저 남이 한 말을 되풀이하면서,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경제주의” 쪽으로든 테러리즘 쪽으로든 모든 “전환”에 순순히 따르는 것이 훨씬 낫다. 《라보체예 델로》는 이 위대한 처세의 지혜를 일반화하기까지 해서, 《이스크라》와 《자랴》가 “형체 없는 혼돈 위를 떠도는 영처럼 자기 강령을 운동에 맞세운다”(29쪽)고 비난한다. 그러나 자생적 운동 위를 떠돌 뿐 아니라 그 운동을 “자기 강령”으로까지 끌어올리는 “영”이 되는 것 말고 사회민주주의의 역할이 무엇이란 말인가? 운동의 꼬리에서 질질 끌려가는 것이 사회민주주의의 역할일 리는 없다. 그것은 기껏해야 운동에 쓸모가 없고, 나쁘면 아주아주 해롭다. 그런데 《라보체예 델로》는 이 “과정으로서의 전술”을 따를 뿐 아니라 그것을 원칙으로까지 끌어올린다. 그러니 그 경향은 기회주의라기보다 (꼬리라는 낱말에서 따서) 꼬리주의라고 부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운동의 꼬리로서 운동을 따라가기로 굳게 결심한 사람들은 “자생적 발전 요소의 과소평가”로부터 영원히,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 *

이렇게 우리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안 “새 경향”의 기본 오류가 자생성 숭배에 있다는 것, 대중의 자생성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대량의 의식성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대중의 자생적 고양이 클수록, 운동이 넓어질수록, 사회민주주의의 이론 활동에서도, 정치 활동에서도, 조직 활동에서도 대량의 의식성에 대한 요구는 그보다 비할 수 없이 더 빠르게 커진다.

러시아에서 대중의 자생적 고양은 너무나 빠르게 일어났기에(그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에) 사회민주주의 젊은이들은 이 거대한 과제를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 준비 부족은 우리 모두의 불행, 모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불행이다. 대중의 고양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진행되고 넓어졌다. 그것이 시작된 곳에서 멈추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새로운 지방과 새로운 주민층을 휩쓸었다(노동운동의 영향을 받아 학생 청년, 인텔리겐치아 일반, 심지어 농민층 사이에서도 동요가 되살아났다). 그런데 혁명가들은 자기들의 “이론”에서도 활동에서도 이 고양에 뒤처졌고, 운동 전체를 지도할 수 있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조직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제1장에서 우리는 《라보체예 델로》가 우리의 이론적 과제를 깎아내리고 유행하는 구호 “비판의 자유”를 “자생적으로” 되풀이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것을 되풀이한 사람들에게는 독일과 러시아에서 기회주의자 “비판가들”과 혁명가들의 입장이 정반대라는 것을 이해할 “의식성”이 모자랐다.

다음 장들에서 우리는 이 자생성 숭배가 정치적 과제의 영역과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활동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살펴보겠다.

III.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

마) 민주주의를 위한 선두 투사로서의 노동계급

우리는 가장 폭넓은 정치 선동을 벌이는 것, 따라서 전면적인 정치적 폭로를 조직하는 것이, 그 활동이 참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필요하며 무엇보다 시급히 필요한 활동 과제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정치적 지식과 정치적 교육에 대한 노동계급의 가장 절실한 요구에서 출발해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를 이렇게만 설정하는 것은 너무 좁을 것이고, 모든 사회민주주의 일반의, 특히 오늘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전반적 민주주의 과제를 무시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 명제를 될수록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경제주의자”에게 가장 “가까운” 쪽, 곧 실천적인 쪽에서 문제에 다가가 보자. “모두가 동의하듯이” 노동계급의 정치의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묻겠다.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이며,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경제투쟁은 노동자들을 노동계급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 관한 문제로만 “이끌어 간다.” 그러므로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한다”는 과제에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이 과제의 틀 안에서는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을 (사회민주주의적 정치의식의 단계까지) 결코 발전시킬 수 없다. 그 틀 자체가 좁기 때문이다. 마르티노프의 공식이 우리에게 값진 것은 그것이 마르티노프의 헷갈리게 하는 재주를 보여 주어서가 결코 아니라, 그것이 모든 “경제주의자들”의 기본 오류, 곧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의식을 이를테면 그들의 경제투쟁 내부로부터, 다시 말해 이 투쟁에서만(또는 적어도 주로 이 투쟁에서) 출발하고, 이 투쟁에만(또는 적어도 주로 이 투쟁에) 기대어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뚜렷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는 뿌리부터 그릇되다. 그리고 바로 “경제주의자들”이 자기들에 대한 우리의 논쟁에 성을 내면서 의견 차이의 근원을 곰곰이 생각해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말 그대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는 꼴이 된다.

계급적 정치의식은 오직 외부로부터만, 곧 경제투쟁 바깥으로부터, 노동자와 고용주의 관계라는 영역 바깥으로부터만 노동자에게 들여올 수 있다. 이 지식을 길어 올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은 모든 계급과 계층이 국가 및 정부와 맺는 관계의 영역, 모든 계급 사이의 상호 관계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지식을 들여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실천가들이, “경제주의”로 기운 실천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만족하는 대답, 곧 “노동자들 속으로 가라”는 대답 하나만 내놓을 수는 없다.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지식을 들여오려면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가야 하며, 자기 군대의 부대를 사방으로 보내야 한다.

우리가 일부러 이렇게 모난 표현을 고르고 일부러 단순하고 날카롭게 말하는 것은 결코 역설을 늘어놓고 싶어서가 아니다. “경제주의자들”이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소홀히 하는 과제, 그들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로 그들을 제대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다. 그러니 독자는 흥분하지 말고 우리 말을 끝까지 주의 깊게 들어 주기 바란다.

최근 몇 해 동안 가장 널리 퍼진 사회민주주의 서클 유형을 하나 골라 그 활동을 살펴보라. 그 서클은 “노동자들과 연계”가 있고, 공장의 횡포, 자본가에게 치우친 정부의 처신,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전단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노동자들과의 모임에서 이야기는 보통 같은 주제를 벗어나지 않거나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혁명 운동의 역사, 우리 정부의 대내외 정책 문제, 러시아와 유럽의 경제적 진화 문제, 현대 사회에서 이런저런 계급이 처한 처지 따위에 관한 강연과 대담은 아주 드물고, 사회의 다른 계급들 속에서 체계적으로 연계를 얻고 넓히는 일은 아무도 꿈조차 꾸지 않는다. 사실 이런 서클의 성원들에게 활동가의 이상은 대개 사회주의자인 정치 지도자보다는 노동조합 서기에 훨씬 더 가까운 모습으로 그려진다. 예컨대 영국의 어느 노동조합 서기든 언제나 노동자들이 경제투쟁을 벌이도록 돕고, 공장 폭로를 조직하고, 파업의 자유와 파업 감시대를 세울 자유(이 공장에서 파업 중이라고 모든 사람에게 알리기 위한)를 제약하는 법률과 조치가 부당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인민 가운데 부르주아 계급에 속하는 중재 재판관이 편파적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따위의 일을 한다. 한마디로 노동조합 서기는 누구나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을 벌이고 또 그것을 돕는다. 그리고 이것은 아직 사회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것, 사회민주주의자의 이상은 노동조합 서기가 아니라 인민의 호민관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민의 호민관이란 전횡과 억압이 어디서 일어나든, 어떤 계층이나 계급에 관한 것이든 그 모든 표현에 응답할 줄 알고, 그 모든 표현을 경찰 폭력과 자본주의 착취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일반화할 줄 알며, 모든 사소한 일을 이용해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과 민주주의적 요구를 펼치고, 프롤레타리아트 해방 투쟁의 세계사적 의의를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이다. 예컨대 로버트 나이트(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노동조합 가운데 하나인 보일러공 조합의 유명한 서기이자 지도자) 같은 활동가와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를 비교하고, 마르티노프가 《이스크라》와의 의견 차이를 담는 대립 구도를 이들에게 적용해 보라. 그러면, 나는 마르티노프의 글을 넘겨 보기 시작하는데, 다음과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나이트는 훨씬 더 많이 “대중을 일정한 구체적 행동으로 불러냈고”(39쪽), 리프크네히트는 “현존 체제 전체 또는 그 부분적 표현들을 혁명적으로 조명하는” 일을 더 많이 했다(38~39쪽). 나이트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당면 요구를 정식화하고 그 실현 수단을 가리켰으며”[21](41쪽), 리프크네히트는 그 일도 하면서 “동시에 여러 반대파 계층의 능동적 활동을 지도하고” “그들에게 적극적인 행동 강령을 불러 주는”(41쪽)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이트는 바로 “될수록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려” 애썼고(42쪽), “일정한 손에 잡히는 결과를 약속하는 구체적 요구를 정부에 내놓는” 일을 아주 잘했으며(43쪽), 리프크네히트는 “일면적인” “폭로”를 훨씬 더 많이 했다(40쪽). 나이트는 “잿빛 일상 투쟁의 점진적 전진”에 더 큰 의의를 두었고(61쪽), 리프크네히트는 “빛나고 완결된 사상의 선전”에 더 큰 의의를 두었다(61쪽). 리프크네히트는 자기가 지도하는 신문을 바로 “우리 질서, 특히 정치 질서가 주민의 가장 다양한 계층의 이익과 부딪치는 한에서 그 질서를 폭로하는 혁명적 반대파의 기관지”(63쪽)로 만들었고, 나이트는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일했다”(63쪽).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을 우리가 위에서 크리쳅스키와 마르티노프의 예로 살펴본 자생성 숭배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나이트는 “자기 영향력의 범위를 좁혔고”, 물론 마르티노프처럼 “그로써 영향력 자체를 복잡하게 만들었다”(63쪽)고 확신했다. 한마디로, 마르티노프가 사실상(de facto) 사회민주주의를 트레이드유니언주의로 끌어내린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가 잘되기를 바라지 않아서가 결코 아니라, 그저 플레하노프를 애써 이해하는 대신 플레하노프를 “심화하는” 일을 조금 서둘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이야기로 돌아가자.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식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야 할 필요를 말로만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면, 사회민주주의자는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물음들이 생긴다. 어떻게 그렇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 그럴 힘이 있는가? 다른 모든 계급 속에 그런 활동을 할 토양이 있는가? 그것은 계급적 관점에서 물러서는 것을 뜻하거나 그런 후퇴로 이어지지 않을까? 이 물음들을 살펴보자.

우리는 이론가로서도, 선전가로서도, 선동가로서도, 조직가로서도 “주민의 모든 계급 속으로 가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이론 활동이 개별 계급들의 사회적·정치적 처지의 모든 특성을 연구하는 쪽으로 향해야 한다는 데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점에서 이루어지는 일은 아주아주 적다. 공장 생활의 특성을 연구하는 활동에 견주면 균형이 맞지 않을 만큼 적다. 위원회와 서클에서 여러분은 어떤 제철 생산을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사람까지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조직 성원들이(흔히 그렇듯이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 활동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게 된 성원들이) 다른 주민층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활동을 벌일 계기를 줄 수 있는 우리 사회·정치 생활의 어떤 절박한 문제에 관해 자료를 모으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노동운동 지도자들 대다수의 준비가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이 점에서의 준비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 역시 “프롤레타리아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에 대한 “경제주의적” 이해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론 주된 것은 인민의 모든 층 속에서 하는 선전과 선동이다.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자에게는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오는 인민 집회와 모임이 이 과제를 쉽게 해 주고, 모든 계급의 대의원들 앞에서 연설하는 의회가 이 과제를 쉽게 해 준다. 우리에게는 의회도 집회의 자유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과 모임을 꾸릴 줄 안다. 우리는 또한 민주주의자의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주민의 모든 계급, 온갖 계급의 대표자들과도 모임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한순간도 감추지 않으면서 인민 전체 앞에서 전반적 민주주의 과제를 펼치고 강조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실제로 잊는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전반적 민주주의 문제를 제기하고 첨예화하고 해결하는 데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자기 의무를 실제로 잊는 사람은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참을성 없는 독자가 우리 말을 가로막는다. “그건 모두가 단연 동의하는 바다! 지난 동맹 대회에서 채택된 《라보체예 델로》 편집부에 대한 새 지침도 분명히 이렇게 말한다. ‘프롤레타리아트를 직접 특수한 계급으로서, 또는 자유를 위한 투쟁에서 모든 혁명 세력의 전위로서 건드리는 사회·정치 생활의 모든 현상과 사건이 정치 선전과 선동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두 대회』, 17쪽, 강조는 우리).” 그렇다. 이것은 아주 옳고 아주 좋은 말이다. 그리고 《라보체예 델로》가 이 말을 이해한다면, 그 말과 나란히 그 말과 어긋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만족할 것이다. “전위”, 곧 선두 부대라고 스스로 부르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다른 모든 부대가 우리가 앞장서 간다는 것을 보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독자에게 묻는다. 정말 다른 “부대”의 대표자들이 “전위”에 대한 우리 말을 그대로 믿을 만큼 바보란 말인가? 이런 장면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라. 러시아의 교육받은 급진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입헌주의자들의 “부대”에 사회민주주의자가 와서 말한다. 우리는 전위다. “지금 우리 앞에는 될수록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과제가 놓여 있다.” 조금이라도 똑똑한 급진주의자나 입헌주의자라면(그리고 러시아의 급진주의자와 입헌주의자 가운데는 똑똑한 사람이 많다) 이런 말을 듣고 그저 씩 웃으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물론 속으로. 그는 대개 노련한 외교가이니까). “이 ‘전위’는 참 순진하기도 하군! 노동자들의 경제투쟁 자체에 정치적 성격을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과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선진적 대표자들의 과제라는 것조차 모르다니. 우리도 모든 서유럽 부르주아들처럼 노동자들을 정치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다만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아니라 바로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로 말이다. 노동계급의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는 바로 노동계급의 부르주아 정치다. 그런데 이 ‘전위’가 자기 과제를 정식화한 것이 바로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의 정식화다! 그러니 그들이 원하는 만큼 자기들을 사회민주주의자라고 부르게 내버려 두자. 내가 정말 어린애도 아니고, 꼬리표 때문에 흥분할 일은 없지! 다만 그들이 그 해로운 정통파 교조주의자들에게 넘어가지 말고, 무의식중에 사회민주주의를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물길로 끌고 가는 사람들에게 ‘비판의 자유’를 남겨 두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우리 입헌주의자의 가벼운 웃음은, 사회민주주의의 전위를 말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우리 운동에서 자생성이 거의 완전히 지배하는 지금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자생적 요소의 과소평가”를 두려워하고, “빛나고 완결된 사상의 선전에 견주어 잿빛 일상 투쟁의 점진적 전진이 지니는 의의를 줄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따위의 이야기를 들으면 호메로스풍의 폭소로 바뀔 것이다! 의식성이 자생성을 앞지르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모두의 인정을 끌어내는 대담한 “계획”을 내세우기를 두려워하는 “선두” 부대라니! 그들은 혹시 전위라는 낱말을 후위라는 낱말과 헷갈리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마르티노프의 다음 추론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는 40쪽에서 《이스크라》의 폭로 전술이 일면적이라고, “우리가 정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아무리 많이 뿌려도, 정부를 타도할 만큼 충분한 능동적 사회적 에너지를 발전시키지 못하는 한 우리는 목적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덧붙여 말하면 이것은 자기 능동성은 깎아내리려 하면서 대중의 능동성을 높이려고 걱정하는,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걱정이다. 그러나 지금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따라서 마르티노프는 여기서 혁명적 에너지(“타도할 만큼”)를 말한다. 그러면 그는 어떤 결론에 이르는가? 평상시에는 여러 사회층이 불가피하게 제각각 움직이므로, “이를 고려하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여러 반대파 계층의 능동적 활동을 동시에 지도할 수 없고, 그들에게 적극적인 행동 강령을 불러 줄 수 없으며, 그들이 날마다 어떤 방법으로 자기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가리켜 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자유주의 계층은 자기 당면 이익을 위한 능동적 투쟁을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며, 그 투쟁이 그들을 우리의 정치 체제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할 것이다”(41쪽). 이렇게 마르티노프는 혁명적 에너지, 전제정 타도를 위한 능동적 투쟁을 말하기 시작했다가 곧바로 직업적 에너지, 당면 이익을 위한 능동적 투쟁으로 빗나가 버렸다! 우리가 학생, 자유주의자 따위의 “당면 이익”을 위한 투쟁을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존경하는 “경제주의자” 양반, 이야기는 그게 아니지 않았나! 이야기는 여러 사회층이 전제정 타도에 참여할 수 있고 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우리가 “전위”가 되고자 한다면 이 “여러 반대파 계층의 능동적 활동”을 우리는 지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반드시 지도해야 한다. 우리 학생들, 우리 자유주의자들 따위가 “우리의 정치 체제와 정면으로 마주치게” 하는 일은 그들 스스로만 알아서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리고 누구보다 경찰 자신과 전제 정부의 관리들 자신이 그 일을 알아서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적 민주주의자가 되고자 한다면, 사실 대학 질서나 젬스트보 질서 따위에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정치 질서 전체가 쓸모없다는 생각으로 이끌어 가는 일을 알아서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당의 지도 아래 그런 전면적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과제를 떠맡아야 한다. 온갖 반대파 계층이 모두 이 투쟁과 이 당에 힘닿는 대로 도움을 줄 수 있고 실제로 주기 시작하도록 말이다. 우리는 사회민주주의 실천가들 가운데서, 이 전면적 투쟁의 모든 표현을 지도할 줄 알고, 필요한 순간에 들끓는 학생들에게도, 불만에 찬 젬스트보 인사들에게도, 분노한 분파 교도들에게도, 모욕당한 초등학교 교사들에게도,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인 행동 강령을 불러 줄” 줄 아는 정치 지도자들을 길러 내야 한다. 그러므로 “그들에 대해 우리는 질서를 폭로하는 사람이라는 소극적인 역할로만 나설 수 있다… 우리는 여러 정부 위원회에 거는 그들의 희망을 흩어 버릴 수 있을 뿐이다”(강조는 우리)라는 마르티노프의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이렇게 말함으로써 마르티노프는 그가 혁명적 “전위”의 실제 역할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정말 털끝만큼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리고 독자가 이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마르티노프의 다음 마무리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스크라》는 우리 질서, 특히 정치 질서가 주민의 가장 다양한 계층의 이익과 부딪치는 한에서 그 질서를 폭로하는 혁명적 반대파의 기관지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긴밀하고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 일하며 앞으로도 일할 것이다. 우리는 영향력의 범위를 좁힘으로써 영향력 자체를 복잡하게 만든다”(63쪽). 이 결론의 참뜻은 이렇다. 《이스크라》는 노동계급의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우리 실천가들이 오해로, 준비 부족으로, 또는 확신으로 그토록 자주 거기에 머문다)를 사회민주주의 정치로 끌어올리려 한다. 그런데 《라보체예 델로》는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로 끌어내리려 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이것이 “공동의 대의 안에서 충분히 양립할 수 있는 입장”(63쪽)이라고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 장담한다. 오, 거룩한 단순함이여(O, sancta simplicitas)!

더 나아가자. 우리에게 우리의 선전과 선동을 주민의 모든 계급으로 돌릴 힘이 있는가? 물론 있다. 이를 부정하기 일쑤인 우리 “경제주의자들”은 1894년(대략)부터 1901년까지 우리 운동이 내디딘 거대한 전진을 놓치고 있다. 진짜 “꼬리주의자들”답게 그들은 흔히 오래전에 지나간 운동 초기의 관념 속에 산다. 그때는 우리에게 정말로 힘이 놀랍도록 적었고, 그때는 노동자들 사이의 활동에 온전히 몰두하고 거기서 벗어나는 모든 일탈을 엄하게 꾸짖겠다는 결단이 자연스럽고 정당했으며, 그때는 노동계급 속에 자리를 굳히는 것이 과제의 전부였다. 지금은 엄청난 수의 힘이 운동에 끌려 들어와 있다. 교육받은 계급의 젊은 세대 가운데 가장 뛰어난 대표자들이 모두 우리에게 오고 있다. 운동에 이미 참여했거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회민주주의에 끌리는 사람들이 지방 곳곳 어디에나 어쩔 수 없이 눌러앉아 있다(그런데 1894년에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를 손가락으로 셀 수 있었다). 우리 운동의 기본적인 정치적·조직적 결함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이 모든 힘을 쓰고 모두에게 알맞은 일을 줄 줄 모른다는 것이다(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다). 이 힘의 압도적 다수는 “노동자들에게 갈” 가능성을 전혀 갖고 있지 않으므로, 우리의 기본 사업에서 힘을 빼돌릴 위험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참되고 전면적이며 생생한 정치적 지식을 가져다주려면 어디에나, 모든 사회층 속에, 우리 국가 기구의 내부 용수철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온갖 자리에 “우리 사람들”, 곧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선전과 선동에서만이 아니라 조직에서는 더더욱 필요하다.

주민의 모든 계급 속에 활동할 토양이 있는가? 이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또다시 자기 의식성이 대중의 자생적 고양에 뒤처져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만을,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대파를 지지하려는 희망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제정이 더는 지탱될 수 없고 그 붕괴가 불가피하다는 의식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불만의 온갖 표현을 활용하고, 맹아적인 것일지라도 항의의 모든 낟알을 모아 다듬어 내는 과제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아주아주 자주 그렇듯이) 말로만 “정치가”이자 사회민주주의자일 것이다. 수백만에 이르는 근로 농민, 수공업자, 영세 장인 따위의 대중 전체가 조금이라도 솜씨 있는 사회민주주의자의 설교라면 언제나 목마르게 들으리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권리 없음과 전횡에 불만을 품고, 그래서 가장 절실한 전반적 민주주의 요구의 대변자인 사회민주주의자의 설교에 귀를 열 사람들, 그룹들, 서클들이 하나도 없는 주민 계급을 단 하나라도 들 수 있는가? 사회민주주의자가 주민의 모든 계급과 계층 속에서 벌이는 이 정치 선동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고 싶은 사람에게 우리는 이 선동의 주된(그러나 물론 유일하지는 않은) 수단으로 낱말의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적 폭로를 가리켜 주겠다.

나는 「무엇부터 시작할 것인가?」(《이스크라》 제4호, 1901년 5월)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이 글에 관해서는 뒤에서 자세히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인민 가운데 조금이라도 의식이 있는 모든 층에서 정치적 폭로를 향한 열정을 일깨워야 한다. 지금 정치적으로 폭로하는 목소리가 그토록 약하고 드물고 소심하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 원인은 결코 경찰의 전횡과 너나없이 타협했기 때문이 아니다. 원인은 폭로할 능력이 있고 폭로할 준비가 된 사람들에게 말할 연단이 없다는 데, 열정적으로 듣고 연설자를 북돋워 주는 청중이 없다는 데, 그들이 인민 속 어디에서도 “전능한” 러시아 정부에 대해 하소연할 만한 힘을 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우리는 지금 차르 정부를 전 인민적으로 폭로할 연단을 만들어 낼 수 있고, 만들어 낼 의무가 있다. 그런 연단이 바로 사회민주주의 신문이어야 한다.”

정치적 폭로의 바로 그런 이상적인 청중이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은 무엇보다, 누구보다 전면적이고 생생한 정치적 지식을 필요로 하며, 그 지식을 능동적 투쟁으로 바꿀 능력이 가장 크다. 그 투쟁이 아무런 “손에 잡히는 결과”를 약속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전 인민적 폭로의 연단이 될 수 있는 것은 전 러시아적 신문뿐이다. “현대 유럽에서는 정치 기관지 없이 정치적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운동을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러시아도 이 점에서는 틀림없이 현대 유럽에 속한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물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의 힘이 되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출판물을 매수하고 카트코프나 메셰르스키 같은 여러 인물에게 보조금을 대는 데 수만 루블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전제 러시아에서 비합법 출판물이 검열의 빗장을 부수고 합법 기관지와 보수 기관지들이 자기에 대해 공공연히 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70년대에도, 심지어 50년대에도 그랬다. 그런데 지금 비합법 출판물을 읽고, 《이스크라》(제7호)에 편지를 보낸 한 노동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것에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를 배울 준비가 된 인민층은 그때보다 몇 배나 넓고 깊은가. 경제적 폭로가 공장주에게 전쟁을 선포하듯이, 정치적 폭로는 바로 정부에 대한 전쟁 선포다. 그리고 이 폭로 캠페인이 넓고 강력할수록, 전쟁을 시작하려고 전쟁을 선포하는 사회 계급이 수가 많고 단호할수록, 이 전쟁 선포는 더 큰 도덕적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정치적 폭로는 이미 그 자체로 적대 체제를 해체하는 강력한 수단 가운데 하나, 적에게서 우연한 동맹자나 일시적 동맹자를 떼어 내는 수단, 전제 권력의 상시 참여자들 사이에 적의와 불신을 뿌리는 수단이다.

오늘날 혁명 세력의 전위가 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전 인민적인 폭로를 조직해 내는 당뿐이다. 그런데 “전 인민적”이라는 이 낱말은 아주 큰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급이 아닌 계급 출신 폭로자들의 압도적 다수는(그런데 전위가 되려면 바로 다른 계급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냉철한 정치가이고 침착한 실무가다. 그들은 “전능한” 러시아 정부는커녕 말단 관리에 대해 “하소연하는” 것조차 얼마나 위험한지 아주 잘 안다. 그리고 그들은 그 하소연이 정말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정치적 힘이라는 것을 보았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에게 하소연하러 올 것이다. 바깥 사람들 눈에 그런 힘이 되려면 우리의 의식성과 주도성과 정력을 높이는 일에 많이, 끈질기게 힘써야 한다. 그러려면 후위의 이론과 실천에 “전위”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으로는 모자란다.

“그런데 우리가 정부에 대한 참으로 전 인민적인 폭로를 조직하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면, 그때 우리 운동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으로 표현된단 말인가?” “프롤레타리아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을 분별없이 열심히 숭배하는 사람은 이렇게 물을 것이고, 이미 우리에게 묻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데서 표현된다. 이 전 인민적 폭로를 조직하는 것이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라는 데서. 선동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고의적이거나 고의 아닌 왜곡을 조금도 봐주지 않고 한결같이 사회민주주의 정신으로 조명한다는 데서. 이 전면적 정치 선동을 이끄는 것이, 인민 전체의 이름으로 정부를 공격하는 것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독자성을 지키면서 프롤레타리아트를 혁명적으로 교육하는 것과,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을 지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층들을 잇달아 일으켜 우리 진영으로 끌어오는, 착취자들과의 자생적 충돌을 활용하는 것을 하나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전체로 결합하는 당이라는 데서!

그러나 “경제주의”의 가장 특징적인 특성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연관,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절실한 요구(정치 선동과 정치적 폭로를 통한 전면적인 정치 교육)와 전반적 민주주의 운동의 요구가 이렇게 일치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 몰이해는 “마르티노프식” 문구에서뿐 아니라, 그 문구와 뜻이 같은, 이른바 계급적 관점을 들먹이는 데서도 표현된다. 예컨대 《이스크라》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 편지의 필자들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22]. “《이스크라》의 같은 기본 결함(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이, 여러 사회 계급과 경향에 대한 사회민주주의의 태도 문제에서 《이스크라》가 일관성을 잃는 원인이다. 《이스크라》는 이론적 계산을 통해…”(“당과 함께 자라는 당 과제의 성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절대주의에 맞선 투쟁으로 곧바로 넘어간다는 과제를 해결하고, 지금 사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이 과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마 느끼면서도…”(느낄 뿐 아니라, 노동자들에게는 이 과제가 어린아이들을 걱정하는 “경제주의” 인텔리겐트들보다 덜 어렵게 보인다는 것을 아주 잘 알면서. 노동자들은 잊을 수 없는 마르티노프의 말투를 빌리면 아무런 “손에 잡히는 결과”도 약속하지 않는 요구를 위해서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위해 힘을 더 쌓을 때까지 기다릴 참을성이 없어서, 《이스크라》는 자유주의자들과 인텔리겐치아의 대열에서 동맹자를 찾기 시작한다…”

그렇다, 그렇다. 우리는 정말로 그 복된 때를 “기다릴” “참을성”을 이미 모두 잃었다. 온갖 “조정자들”이 오래전부터 약속해 온 그때, 곧 우리 “경제주의자들”이 자기들의 후진성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고, 자기들의 정력 부족을 노동자들의 이른바 힘 부족으로 변명하는 일을 그만둘 그때를 말이다. 우리는 우리 “경제주의자들”에게 묻겠다.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위해 힘을 쌓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노동자들을 정치적으로 교육하는 것, 그들 앞에서 우리의 비열한 전제정의 모든 측면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리고 바로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자유주의자들과 인텔리겐치아의 대열 속의 동맹자들”이, 젬스트보 인사, 교사, 통계원, 학생 따위에 대한 정치적 공격의 폭로 자료를 우리와 나눌 준비가 된 동맹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정말 이 놀랍도록 “교묘한 장치”를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단 말인가? 파벨 악셀로드가 1897년부터 여러분에게 되풀이해 오지 않았는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비프롤레타리아 계급들 사이에서 지지자와 직간접의 동맹자를 얻는 과제는 무엇보다, 그리고 주로 프롤레타리아트 자신 속에서 하는 선전 활동의 성격으로 해결된다.” 그런데도 마르티노프 같은 이들과 그 밖의 “경제주의자들”은 여전히 노동자들이 먼저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으로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를 위한) 힘을 쌓고, 그다음에야 아마 트레이드유니언주의적 “능동성 교육”에서 사회민주주의적 능동성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주의자들”은 이어서 말한다. “… 《이스크라》는 그 탐색에서 자주 계급적 관점에서 벗어나, 계급 대립을 흐리고 정부에 대한 불만의 공통성을 앞세운다. ‘동맹자들’이 지닌 그 불만의 원인과 정도는 매우 다른데도 말이다. 예컨대 젬스트보에 대한 《이스크라》의 태도가 그렇다…” 《이스크라》가 “정부의 시혜에 만족하지 못한 귀족들에게 노동계급의 도움을 약속하면서, 이 주민층들 사이의 계급적 불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자가 편지 필자들이 아마 말하고 있을 「전제정과 젬스트보」라는 글들(《이스크라》 제2호와 제4호)을 찾아본다면, 이 글들[23]이 “신분적·관료적 젬스트보의 온건한 선동”, “유산계급의 자주적 활동조차”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다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글은 노동자가 젬스트보에 맞선 정부의 투쟁을 무관심하게 바라볼 수 없다고 말하며,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정부 앞에 온몸으로 우뚝 설 때 온건한 말을 버리고 단호하고 날카로운 말을 하라고 젬스트보 인사들에게 권한다. 편지 필자들은 여기서 무엇에 동의하지 않는가? 알 수 없다. 그들은 노동자가 “유산계급”이니 “신분적·관료적 젬스트보”니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젬스트보 인사들을 온건한 말에서 날카로운 말로 넘어가도록 떠미는 것이 “이데올로기의 과대평가”라고 생각하는가? 노동자들이 젬스트보에 대한 절대주의의 태도까지 알지 못하고도 절대주의와 싸울 “힘을 쌓을” 수 있다고 상상하는가? 이 모든 것도 역시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뿐이다. 필자들이 사회민주주의의 정치적 과제를 아주 흐릿하게만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의 다음 문구에서 더욱 분명하다. “학생운동에 대한 《이스크라》의 태도도 이와 같다”(곧 마찬가지로 “계급 적대를 흐린다”). 폭력과 난동과 방종의 진짜 온상은 학생들이 아니라 러시아 정부라는 것을 공개 시위로 선언하라고 노동자들에게 호소하는 대신(《이스크라》 제2호), 우리는 아마 《라보차야 미슬》 정신의 추론을 실어야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1901년 가을, 2월과 3월의 사건들 뒤에, 이 영역에서도 전제정에 대한 항의의 “자생성”이 사회민주주의의 의식적인 운동 지도를 앞지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새로운 학생 고양의 전야에 사회민주주의자들 입에서 나온다. 경찰과 카자크에게 얻어맞는 학생들을 감싸려는 노동자들의 자생적 지향이 사회민주주의 조직의 의식적 활동을 앞지르고 있다!

편지 필자들은 이어 말한다. “그런데 다른 글들에서 《이스크라》는 모든 타협을 날카롭게 비난하고, 예컨대 게드파의 편협한 행동을 변호하고 나선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의 의견 차이에 대해 그런 차이는 본질적이지 않고 분열을 정당화하지 못한다고 늘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그토록 경솔하게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전제정이 가장 다양한 계급들에게 적대적이라는 것을 밝히는 일에서, 가장 다양한 계층이 전제정에 반대한다는 것을 노동자들에게 알리는 일에서 우리가 아직 놀랍도록 적은 일밖에 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이 일에서 “타협”을, 분명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 이론과의 타협을 보는 사람들이 한 조직 안에서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농민 해방 40주년을 계기로 계급투쟁을 농촌에 들여와야 할 필요를 말했고(제3호), 비테의 비밀 각서를 계기로 자치와 전제정은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을 말했다(제4호). 우리는 새 법률을 계기로 지주들의 농노제와 그들을 섬기는 정부를 공격했고(제8호), 비합법 젬스트보 대회를 환영하며 젬스트보 인사들에게 굴욕적인 청원에서 투쟁으로 넘어가라고 북돋웠다(제8호). 우리는 정치투쟁의 필요를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 투쟁으로 넘어가던 학생들을 북돋웠으며(제3호), 동시에 학생들에게 가두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권한 “순수 학생” 운동 지지자들이 드러낸 “야만적인 몰이해”를 꾸짖었다(제3호, 2월 25일 모스크바 학생 집행위원회의 호소문을 계기로). 우리는 신문 《로시야》의 자유주의자 협잡꾼들의 “무의미한 몽상”과 “거짓된 위선”을 폭로했고(제5호), 동시에 “평화로운 문필가들, 늙은 교수와 학자들, 이름난 자유주의 젬스트보 인사들에게 보복을 가한” 정부 고문실의 광포함을 지적했다(제5호, 「경찰의 문단 습격」). 우리는 “노동자 생활의 개선에 대한 국가의 보살핌”이라는 강령의 진짜 의미를 폭로했고,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를 기다리느니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그 요구를 미리 막는 편이 낫다”는 “값진 자백”을 반겼다(제6호). 우리는 항의하는 통계원들을 북돋웠고(제7호) 파업을 깨는 통계원들을 나무랐다(제9호). 이 전술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을 흐리는 것과 자유주의와의 타협을 보는 사람은, 그로써 「크레도」 강령의 참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그 강령을 부인해도 사실상(de facto) 바로 그 강령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는 그로써 사회민주주의를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으로 끌고 가며, 모든 “자유주의적” 문제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그 문제에 대한 자기의 사회민주주의적 태도를 정하는 과제를 포기함으로써 자유주의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이다.

IV. 경제주의자들의 수공업성과 혁명가 조직

다) 노동자 조직과 혁명가 조직

어떤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정치투쟁이라는 개념이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이라는 개념으로 덮여 버린다면, 그에게 “혁명가 조직”이라는 개념도 다소간 “노동자 조직”이라는 개념으로 덮여 버리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우리는 조직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는 꼴이 된다. 예컨대 나는 전에 알지 못했던 꽤 일관된 “경제주의자” 한 사람과 나눈 대화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야기는 소책자 『누가 정치혁명을 이룰 것인가?』로 흘렀고, 우리는 그 소책자의 기본 결함이 조직 문제를 무시한 데 있다는 데 금세 의견이 일치했다. 우리는 벌써 서로 뜻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더 나아가자 우리가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 내 대화 상대는 필자가 파업 기금, 상호부조회 따위를 무시했다고 비난하는데, 나는 정치혁명을 “이루는” 데 필요한 혁명가 조직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의견 차이가 드러나자마자, 나는 그 뒤로 이 “경제주의자”와 어떤 원칙적 문제에서든 의견이 맞은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 의견 차이의 근원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경제주의자들”이 정치적 과제에서처럼 조직 과제에서도 끊임없이 사회민주주의에서 트레이드유니언주의로 빗나간다는 데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정치투쟁은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노동자들의 경제투쟁보다 훨씬 넓고 복잡하다. 그와 마찬가지로(그리고 그 때문에) 혁명적 사회민주당의 조직은 그런 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과는 불가피하게 종류가 달라야 한다. 노동자 조직은 첫째로 직업별 조직이어야 하고, 둘째로 될수록 넓어야 하며, 셋째로 될수록 비밀스럽지 않아야 한다(물론 여기서도, 그리고 아래에서도 나는 전제 러시아만을 염두에 두고 말한다). 반대로 혁명가 조직은 무엇보다, 그리고 주로 혁명 활동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을 아울러야 한다(그래서 나는 혁명가인 사회민주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혁명가 조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 조직 성원들의 이 공통 표지 앞에서는 노동자와 인텔리겐트 사이의 모든 구별이 완전히 지워져야 한다. 양쪽 각자의 개별 직업의 구별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조직은 반드시 그리 넓지 않아야 하며 될수록 비밀스러워야 한다. 이 세 겹의 차이를 살펴보자. 정치적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직업별 조직과 정치 조직의 차이가 아주 분명하다.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의 차이가 분명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후자가 전자와 맺는 관계는 나라마다 역사적·법적 그 밖의 조건에 따라 불가피하게 달라진다. 그 관계는 더 긴밀할 수도 덜 긴밀할 수도, 더 복잡할 수도 덜 복잡할 수도 있다(우리 관점에서는 될수록 긴밀하고 될수록 덜 복잡해야 한다). 그러나 자유로운 나라에서 직업별 조합의 조직이 사회민주당의 조직과 일치한다는 것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전제정의 억압이 언뜻 보기에 사회민주주의 조직과 노동자 조합 사이의 모든 차이를 지워 버린다. 모든 노동자 조합과 모든 서클이 금지되어 있고, 노동자 경제투쟁의 주된 표현이자 도구인 파업이 대체로 형사상(때로는 정치상!)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조건은 한편으로는 경제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정치 문제로 몹시 “이끌어 가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트레이드유니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혼동하는 쪽으로 “이끌어 간다”(그리고 우리의 크리쳅스키, 마르티노프 일당은 첫째 종류의 “이끌어 감”을 열심히 떠들면서 둘째 종류의 “이끌어 감”은 알아차리지 못한다). 실제로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에 100분의 99를 빼앗긴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활동 기간 내내(4~6개월) 더 복잡한 혁명가 조직이 필요하다는 문제에 한 번도 부딪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 비교적 널리 퍼진 베른슈타인주의 문헌에 “부딪쳐서”, 거기서 “잿빛 일상 투쟁의 점진적 전진”이 아주 중요하다는 확신을 길어 올 것이다. 끝으로 또 다른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 투쟁과의 긴밀하고 유기적인 연관”, 직업별 운동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연관의 새로운 본보기를 세상에 보여 주겠다는 그럴듯한 생각에 빠질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추론할 수 있다. 어떤 나라가 자본주의의 무대에, 따라서 노동운동의 무대에 늦게 나설수록 사회주의자들은 직업별 운동에 더 많이 참여하고 그것을 지원할 수 있으며, 사회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직업별 조합은 그만큼 더 적을 수 있고 또 적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이 추론이 아주 옳다. 그러나 탈은 사람들이 더 나아가 사회민주주의와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완전한 융합을 꿈꾼다는 데 있다. 이 꿈이 우리의 조직 계획에 얼마나 해롭게 반영되는지는 「페테르부르크 투쟁동맹 규약」을 예로 곧 보게 될 것이다.

경제투쟁을 위한 노동자 조직은 직업별 조직이어야 한다. 사회민주주의자인 노동자는 누구나 될수록 이 조직을 돕고 거기서 능동적으로 일해야 한다. 그렇다. 그러나 “직능” 조합의 성원이 사회민주주의자만 될 수 있도록 요구하는 것은 결코 우리 이익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대중에 대한 우리 영향력의 범위가 좁아질 것이다. 고용주와 정부에 맞서 싸우려면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직능 조합에 참여하게 하자. 이 초보적인 이해의 단계 하나에라도 이른 모든 사람을 묶지 않는다면, 이 직능 조합이 아주 넓은 조직이 아니라면, 직능 조합의 목적 자체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조직이 넓을수록 그 조직에 대한 우리 영향력도 넓어질 것이다. 경제투쟁의 “자생적” 발전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조합의 사회주의자 성원들이 동료들에게 직접, 의식적으로 작용함으로써 미치는 영향력 말이다. 그러나 조직의 구성원이 넓으면 엄격한 비밀 엄수(경제투쟁에 참여하는 데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요구하는)는 불가능하다. 구성원이 넓어야 할 필요와 엄격한 비밀 엄수 사이의 이 모순을 어떻게 화해시킬 것인가? 직능 조직이 될수록 덜 비밀스럽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말해 여기에는 두 길밖에 있을 수 없다. 직능 조합을 합법화하는 것(어떤 나라들에서는 이것이 사회주의 조합과 정치 조합의 합법화보다 먼저 이루어졌다), 아니면 조직을 비밀로 유지하되, 대다수 성원에게 비밀 엄수가 거의 영(零)으로 줄어들 만큼 “자유롭고” 형식이 적은, 독일인들 말로 느슨한(lose) 조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사회주의적이지 않고 정치적이지 않은 노동자 조합의 합법화가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자라는 우리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이 합법화 시도가 늘어나고 북돋워지리라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시도는 주로 현존 체제의 지지자들에게서 나오지만, 부분적으로는 노동자들 자신과 자유주의 인텔리겐치아에게서도 나온다. 합법화의 깃발은 이미 바실리예프와 주바토프 같은 이들이 내걸었고, 오제로프와 보름스 같은 양반들이 이미 그것을 돕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도왔으며, 노동자들 사이에도 새 조류의 추종자들이 이미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이 조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고려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 두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 조류에 주바토프나 바실리예프 같은 이들, 헌병과 사제가 참여하는 것을 모두 한결같이 폭로하고, 이 참여자들의 진짜 의도를 노동자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또한 노동자들의 공개 집회에서 자유주의 활동가들의 연설에 끼어드는 모든 조정적이고 “조화로운” 음조를 폭로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그런 음조를 내는 것이 계급의 평화적 협력이 바람직하다는 진심 어린 확신 때문이든, 윗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는 바람 때문이든, 그저 서툴러서든 상관없다. 끝으로 우리는 경찰이 흔히 노동자들에게 놓는 덫을 경계하라고 노동자들에게 일러 줄 의무가 있다. 경찰은 이런 공개 집회와 허가받은 단체에서 “불씨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며, 합법 조직을 통해 비합법 조직에까지 밀정을 들여보내려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한다고 해서 노동운동의 합법화가 결국에는 주바토프 같은 이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바로 우리의 폭로 캠페인으로 우리는 가라지와 밀을 가려낸다. 가라지는 이미 가리켰다. 밀은 노동자들 가운데 더 넓은 층, 가장 뒤처진 층의 관심을 사회·정치 문제로 끌어오는 것이며, 본질적으로 합법적인 기능들(합법 서적의 보급, 상호부조 따위)로부터 우리 혁명가들을 풀어 주는 것이다. 그런 기능이 발전하면 불가피하게 우리에게 선동 자료가 점점 더 많이 주어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바토프와 오제로프 같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고 또 말해야 한다. 애써 보시라, 여러분, 애써 보시라! 여러분이 노동자들에게 덫을 놓는 한(직접적인 밀정 행위라는 의미에서든, “스트루베주의”로 노동자들을 “정직하게” 타락시킨다는 의미에서든), 우리는 여러분을 폭로하는 일을 알아서 하겠다. 여러분이 실제로 한 걸음 내딛는 한, 가장 “소심한 갈지자” 형태일지라도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한, 우리는 이렇게 말하겠다. 부디 그렇게 해 주시라! 실제로 한 걸음 내딛는 것은 아주 작더라도 노동자들의 활동 공간을 실제로 넓히는 것뿐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확대는 모두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것이고, 밀정들이 사회주의자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이 지지자를 낚는 그런 합법 단체가 나타나는 것을 앞당길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우리의 일은 가라지와 싸우는 것이다. 실내 화분에서 밀을 키우는 것은 우리 일이 아니다. 가라지를 뽑아냄으로써 우리는 밀의 씨앗이 싹틀 수 있도록 땅을 깨끗이 한다. 그리고 아파나시 이바니치와 풀헤리야 이바노브나 같은 이들이 실내 원예에 몰두하는 동안, 우리는 오늘의 가라지를 벨 줄도 알고 내일의 밀을 거둘 줄도 아는 일꾼들을 준비해야 한다[24].

그러므로 될수록 덜 비밀스럽고 될수록 넓은 직업별 조직을 만드는 문제를 합법화를 통해 해결할 수는 우리로서는 없다(그러나 주바토프나 오제로프 같은 이들이 그런 해결의 가능성을 부분적으로나마 열어 준다면 우리는 매우 기쁠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될수록 힘차게 그들과 싸워야 한다!). 남은 것은 비밀 직업별 조직의 길이며, 우리는 반드시 이미 이 길에 들어서고 있는 노동자들을(우리가 확실히 알고 있듯이) 온갖 방법으로 도와야 한다. 직업별 조직은 경제투쟁을 발전시키고 다지는 일에 커다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 선동과 혁명 조직의 아주 중요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결과를 이루려면, 시작되는 직업별 운동을 사회민주주의가 바라는 물길로 이끌려면, 무엇보다 먼저 페테르부르크 “경제주의자들”이 벌써 거의 5년째 붙들고 다니는 조직 계획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 계획은 1897년 7월의 「노동자 기금 규약」(《라보트니크 소식지》 제9~10호, 46쪽, 《라보차야 미슬》 제1호에서 옮겨 실음)과 1900년 10월의 「노동자 동맹 조직 규약」(페테르부르크에서 인쇄되었고 《이스크라》 제1호에서 언급된 별도 전단)에 서술되어 있다. 두 규약의 기본 결함은 넓은 노동자 조직을 세세하게 형식화하고 혁명가 조직을 이 노동자 조직과 혼동한 것이다. 더 다듬어진 둘째 규약을 보자. 그 본체는 쉰두 개 조항으로 되어 있다. 23개 조항은 공장마다 꾸려지고(“10명 이하”) “중앙(공장) 그룹”을 선출하는 “노동자 서클”의 구성, 업무 처리 순서, 관할 범위를 서술한다. 제2조는 이렇게 말한다. “중앙 그룹은 자기 공장이나 제작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기록을 작성한다.” “중앙 그룹은 매달 모든 납부자에게 기금의 상태를 보고한다”(제17조) 따위다. 10개 조항은 “지구 조직”에, 19개 조항은 “노동자 조직 위원회”와 “페테르부르크 투쟁동맹 위원회”의 극히 복잡한 얽힘에 바쳐져 있다(각 지구와 “집행 그룹”, 곧 “선전가 그룹, 지방과의 연락 그룹, 국외와의 연락 그룹, 창고 관리 그룹, 출판 그룹, 기금 그룹”에서 뽑힌 대표들).

사회민주주의 = 노동자 경제투쟁에 대한 “집행 그룹”이라니! “경제주의자”의 생각이 사회민주주의에서 트레이드유니언주의로 빗나간다는 것, 사회민주주의자는 무엇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 투쟁 전체를 지도할 수 있는 혁명가 조직을 생각해야 한다는 관념이 그에게 얼마나 낯선지를 이보다 더 뚜렷이 보여 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해방”을, “차르의 전횡”에 맞선 투쟁을 말하면서 이런 조직 규약을 쓴다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치적 과제에 대해 털끝만큼의 개념도 없다는 뜻이다. 쉰 개쯤 되는 조항 가운데 어느 하나도, 러시아 절대주의의 모든 측면과 러시아 여러 사회 계급의 모습 전체를 조명하는 가장 폭넓은 정치 선동이 대중 속에서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치적 목적은 말할 것도 없고,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목적조차 이런 규약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그 목적은 직업별 조직을 요구하는데, 규약은 그것을 아예 언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이 “체계” 전체의 놀라운 둔중함일 것이다. 그것은 3단계 선거 제도를 두고, 개별 공장 하나하나를 획일적이고 우스울 만큼 시시콜콜한 규칙의 끊이지 않는 실로 “위원회”와 묶으려 한다. 여기서 “경제주의”의 좁은 시야에 짓눌린 생각은 관료적 꾸물거림과 서류 놀음 냄새가 물씬 나는 세부로 치닫는다. 물론 실제로는 이 조항들의 4분의 3이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그 대신 공장마다 중앙 그룹을 둔 이런 “비밀” 조직은 헌병들이 엄청나게 넓은 검거를 벌이기 쉽게 해 준다. 폴란드 동지들은 이미 모두가 노동자 기금을 넓게 세우는 데 열중하던 운동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그것이 헌병들에게 풍성한 수확을 안겨 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곧 그 생각을 버렸다. 우리가 넓은 노동자 조직을 원하고 넓은 검거를 원하지 않는다면, 헌병들을 즐겁게 해 주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이 조직이 전혀 형식을 갖추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그러면 그 조직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겠느냐고? 이 기능들을 보라. “… 공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지켜보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기록을 작성한다”(규약 제2조). 이것을 꼭 형식화해야 하는가? 이를 위해 특별한 그룹을 만들지 않고도 비합법 신문에 통신을 보내는 것으로 이것을 더 잘 이룰 수는 없는가? “… 공장에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도한다”(규약 제3조). 이것도 형식화할 까닭이 없다. 노동자들이 어떤 요구를 내걸고 싶어 하는지는 조금이라도 영리한 선동가라면 누구나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속속들이 알아낼 것이고, 알아낸 다음에는 해당 전단을 내도록 넓은 조직이 아니라 이미 좁은 혁명가 조직에 넘겨줄 줄 알 것이다. “… 기금을 조직한다… 1루블에 2코페이카씩 낸다”(제9조). 그리고 매달 모두에게 기금 보고를 하고(제17조), 내지 않는 성원을 제명한다(제10조) 따위다. 이것이야말로 경찰에게는 그야말로 낙원이다. “공장 중앙 기금”의 이 모든 비밀 활동 속으로 파고들어 돈을 몰수하고 가장 뛰어난 사람들을 모두 치워 버리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어떤(아주 좁고 아주 비밀스러운) 조직의 도장을 찍은 1코페이카나 2코페이카짜리 우표를 발행하거나, 우표 없이 모금을 하고 그 보고를 비합법 신문이 일정한 약속된 암호와 함께 싣는 편이 더 간단하지 않은가? 목적은 똑같이 이루어지고, 헌병들이 실마리에 닿기는 백배나 더 어려워질 것이다.

나는 규약을 본보기로 계속 분석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믿을 만하고 경험 많고 단련된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작고 굳게 뭉친 핵심, 주요 지구마다 신임하는 사람들을 두고 가장 엄격한 비밀 엄수의 모든 규칙에 따라 혁명가 조직과 이어진 핵심은, 대중의 가장 폭넓은 협력을 받으며 아무런 형식화 없이도 직업별 조직이 맡는 모든 기능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고, 게다가 바로 사회민주주의가 바라는 방식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이 길로만 모든 헌병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주의적 직업별 운동을 굳건히 다지고 발전시킬 수 있다.

나에게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형식이 전혀 없을 만큼 느슨하고(lose), 알려지고 등록된 성원조차 하나도 없는 조직은 조직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성원 없는 조직”은 필요한 일을 모두 할 것이며, 처음부터 우리의 장래 노동조합과 사회주의의 굳건한 연관을 보장할 것이다. 그리고 절대주의 아래서 선거, 보고, 총투표 따위를 갖춘 넓은 노동자 조직을 원하는 사람은 그저 구제 불능의 유토피아주의자다.

여기서 나오는 교훈은 간단하다. 우리가 튼튼한 혁명가 조직을 굳건히 세우는 데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운동 전체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사회민주주의의 목적과 본래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목적을 모두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대중에게 가장 “접근하기 쉽다”는(실제로는 헌병들에게 가장 접근하기 쉽고, 혁명가들을 경찰이 가장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넓은 노동자 조직에서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 어느 목적도 실현하지 못하고 수공업성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우리의 분산성과 끝없는 괴멸로 주바토프형이나 오제로프형 노동조합을 대중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 줄 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혁명가 조직의 기능은 본래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에 관해서는 곧 자세히 이야기하겠다. 그러나 먼저 우리 테러리스트의 아주 전형적인 추론 하나를 더 분석해 보자. 그는 또다시(딱한 운명이다!) “경제주의자”의 바로 옆집에 사는 것으로 드러난다. 노동자를 위한 잡지 《스보보다》(제1호)에 「조직」이라는 글이 있는데, 그 필자는 자기가 아는 이바노보-보즈네센스크의 “경제주의자” 노동자들을 변호하려 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군중이 말이 없고 의식이 없을 때, 운동이 밑바닥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좋지 않다. 보라. 대학 도시의 학생들이 명절이나 여름에 집으로 흩어지면 노동운동은 멈춘다. 이렇게 바깥에서 떠밀리는 노동운동이 진짜 힘이 될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다… 그것은 아직 제 발로 걷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사람들이 끈을 매어 끌고 다닌다. 모든 일이 다 그렇다. 학생들이 흩어지면 멈춘다. 크림 가운데 가장 유능한 사람들을 낚아채 가면 우유는 시어 버린다. ‘위원회’를 체포하면 새 위원회가 꾸려질 때까지 또다시 잠잠하다. 그리고 어떤 위원회가 꾸려질지도 알 수 없다. 전 위원회와 전혀 다를지도 모른다. 전 위원회가 이렇게 말했으면 새 위원회는 정반대로 말할 것이다. 어제와 내일 사이의 연관이 끊어지고, 과거의 경험이 미래의 교훈이 되지 못한다. 모두 깊은 곳, 군중 속에 뿌리가 없기 때문이며, 백 명의 바보가 아니라 열 명의 똑똑한 사람이 일하기 때문이다. 열 명은 언제든 강꼬치고기 아가리로 낚아챌 수 있지만, 조직이 군중을 아우르고 모든 일이 군중에게서 나온다면, 누가 아무리 애써도 그 일을 망칠 수 없다”(63쪽).

사실은 옳게 묘사되었다. 우리 수공업성의 그림으로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결론은 그 분별없음으로 보나 정치적 눈치 없음으로 보나 《라보차야 미슬》에 걸맞다. 이것은 분별없음의 극치다. 필자는 운동이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문제라는 철학적이고 사회·역사적인 문제를, 헌병과 더 잘 싸우는 문제라는 기술적·조직적 문제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적 눈치 없음의 극치다. 필자는 나쁜 지도자들에게서 좋은 지도자들에게 호소하는 대신 지도자 일반에게서 “군중”에게 호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치 선동을 자극적 테러로 대신하자는 생각이 정치적으로 우리를 뒤로 끌어당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조직적으로 우리를 뒤로 끌어당기려는 시도다. 솔직히 나는 《스보보다》가 내놓은 혼란을 어디서부터 분석해야 할지 모를 만큼 정말 행복한 고민(embarras de richesses)에 빠져 있다. 알기 쉽게 하려고 예를 하나 들어 시작해 보겠다. 독일인들을 보라. 그들에게서는 조직이 군중을 아우르고 모든 일이 군중에게서 나오며 노동운동이 제 발로 걷는 법을 배웠다는 것을 여러분은 부정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이 수백만 군중은 자기들의 검증된 정치 지도자 “열 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길 줄 알고, 그들을 얼마나 굳게 붙들고 있는가! 의회에서는 적대 정당의 의원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놀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훌륭한 민주주의자들이로군! 노동계급의 운동은 말로만 있고, 실제로는 늘 똑같은 우두머리 패거리가 나선다. 해마다,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도 늘 똑같은 베벨, 늘 똑같은 리프크네히트다. 당신들의 이른바 노동자 선출 대의원들은 황제가 임명하는 관리들보다 더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우두머리들”에게 “군중”을 맞세우고, 군중 속에서 나쁘고 허영에 찬 본능을 부추기며, “열 명의 똑똑한 사람”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허물어 운동의 굳건함과 안정성을 빼앗으려는 이런 선동적 시도를 경멸하는 웃음으로만 맞았다. 독일인들은 이미 정치적 사고가 충분히 발달했고 정치적 경험을 충분히 쌓았으므로, 서로 손발이 썩 잘 맞고, 재능 있고(재능은 백 명씩 태어나지 않는다), 검증되고, 직업적으로 준비되고, 오랜 학교에서 단련된 지도자 “열 명” 없이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계급도 꿋꿋한 투쟁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독일인들도 자기들 가운데서 선동가들을 보았다. “백 명의 바보”를 “열 명의 똑똑한 사람”보다 치켜세우며 그들에게 아첨하고, 대중의 “근육질 주먹”에 아첨하며, (모스트나 하셀만처럼) 대중을 무분별하게 “혁명적인” 행동으로 부추기고, 노련하고 꿋꿋한 지도자들에 대한 불신을 심는 선동가들이다. 그리고 독일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안의 온갖 선동적 분자들과 한결같이, 타협 없이 싸워 왔기에 비로소 이렇게 자라고 튼튼해졌다. 그런데 우리 현자들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전체가, 자생적으로 깨어난 대중에게 충분히 준비되고 발달하고 경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데서 설명되는 이런 시기에 이바누시카 같은 심오함으로 “운동이 밑바닥에서 나오지 않을 때는 좋지 않다”고 설교한다!

“학생으로 이루어진 위원회는 쓸모가 없다. 그것은 불안정하다.” 아주 옳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직업혁명가로 이루어진 위원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학생이 자신을 직업혁명가로 길러 낼 수 있느냐 노동자가 그럴 수 있느냐는 상관없다. 그런데 여러분은 노동운동을 바깥에서 떠밀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낸다! 정치적 순진함 때문에 여러분은 그로써 우리 “경제주의자들”과 우리 수공업성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묻건대, 우리 학생들이 우리 노동자들을 “떠민” 것은 무엇으로 표현되었는가? 오로지 학생이 자기가 지닌 정치적 지식의 부스러기, 자기에게 굴러온 사회주의 사상의 부스러기를 노동자에게 가져다준 데서다(오늘날 학생의 주된 정신적 양식인 합법 마르크스주의는 기초, 부스러기 말고는 아무것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바깥에서의 떠밂”은 우리 운동에서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 아니라 거꾸로 지나치게, 터무니없이, 염치없이 적었다. 우리는 너무 열심히 제 국물에 졸아들었고,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노동자들의 초보적인 “경제투쟁” 앞에 너무 노예처럼 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직업혁명가들은 바로 이런 “떠밂”을 백배는 더 많이 해야 하며, 또 할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은 “바깥에서의 떠밂” 같은 비열한 낱말을 고름으로써, 노동자에게(적어도 여러분만큼 덜 발달한 노동자에게) 바깥에서 정치적 지식과 혁명적 경험을 가져다주는 모든 사람에 대한 불신을 불가피하게 불러일으키고, 그런 사람들 모두에게 맞서려는 본능적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바로 그 때문에 여러분은 선동 정치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선동 정치가는 노동계급의 가장 나쁜 적이다.

그렇다, 그렇다! 내 논쟁의 “동지답지 못한 방식”을 두고 서둘러 아우성치지 마시라! 나는 여러분의 의도가 순수하다는 것을 의심할 생각이 없다. 나는 이미 정치적 순진함 하나만으로도 선동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이 선동 정치로 떨어졌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선동 정치가가 노동계급의 가장 나쁜 적이라는 것을 되풀이하는 데 결코 지치지 않을 것이다. 가장 나쁜 까닭은 바로 그들이 군중의 나쁜 본능을 부추기고, 덜 발달한 노동자들로서는 그들의 친구로 나서는, 때로는 진심으로 친구로 나서는 이 적들을 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까닭은 혼란과 동요의 시기에, 우리 운동의 얼굴이 이제 막 꼴을 갖추어 가는 시기에, 군중을 선동으로 휩쓸어 가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고, 나중에 가장 쓰라린 시련만이 군중에게 그 잘못을 깨우쳐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이 순간의 구호는 선동 정치로 떨어지는 《스보보다》에 맞서는, 그리고 선동 정치로 떨어지는 《라보체예 델로》에 맞서는 단호한 투쟁이어야 한다(이에 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자세히 말할 것이다[25]).

“열 명의 똑똑한 사람은 백 명의 바보보다 낚아채기 쉽다.” 이 훌륭한 진리(이것을 내놓은 여러분에게 백 명의 바보는 언제나 박수를 칠 것이다)가 자명해 보이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이 추론하는 도중에 한 문제에서 다른 문제로 건너뛰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위원회”를 낚아채는 것, “조직”을 낚아채는 것을 말하기 시작했고 계속 말하는데, 이제는 “깊은 곳”의 운동의 “뿌리”를 낚아채는 문제로 건너뛰었다. 물론 우리 운동을 잡을 수 없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깊은 곳에 수십만, 수십만의 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그게 전혀 아니다. “깊은 곳의 뿌리”라는 의미에서라면 우리는 지금도, 우리의 온갖 수공업성에도 불구하고 “낚아채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두 운동의 모든 계승성을 무너뜨리는 “조직”의 검거를 한탄하며,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여러분이 조직을 낚아채는 문제를 제기하고 그 문제에서 빗나가지 않는다면, 나는 열 명의 똑똑한 사람을 낚아채기가 백 명의 바보를 낚아채기보다 훨씬 어렵다고 말하겠다. 그리고 여러분이 나의 “반민주주의” 따위를 들어 군중을 아무리 나에게 부추겨도 나는 이 명제를 지킬 것이다. 조직의 측면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내가 이미 여러 번 지적했듯이, 직업혁명가만을 뜻한다. 그들이 학생 출신으로 길러지든 노동자 출신으로 길러지든 상관없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안정되고 계승성을 지키는 지도자 조직 없이는 어떤 혁명 운동도 굳건할 수 없다. (2) 투쟁에 자생적으로 끌려 들어와 운동의 기반을 이루고 운동에 참여하는 대중이 넓을수록, 그런 조직의 필요는 더 절박하고 그 조직은 더 튼튼해야 한다(대중 가운데 덜 발달한 층을 온갖 선동 정치가가 휩쓸어 가기가 그만큼 더 쉬우므로). (3) 그런 조직은 주로 혁명 활동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져야 한다. (4) 전제 국가에서는 그런 조직의 성원을 혁명 활동을 직업으로 하고 정치경찰과 싸우는 기술에서 직업적 훈련을 받은 성원으로만 좁힐수록 그런 조직을 “낚아채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리고 (5) 노동계급에서도 사회의 다른 계급들에서도 운동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그만큼 넓어질 것이다.

나는 우리 “경제주의자들”, 테러리스트들, “경제주의자-테러리스트들”[26]에게 이 명제들을 반박해 보라고 제안한다. 그 가운데 지금은 마지막 두 명제를 살펴보겠다. “열 명의 똑똑한 사람”과 “백 명의 바보” 가운데 누구를 낚아채기가 쉬우냐는 문제는, 위에서 분석한 문제, 곧 가장 엄격한 비밀 엄수가 필요한 조건에서 대중 조직이 가능하냐는 문제로 귀착된다. 우리는 넓은 조직을, 그것 없이는 정부에 맞선 안정되고 계승성을 지키는 투쟁을 말할 수도 없는 비밀 엄수의 높이로 결코 끌어올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비밀 기능을 될수록 적은 수의 직업혁명가 손에 집중한다고 해서 그 직업혁명가들이 “모두를 위해 생각할” 것이라거나, 군중이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리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군중은 이런 직업혁명가들을 점점 더 많이 내세울 것이다. 그때 군중은 학생 몇 명과 경제투쟁을 하는 노동자 몇 명이 모이는 것만으로는 “위원회”를 꾸리기에 모자라며, 여러 해에 걸쳐 자신을 직업혁명가로 길러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군중은 수공업성만이 아니라 바로 그런 자기 육성을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비밀 기능을 중앙집중하는 것은 결코 운동의 모든 기능을 중앙집중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비합법 문헌에 가장 넓은 대중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직업혁명가 “열 명”이 이 사업의 비밀 기능을 중앙집중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열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오직 이렇게 해야만 비합법 문헌을 읽고, 거기에 기고하고, 부분적으로는 그것을 배포하는 일조차 거의 비밀 사업이 아니게 만들 수 있다. 경찰은 수천 부씩 뿌려지는 출판물 한 부 한 부를 두고 재판과 행정 절차를 질질 끄는 것이 터무니없고 불가능하다는 것을 곧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출판물만이 아니라 시위에 이르기까지 운동의 모든 기능에 해당한다. 시위에 대중이 가장 능동적이고 가장 넓게 참여하는 것은, 검증되고 우리 경찰 못지않게 직업적으로 훈련된 혁명가 “열 명”이 사업의 모든 비밀스러운 측면, 곧 전단 준비, 대략의 계획 작성, 도시의 지구마다, 공장 구역마다, 학교마다 지도자 분대를 배치하는 일 따위를 중앙집중한다고 해서 손해를 보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득을 볼 것이다(내 견해가 “비민주적”이라는 반박이 나오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 전혀 영리하지 못한 반박에는 아래에서 자세히 답하겠다). 혁명가 조직이 가장 비밀스러운 기능들을 중앙집중하는 것은, 넓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고 그래서 될수록 형식이 적고 될수록 덜 비밀스러운 다른 수많은 조직들, 곧 노동자 직업별 조합, 노동자의 자기 교육 서클과 비합법 문헌 독서 서클, 그 밖의 모든 주민층 속의 사회주의 서클과 민주주의 서클 따위의 활동의 폭과 내용을 약하게 하지 않고 풍부하게 할 것이다. 그런 서클과 조합과 조직은 어디에나 될수록 많이, 가장 다양한 기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혁명가 조직과 혼동하는 것, 그 사이의 경계를 지우는 것, 대중운동에 “봉사하려면” 사회민주주의 활동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는 사람들이 특별히 필요하며 그런 사람들은 참을성 있게, 끈질기게 자신을 직업혁명가로 길러 내야 한다는, 그러잖아도 믿을 수 없을 만큼 흐려진 대중의 의식을 꺼뜨리는 것은 터무니없고 해롭다.

그렇다. 이 의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흐려졌다. 조직 면에서 우리의 근본 죄는 우리가 수공업성으로 러시아에서 혁명가의 위신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이론 문제에서 무르고 흔들리며, 시야가 좁고, 자기 무기력을 대중의 자생성으로 변명하고, 인민의 호민관보다 노동조합 서기에 더 가깝고, 반대자들에게서도 존경을 불러일으킬 넓고 대담한 계획을 내세울 줄 모르며, 자기 직업 기술인 정치경찰과의 투쟁에 미숙하고 서툰 사람. 맙소사! 이것은 혁명가가 아니라 무슨 딱한 수공업자다.

어느 실천가도 이 날카로운 말에 기분 상하지 않기 바란다. 준비 부족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나는 그 말을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돌리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넓고 모든 것을 아우르는 과제를 내건 서클에서 일했다. 그리고 그 서클 성원이었던 우리 모두는, 잘 알려진 금언을 바꾸어 “우리에게 혁명가 조직을 달라, 그러면 우리는 러시아를 뒤집어 놓겠다!”고 말할 수 있을 법한 그런 역사적 순간에 우리가 수공업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의식 때문에 괴롭게, 아프도록 고통받아야 했다. 그 뒤로 내가 그때 느낀 그 타는 듯한 수치심을 떠올릴 일이 잦을수록, 자기 설교로 “혁명가의 품위를 더럽히는” 사이비 사회민주주의자들, 우리 과제가 혁명가를 수공업자로 끌어내리는 것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수공업자를 혁명가로 끌어올리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이비 사회민주주의자들에 대한 쓰라림이 내 안에 더 많이 쌓였다.

마) “음모적” 조직과 “민주주의”

그런데 우리 가운데는 “삶의 목소리”에 너무 민감해서 바로 이것을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들은 여기서 펼치는 견해를 지닌 사람들을 “인민의 의지주의”라느니 “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라느니 하며 비난한다. 이 비난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라보체예 델로》도 이 비난을 받아 외쳤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은 페테르부르크 “경제주의자들”이 이미 《라보차야 가제타》를 두고도 인민의 의지주의라고 비난했다는 것을 아주 잘 안다(《라보차야 미슬》과 견주어 보면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이스크라》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동지가 X시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스크라》를 “인민의 의지주의” 기관지라고 부른다고 알려 왔을 때 우리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물론 우리에게 이 비난은 영광스러울 뿐이었다. 점잖은 사회민주주의자치고 “경제주의자들”에게 인민의 의지주의라는 비난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 비난은 두 종류의 오해에서 나온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혁명 운동의 역사를 너무 모른 나머지, 차리즘에 단호한 전쟁을 선포하는 전투적·중앙집권적 조직이라는 생각이면 무엇이든 “인민의 의지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70년대 혁명가들이 지녔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그 훌륭한 조직은 결코 인민의 의지당원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흑토재분배파와 인민의 의지당원으로 갈라진 토지와 자유파가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전투적 혁명 조직에서 무언가 특별히 인민의 의지주의적인 것을 보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터무니없다. 진지한 투쟁을 정말로 생각하는 혁명 경향이라면 어떤 경향이든 그런 조직 없이는 지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민의 의지당원들의 잘못은 불만을 품은 모든 사람을 자기 조직으로 끌어들이고 이 조직을 전제정에 맞선 단호한 투쟁으로 이끌려고 애쓴 데 있지 않았다. 거꾸로 거기에 그들의 위대한 역사적 공적이 있다. 그들의 잘못은 그들이 본질적으로 전혀 혁명적이지 않은 이론에 기댔고, 자기 운동을 발전하는 자본주의 사회 안의 계급투쟁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할 줄 몰랐거나 결합할 수 없었다는 데 있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가장 조잡한 몰이해(또는 “스트루베주의” 정신의 “이해”)만이, 대중적·자생적 노동운동이 생겨났으니 토지와 자유파가 지녔던 것만큼 좋은 혁명가 조직, 아니 그보다 비할 수 없이 더 나은 혁명가 조직을 만들 의무에서 우리가 면제된다는 의견을 낳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이 운동은 바로 우리에게 그 의무를 지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적 투쟁은 튼튼한 혁명가 조직의 지도를 받지 않는 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계급투쟁”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많은 사람들이, 그 가운데는 아마 보리스 크리쳅스키(《라보체예 델로》 제10호, 18쪽)도 있는 듯한데, 정치투쟁에 대한 “음모적” 견해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늘 벌여 온 논쟁을 잘못 이해한다. 우리는 정치투쟁을 음모로 좁히는 데 맞서 들고일어났고 물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이다[27]. 그러나 이것은 물론 튼튼한 혁명 조직의 필요를 부정하는 것을 결코 뜻하지 않았다. 예컨대 주석에서 든 소책자에서도 정치투쟁을 음모로 환원하는 데 맞선 논쟁과 나란히, “절대주의에 결정적 타격을 가하기 위해” “봉기”에도, 그 밖의 온갖 “다른 공격 방법”에도 “기댈”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조직이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으로서) 그려진다[28]. 그 형태로 보면 전제 국가에서 이런 튼튼한 혁명 조직은 “음모적” 조직이라고 불릴 수도 있다. 프랑스어 낱말 “콘스피라시옹(conspiration)”은 러시아어 “음모”와 같은 뜻이고, 그런 조직에는 비밀 엄수가 최대한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밀 엄수는 그런 조직에 너무나 필요한 조건이라서 다른 모든 조건(성원의 수, 그 선발, 기능 따위)은 이 조건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음모적 조직을 만들려 한다는 비난을 두려워하는 것은 더없이 순진한 일일 것이다. 이 비난은 “경제주의”의 모든 적에게 “인민의 의지주의”라는 비난과 마찬가지로 영광스러운 것이어야 한다. 우리에게 이렇게 반박할 것이다. 비밀 활동의 모든 실을 손에 쥐는 그런 강력하고 엄격하게 비밀스러운 조직, 필연적으로 중앙집권적인 조직은 너무 쉽게 때 이른 공격에 뛰어들 수 있고, 정치적 불만의 성장, 노동계급 안의 동요와 분노의 힘 따위에 비추어 가능하고 필요한 것보다 앞서 운동을 무분별하게 첨예화할 수 있다고. 이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전투 조직이 무분별한 싸움으로 이끌 수 있고, 그 싸움이 다른 조건에서라면 전혀 필연적이지 않았을 패배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을 물론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서 추상적 고려에 머물 수는 없다. 모든 전투에는 추상적으로 패배의 가능성이 들어 있으며, 이 가능성을 줄이는 수단은 전투를 조직적으로 준비하는 것 말고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를 오늘날 러시아 조건이라는 구체적 토양에 놓고 보면, 튼튼한 혁명 조직은 바로 운동에 안정성을 주고 운동을 무분별한 공격의 가능성에서 지키기 위해 무조건 필요하다는 적극적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지금, 그런 조직이 없고 혁명 운동이 빠르게 자생적으로 자라는 지금, (마땅히 그렇듯이 “서로 만나는”) 정반대의 두 극단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는 전혀 근거 없는 “경제주의”와 온건함의 설교가,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근거 없는 “자극적 테러”가 나타난다. 이 테러는 “발전하고 튼튼해지고 있지만 아직 끝보다는 시작에 더 가까운 운동 속에서 그 끝의 징후를 인위적으로 불러일으키려” 한다(V. Z., 《자랴》 제2~3호, 353쪽). 그리고 《라보체예 델로》의 예는 두 극단 모두 앞에서 무릎 꿇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미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른 원인들은 제쳐 두더라도 이런 현상은 놀랍지 않다.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은 혁명가를 결코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고, 정반대의 극단들이 늘 여기저기서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꿋꿋이 실행하고, 이를테면 모든 혁명적 본능과 지향을 채워 주는 중앙집권적 전투 조직만이 운동을 무분별한 공격에서 지키고 성공을 약속하는 공격을 준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 여기서 펼치는 조직관이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반박할 것이다. 앞의 비난이 특별히 러시아적 기원을 지닌 것이라면, 이 비난은 특별히 국외적인 성격을 지닌다. 그리고 국외 조직(재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동맹)만이 자기 편집부에 다른 여러 지침과 함께 다음과 같은 지침을 줄 수 있었다.

“조직 원칙. 사회민주주의의 성공적 발전과 통합을 위해 당 조직의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하고 발전시키며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한다. 이는 우리 당의 대열 안에서 반민주주의적 경향이 드러난 것을 고려할 때 특히 필요하다”(『두 대회』, 18쪽).

《라보체예 델로》가 《이스크라》의 “반민주주의적 경향”과 바로 어떻게 싸우는지는 다음 장에서 보게 될 것이다. 지금은 “경제주의자들”이 내세우는 이 “원칙”을 더 가까이 살펴보자.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이 다음 두 가지 필수 조건을 포함한다는 데는 아마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첫째는 완전한 공개성이고, 둘째는 모든 직무의 선거제다. 공개성 없이, 그것도 조직 성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공개성 없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우스울 것이다. 우리는 독일 사회주의 당의 조직을 민주적이라고 부를 것이다. 거기서는 당대회 회의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성원 모두에게 비밀의 장막으로 가려진 조직을 민주적 조직이라고 부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이 원칙의 기본 조건이 비밀 조직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데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을 내세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광범한 원칙”은 그저 요란하지만 텅 빈 문구로 드러난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 문구는 조직 면에서 이 순간의 절실한 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증언한다. 우리 사이에 지배적인 “넓은” 혁명가 대중의 비밀 엄수 부족이 얼마나 심한지는 모두가 안다. 우리는 B. 브가 이것을 얼마나 쓰라리게 한탄하며 “성원의 엄격한 선발”을 아주 옳게 요구하는지 보았다(《라보체예 델로》 제6호, 42쪽). 그런데 자기들의 “삶에 대한 감각”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이런 사정에서 가장 엄격한 비밀 엄수와 가장 엄격한(따라서 더 좁은) 성원 선발의 필요가 아니라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을 강조한다! 이것이야말로 헛다리 짚기다.

민주주의의 둘째 표지, 곧 선거제도 사정이 나을 것이 없다. 정치적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이 조건이 당연한 전제다. 독일 사회민주당 조직 당규 제1조는 “당의 강령 원칙을 인정하고 힘닿는 대로 당을 지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당원으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치 무대 전체가 극장 관객 앞의 무대처럼 모든 사람 앞에 열려 있으므로, 이 인정이나 불인정, 지지나 반대는 신문을 통해서도 인민 집회를 통해서도 모든 사람 하나하나에게 알려진다. 이러저러한 정치 활동가가 무엇으로 시작했고, 이러저러한 변화를 겪었으며, 어려운 순간에 이러저러하게 처신했고, 대체로 이러저러한 자질을 지녔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그래서 자연히 모든 당원이 사정을 잘 알고서 그런 활동가를 당의 어떤 직책에 뽑을 수도 있고 뽑지 않을 수도 있다. 정치 경력에서 당원이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에 대한 (낱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전반적인 통제는, 생물학에서 “적자생존”이라고 부르는 것을 낳는 자동 장치를 만들어 낸다. 완전한 공개성, 선거제, 전반적 통제라는 “자연선택”은 모든 활동가가 결국 “제자리”에 놓이고, 자기 힘과 능력에 가장 알맞은 일을 맡고, 자기 잘못의 모든 결과를 몸소 겪으며, 잘못을 깨닫고 피할 능력이 있음을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증명하도록 보장한다.

이 그림을 우리 전제정의 틀 속에 끼워 넣어 보라! “당의 강령 원칙을 인정하고 힘닿는 대로 당을 지지하는” 모든 사람이 비밀 활동을 하는 혁명가의 걸음 하나하나를 통제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에서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혁명가가 활동을 위해 이 “모든 사람”의 열에 아홉에게 자기가 누구인지 숨겨야 할 의무가 있는데, 그들 모두가 혁명가들 가운데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을 뽑는다는 것이? 《라보체예 델로》가 들고나오는 요란한 말들의 진짜 의미를 조금이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러면 전제정의 어둠 속에서, 헌병들이 사람을 골라내는 일이 판을 치는 가운데 당 조직의 “광범한 민주주의”란 공허하고 해로운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공허한 장난감인 까닭은, 실제로 어떤 혁명 조직도 광범한 민주주의를 실행한 적이 없고, 아무리 원해도 실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해로운 장난감인 까닭은,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을 실제로 실행하려는 시도는 경찰이 넓은 검거를 벌이기 쉽게 해 주고, 지배적인 수공업성을 영구화하며, 자신을 직업혁명가로 길러 내는 진지하고 절박한 과제에서 실천가들의 생각을 떼어 내어 선거 제도에 관한 자세한 “종이” 규약을 짜는 일로 돌려 버리기 때문이다. 오직 국외에서만, 참되고 살아 있는 일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흔히 모여드는 곳에서만, 여기저기서, 특히 여러 작은 그룹에서 이런 “민주주의 놀이”가 자라날 수 있었다.

혁명 사업에서 민주주의 같은 그럴듯한 “원칙”을 내세우는, 《라보체예 델로》가 즐겨 쓰는 수법이 얼마나 볼썽사나운지 독자에게 보여 주기 위해 우리는 또다시 증인을 하나 내세우겠다. 이 증인은 런던 잡지 《나카누네》의 편집자 예브게니 세레브랴코프다. 그는 《라보체예 델로》에 큰 호감을, 플레하노프와 “플레하노프파”에게 큰 증오를 품고 있다. 재외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동맹의 분열을 다룬 글들에서 《나카누네》는 단호히 《라보체예 델로》 편을 들었고 플레하노프에게 딱한 말들을 구름처럼 퍼부었다. 그런 만큼 이 문제에서 이 증인은 우리에게 더욱 값지다. 《나카누네》 제7호(1899년 7월)에 실린 글 「노동자 자기해방단의 호소문에 관하여」에서 세레브랴코프는 “진지한 혁명 운동 안에서 자기 미혹, 주도권, 이른바 아레오파고스 따위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점잖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무엇보다 이렇게 썼다.

“미시킨, 로가초프, 젤랴보프, 미하일로프, 페롭스카야, 피그네르 등은 결코 자기들을 우두머리로 여기지 않았고, 아무도 그들을 뽑거나 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우두머리였다. 선전 시기에도 정부와 투쟁하는 시기에도 그들은 가장 무거운 짐을 짊어졌고,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갔으며, 그들의 활동이 가장 생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주도권은 그들이 바라서가 아니라 주위 동지들이 그들의 지성과 정력과 헌신을 신뢰한 결과였다. 운동을 제멋대로 다스릴 수 있는 무슨 아레오파고스를 두려워하는 것(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왜 그것에 관해 쓰겠는가)은 너무나 순진하다. 누가 그 말을 듣겠는가?”

우리는 독자에게 묻는다. “아레오파고스”는 “반민주주의적 경향”과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라보체예 델로》의 “그럴듯한” 조직 원칙도 이와 꼭 마찬가지로 순진하고 점잖지 못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순진한 까닭은, “주위 동지들이 그들의 지성과 정력과 헌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아레오파고스”든 “반민주주의적 경향”을 지닌 사람들이든 아무도 그냥 그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점잖지 못한 까닭은, 그것이 어떤 사람들의 허영심, 다른 사람들의 우리 운동 실제 상태에 대한 무지, 또 다른 사람들의 준비 부족과 혁명 운동 역사에 대한 무지를 이용해 투기하는 선동적 공격이기 때문이다. 우리 운동의 활동가들에게 유일하게 진지한 조직 원칙은 이것이어야 한다. 가장 엄격한 비밀 엄수, 가장 엄격한 성원 선발, 직업혁명가의 양성. 이 자질들이 갖추어지면 “민주주의”보다 더 큰 것도 보장된다. 곧 혁명가들 사이의 완전한 동지적 신뢰다. 그리고 이 더 큰 것이 우리에게는 무조건 필요하다. 우리 러시아에서는 그것을 민주적인 전반적 통제로 대신한다는 것은 말할 거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참으로 “민주적인” 통제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혁명 조직 성원들이 통제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큰 잘못일 것이다. 그들은 장난감 같은 민주주의 형식(서로 완전히 신뢰하는 동지들로 이루어진 좁은 핵심 안의 민주주의)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자기 책임은 아주 생생하게 느낀다. 게다가 그들은 경험으로 진짜 혁명가 조직이 쓸모없는 성원을 떨어내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 앞에서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꽤 발달한, 하나의 역사 전체를 등에 진 러시아(및 국제) 혁명 환경의 여론이 있다. 이 여론은 동지로서의 의무를 저버리는 모든 일을 가차 없이 엄하게 벌한다(그런데 “민주주의”, 장난감이 아닌 진짜 민주주의는 부분이 전체에 들어가듯이 이 동지 관계라는 개념에 들어간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 보라. 그러면 “반민주주의적 경향”에 관한 이런 이야기와 결의에서 국외의 장군 놀이가 풍기는 퀴퀴한 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 짚어 두어야 할 것은, 이런 이야기의 다른 원천인 순진함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흐릿한 관념에서도 양분을 얻는다는 점이다. 웹 부부의 영국 노동조합에 관한 책에는 「원시적 민주주의」라는 흥미로운 장이 있다. 필자들은 거기서 영국 노동자들이 조합이 생긴 첫 시기에 조합 운영과 관련된 모든 일을 모두가 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필수 표지로 여겼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문제를 전체 성원의 투표로 결정했을 뿐 아니라 직무도 모든 성원이 돌아가며 맡았다. 노동자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관념이 터무니없다는 것, 그리고 한편으로는 대의 기관이, 다른 한편으로는 직업적 직무 담당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역사적 경험이 필요했다. 납부하는 회비와 받는 급부의 비례 관계 문제는 민주적 투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보험 전문가의 의견도 필요하다는 것을 노동자들이 이해하기까지는 조합 기금이 여러 번 재정 파탄을 겪어야 했다. 나아가 의회주의와 인민 입법에 관한 카우츠키의 책을 보라. 그러면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의 결론이 “자생적으로” 단결해 온 노동자들의 오랜 실천의 교훈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카우츠키는 리팅하우젠의 원시적 민주주의 이해에 단호히 맞서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인민 신문은 인민이 직접 편집해야 한다”고 요구할 태세인 사람들을 비웃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사회민주주의가 지도하는 데는 직업적인 언론인, 의원 따위가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효과를 노려” 직접 인민 입법을 치켜세우면서 현대 사회에서 그것이 아주 제한적으로만 적용될 수 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정부주의자와 문필가의 사회주의”를 공격한다.

우리 운동에서 실천 활동을 해 본 사람은 학생 청년과 노동자 대중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원시적” 견해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는지 안다. 이 견해가 규약에도 문헌에도 스며드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베른슈타인주의 갈래의 “경제주의자들”은 자기 규약에 이렇게 썼다. “제10조. 동맹 조직 전체의 이익에 관련된 모든 일은 전체 성원의 다수결로 결정한다.” 테러리스트 갈래의 “경제주의자들”도 이에 맞장구친다. “위원회의 결정은 모든 서클을 돌고 나서야 비로소 유효한 결정이 되어야 한다”(《스보보다》 제1호, 67쪽). 국민투표를 널리 적용하자는 이 요구가 조직 전체를 선거 원칙 위에 세우자는 요구에 더해 나온다는 것에 주목하라! 물론 우리는 참으로 민주적인 조직의 이론과 실천을 알 기회가 너무 적었던 실천가들을 이 때문에 탓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도적 역할을 자처하는 《라보체예 델로》가 이런 조건에서 광범한 민주주의 원칙에 관한 결의로 그친다면, 이것을 그저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석

  1. 《라보체예 델로》 제10호, 1901년 9월, 17~18쪽. 강조는 《라보체예 델로》. ↩
  2. 트레이드유니언주의는 흔히 생각하듯이 모든 “정치”를 배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노동조합은 언제나 일정한(그러나 사회민주주의적이지는 않은) 정치 선동과 정치투쟁을 해 왔다. 트레이드유니언주의 정치와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차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말하겠다. ↩
  3. 아나톨리 바네예프는 1899년 동시베리아에서 폐결핵으로 죽었다. 그 병은 미결수 감옥의 독방에 갇혀 있다가 얻은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 든 사실들을 공개해도 된다고 보았다. 우리는 그 사실들이 확실하다고 보증한다. 그것은 바네예프를 직접, 가장 가까이에서 알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4. “《이스크라》는 90년대 말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면서, 당시에는 작은 요구를 위한 투쟁 말고 다른 활동을 할 조건이 없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경제주의자들”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기관지들에 보내는 편지」(《이스크라》 제12호)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본문에 든 사실들은 “조건이 없었다”는 이 주장이 진실과 정반대라는 것을 증명한다. 90년대 말만이 아니라 중반에도 작은 요구를 위한 투쟁 말고 다른 활동을 할 모든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지도자들의 충분한 준비만 빼고 모든 조건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이데올로그들, 지도자들 쪽의 이 준비 부족을 솔직히 인정하는 대신, “경제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조건이 없었다”는 데로, 어떤 이데올로그도 운동을 거기서 떼어 낼 수 없는 길을 정하는 물질적 환경의 영향으로 떠넘기려 한다. 이것이 자생성 앞의 굴종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데올로그들”이 자기 결함에 반한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
  5. 덧붙여 말하면, “경제주의”가 특히 국외에서 완전히 뚜렷해진 1898년 11월에 《라보차야 미슬》을 이렇게 칭찬한 것은, 곧 《라보체예 델로》 편집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된 바로 그 V. I.였다. 그리고 《라보체예 델로》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안에 두 경향이 있다는 것을 그때도 부정했고 지금도 계속 부정한다! ↩
  6. 이 비교가 옳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특징적인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데카브리스트”가 체포된 뒤, “데카브리스트”와 접촉하던 그룹 가운데 한 곳과 가까웠던 밀정 니콜라이 미하일로프(치과 의사)가 검거를 도왔다는 소식이 실리셀부르크 가도의 노동자들 사이에 퍼지자, 이 노동자들은 몹시 분노해 미하일로프를 죽이기로 결정했다. ↩
  7. 《라보차야 미슬》 창간호의 같은 사설에서. 이것으로 이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V. V.들”의 이론적 준비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문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진짜 V. V. 씨와 전쟁을 벌이던 바로 그때 “경제적 유물론”의 조잡한 속류화를 되풀이했다. V. V. 씨는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바로 그렇게 이해한 탓에 오래전부터 “반동적 일의 명수”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
  8. 독일인들에게는 “순수 노동조합 투쟁”의 지지자를 가리키는 특별한 낱말까지 있다. “Nur-Gewerkschaftler(순수 노동조합주의자)”가 그것이다. ↩
  9. 우리가 오늘날의를 강조하는 것은 바리새인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할 사람들을 겨냥해서다. 지금 《라보차야 미슬》을 마구 두들기기는 쉽지만, 그건 다 지난 이야기 아닌가! 이런 오늘날의 바리새인들에게 우리는 “이름만 바꾸면 네 이야기다(Mutato nomine de te fabula narratur)”라고 대답하겠다. 그들이 《라보차야 미슬》의 사상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아래에서 증명될 것이다. ↩
  10. 《이스크라》 제12호에 실린 “경제주의자들”의 편지. ↩
  11. 《라보체예 델로》 제10호. ↩
  12. 《노이에 차이트》 1901~1902년, 제20권, 제1책, 제3호, 79쪽. 카를 카우츠키가 말하는 위원회 초안은 (지난해 말) 빈 대회에서 조금 바뀐 형태로 채택되었다. ↩
  13. 물론 이것은 노동자들이 이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내는 데 참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사회주의 이론가로서, 프루동이나 바이틀링 같은 사람으로서 참여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이 자기 시대의 지식을 다소간 익히고 그 지식을 앞으로 밀고 나가는 데 성공하는 때에만, 그리고 그런 한에서만 참여한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 일에 더 자주 성공하려면, 노동자 일반의 의식성 수준을 높이는 데 될수록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노동자들이 “노동자를 위한 문헌”이라는 인위적으로 좁혀진 틀 안에 갇히지 않고 일반 문헌을 점점 더 많이 익히도록 배워야 한다. “갇히지 않고”라고 하기보다 “갇히게 되지 않고”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겠다. 노동자들 자신은 인텔리겐치아를 위해 쓴 글도 모두 읽고 또 읽고 싶어 하며, 몇몇 (나쁜) 인텔리겐트만이 “노동자를 위해서는” 공장 사정을 이야기하고 오래전에 알려진 것을 되씹어 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14. 흔히 노동계급은 자생적으로 사회주의에 끌린다고 말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이론이 노동계급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그 누구보다 깊고 정확하게 규명하며, 그래서 노동자들이 그 이론을 그토록 쉽게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는 아주 옳다. 다만 그것은 이 이론 자신이 자생성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 한에서, 이 이론이 자생성을 자기에게 복종시키는 한에서다. 보통은 이것이 당연한 전제로 깔려 있지만, 《라보체예 델로》는 바로 이 전제를 잊고 왜곡한다. 노동계급은 자생적으로 사회주의에 끌리지만, 그럼에도 가장 널리 퍼진(그리고 가장 다양한 형태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자생적으로 노동자에게 가장 많이 밀어닥친다. ↩
  15.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현재 과제와 전술 문제에 관하여』, 제네바, 1898. 1897년에 쓴 《라보차야 가제타》에 보내는 편지 두 통. ↩
  16. 《라보체예 델로》는 변명하면서 첫 번째 거짓말(“우리는 파벨 악셀로드가 어떤 젊은 동지들을 말했는지 모른다”)에 두 번째 거짓말을 보탰다. 그것은 「답변」에서 이렇게 썼다. “『과업』에 대한 서평이 쓰인 뒤로, 일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 경제적 일면성으로 기우는 경향이 생겨났거나 다소간 뚜렷해졌다. 이것은 『과업』이 그리는 우리 운동의 상태에 견주어 한 걸음 뒷걸음질 친 것이다”(9쪽). 「답변」은 1900년에 나왔다. 그런데 《라보체예 델로》 제1호(서평이 실린)는 1899년 4월에 나왔다. 정말 “경제주의”가 1899년에야 생겨났단 말인가? 아니다. 1899년에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처음으로 “경제주의”에 항의했다(「크레도」에 대한 항의). “경제주의”는 1897년에 생겨났다. 《라보체예 델로》는 그것을 아주 잘 안다. V. I.가 이미 1898년 11월에(《라보트니크 소식지》 제9~10호) 《라보차야 미슬》을 칭찬했기 때문이다. ↩
  17. 정치투쟁에서의 “단계론” 또는 “소심한 갈지자”론은 예컨대 이 글에서 이렇게 표현된다. “정치적 요구는 그 성격상 러시아 전체에 공통되지만, 처음에는”(이것은 1900년 8월에 쓴 것이다!) “주어진 노동자 층(원문대로!)이 경제투쟁에서 얻은 경험에 부응해야 한다. 오직(!) 이 경험의 토양 위에서만 정치 선동에 착수할 수 있고 또 착수해야 한다” 등등(11쪽). 4쪽에서 필자는 자기 생각에는 전혀 근거 없는 경제주의 이단이라는 비난에 맞서 감격스럽게 외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학설에 따르면 개별 계급들의 경제적 이익이 역사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며, 따라서 특히 자기 경제적 이익을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그 계급적 발전과 해방 투쟁에서 첫째가는 의의를 지녀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어디 있는가?”(강조는 우리). 이 “따라서”는 전혀 엉뚱하다. 경제적 이익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데서 경제(=직업별) 투쟁이 첫째가는 의의를 지닌다는 결론은 결코 나오지 않는다. 계급들의 가장 본질적인 “결정적” 이익은 일반적으로 근본적인 정치적 변혁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의 기본적 경제 이익은 부르주아지의 독재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바꾸는 정치혁명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 크리쳅스키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V. V.들”의 추론(정치는 경제를 따른다 따위)과 독일 베른슈타인주의자들의 추론을 되풀이한다(예컨대 볼트만은 바로 이런 추론으로 노동자들이 정치혁명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경제적 힘”을 얻어야 한다고 증명했다). ↩
  18. 혼란의 해(Ein Jahr der Verwirrung). 메링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처음에 새 조건에 걸맞은 “계획으로서의 전술”을 고르면서 보인 동요와 우유부단을 서술한 절에 이런 제목을 붙였다. ↩
  19. 《이스크라》 제1호 사설에서. ↩
  20. 테러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결하면서 노동해방단이 그 이전 혁명 운동의 경험을 일반화했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
  21. 예컨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리프크네히트는 민주주의 세력 전체에게 행동 강령을 불러 주었고, 1848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 일을 더 많이 했다. ↩
  22. 지면이 모자라 우리는 《이스크라》에서 “경제주의자들”에게 극히 특징적인 이 편지에 아주 자세히 답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 편지가 나온 것을 매우 반겼다. 《이스크라》가 계급적 관점을 지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오래전부터 여러 방면에서 우리 귀에 들어왔고, 우리는 그 떠도는 비난에 답할 적당한 기회나 그것이 형식을 갖추어 표현되기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공격에 방어가 아니라 반격으로 답하는 데 익숙하다. ↩
  23. 그리고 이 글들 사이에(《이스크라》 제3호) 바로 우리 농촌의 계급 적대를 다룬 글이 실렸다. ↩
  24. 《이스크라》가 가라지와 싸우자 《라보체예 델로》는 이렇게 성난 공격을 퍼부었다. “그런데 《이스크라》에게 시대의 징표가 되는 것은 이 (봄의) 큰 사건들보다는 노동운동을 ‘합법화’하려는 주바토프 앞잡이들의 가련한 시도다. 《이스크라》는 바로 이 사실들이 자기에게 불리한 증거라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 사실들이야말로 노동운동이 정부의 눈에 아주 위협적인 규모가 되었다는 것을 증언한다”(『두 대회』, 27쪽). 모든 탓은 “삶의 엄중한 명령에 귀를 막은” 이 정통파들의 “교조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한 자나 되는 밀은 한사코 보려 하지 않고 한 치짜리 가라지와 싸운다니! 이것이 “러시아 노동운동에 대한 비뚤어진 원근감”(같은 곳, 27쪽)이 아니고 무엇인가? ↩
  25. 여기서는 다만, “바깥에서의 떠밂”에 관해, 그리고 조직에 관한 《스보보다》의 그 뒤 모든 추론에 관해 우리가 한 말이 모두 《라보체예 델로》파를 포함한 모든 “경제주의자들”에게 해당한다는 것만 짚어 두자. 그들은 조직 문제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같은 견해를 적극적으로 설교하고 옹호했으며, 부분적으로는 그런 견해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
  26. 이 용어는 앞의 것보다 《스보보다》에 더 들어맞을지 모른다. 『혁명주의의 부활』에서는 테러리즘을 옹호하고, 여기서 분석하는 글에서는 “경제주의”를 옹호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팔자가 사납다! 《스보보다》에 대해서는 대체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가장 좋은 소질과 가장 좋은 의도를 지녔으나 결과는 혼란이다. 혼란은 주로 《스보보다》가 조직의 계승성을 옹호하면서 혁명 사상과 사회민주주의 이론의 계승성은 알려 하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직업혁명가를 다시 살려 내려고 애쓰면서(『혁명주의의 부활』) 그 방법으로 첫째로 자극적 테러를, 둘째로 “바깥에서 떠밀리는” 일이 적은 “중간층 노동자 조직”을 내놓는 것(《스보보다》 제1호, 66쪽 이하)은 참으로 자기 집을 데우려고 바로 그 집을 뜯어 땔감으로 쓰는 것과 같다. ↩
  27.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과업』, 21쪽, 표트르 라브로프에 대한 논박을 참조하라. ↩
  28.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의 과업』, 23쪽. 덧붙여 말하면 이것은 《라보체예 델로》가 자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견해를 “바람 부는 대로” 바꾼다는 것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예다. 《라보체예 델로》 제1호에는 이탤릭으로 이렇게 실려 있다. “위에 서술한 소책자의 요지는 《라보체예 델로》 편집부의 강령과 완전히 일치한다”(142쪽). 정말 그런가? 대중운동에 전제정 타도를 첫째 과제로 내세울 수 없다는 견해가 『과업』과 일치한다는 말인가? “고용주와 정부에 맞선 경제투쟁” 이론이 일치한다는 말인가? 단계론이 일치한다는 말인가? “일치”를 이토록 독창적으로 이해하는 기관지에 원칙적 확고함을 말할 수 있는지 독자가 판단하기 바란다. ↩
  29. 옮긴이. V. V.는 인민주의 경제학자 바실리 보론초프(1847~1918)의 필명이다. 러시아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할 수 없다고 주장해 1890년대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된 논적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