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조직 문제
인물로자 룩셈부르크, 블라디미르 레닌, 율리 마르토프, 장 조레스, 시드니 웹, 비어트리스 웹 용어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이스크라, 블랑키즘, 자코뱅파, 볼셰비키, 멘셰비키, 수정주의, 독일 사회민주당 (SPD), 페이비언 협회
뒤처진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앞선 나라의 더 오래된 운동에게서 배워야 한다는 것은 굳어진 지 오래인 유서 깊은 진리에 속한다. 우리는 감히 이 명제에 그 반대 명제를 덧붙이고자 한다. 더 오래되고 앞서 나아가는 사회민주당들도 젊은 형제 당들을 더 가까이 앎으로써 똑같이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에게는, 부르주아 고전파와 다르고 속류 경제학자와는 더더욱 다르게, 자본주의 경제 질서에 앞선 모든 경제 단계가 창조의 면류관인 자본주의에 견주어 본 “미발달”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지닌 서로 다른 경제 유형이다.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주의 정치가에게는 서로 다르게 발전한 사회주의 운동들이 저마다 일정한 역사적 개체다. 그리고 우리가 사회민주주의의 같은 기본 특징들을 그 갖가지 사회적 환경의 온갖 다양함 속에서 알아 갈수록,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본질적인 것, 근본적인 것, 원칙적인 것이 그만큼 더 뚜렷이 의식되고, 온갖 지방주의에서 비롯하는 시야의 편협함은 그만큼 더 물러난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국제적 음조가 그토록 강하게 울리는 것은 공연한 일이 아니며, 기회주의적 사고방식이 언제나 민족적 고립으로 끝나는 것도 공연한 일이 아니다. 아래의 글은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당 기관지 《이스크라》의 요청으로 그 신문을 위해 쓴 것인데, 독일 독자에게도 얼마간 흥미가 있을 것이다.
I
러시아 사회민주당에게는 사회주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독특한 과제가 주어졌다. 절대주의 국가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맞춘 사회민주주의 전술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정을 사회주의자 탄압법 시대의 독일 사정과 견주는 흔한 비교는, 러시아의 사정을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경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맞지 않는다. 민주적 자유가 없는 탓에 대중운동 앞에 놓이는 장애는 비교적 부차적인 의미를 지닐 뿐이다. 러시아에서도 대중운동은 절대주의 “헌법”의 울타리를 쳐부수고, 불구일망정 “거리 소요”라는 자기 나름의 “헌법”을 만들어 낼 줄 알았다. 대중운동은 절대주의에 최종 승리를 거둘 때까지 앞으로도 그렇게 할 줄 알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주된 어려움을 이루는 것은 부르주아 계급 지배가 절대주의의 폭력 지배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그 때문에 본래의 사회주의적 계급투쟁 학설은 어쩔 수 없이 추상적인 선전의 성격을 띠고, 직접적인 정치 선동은 주로 혁명적 민주주의의 성격을 띤다. 사회주의자 탄압법은 계급 대립이 완전히 드러나 의회주의 속에서 펼쳐진 고도로 발전한 부르주아 사회 한가운데서 노동계급을 헌법 밖에 두려 했을 뿐이다. 바로 거기에 비스마르크가 벌인 일의 광기, 그 불합리가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거꾸로 된 실험을 해야 한다. 부르주아지의 직접적인 정치 지배 없이 사회민주당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 학설을 러시아 땅에 옮겨 심는 문제, 선동의 문제만이 아니라 조직의 문제도 아주 독특한 모습을 띠게 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에서는 조직도 예전의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의 시도들과 달리 선전이 만들어 낸 인공적 산물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역사적 산물이며, 사회민주주의는 거기에 정치적 의식을 불어넣을 뿐이다. 정상적인 조건에서는, 곧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계급 지배가 펼쳐진 것이 사회민주주의 운동보다 앞서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을 처음으로 정치적으로 용접해 묶는 일을 상당 부분 이미 부르주아지가 맡아 해 준다. 『공산당 선언』은 이렇게 말한다. “이 단계에서” “노동자들이 대중적으로 결속하는 것은… 아직 그들 자신의 단결의 결과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단결의 결과다.” 러시아에서는 역사적 과정의 한 단락을 의식적인 개입으로 대신하고, 절대 체제의 토대를 이루는 정치적 원자화 상태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를 곧바로 최고의 조직 형태, 곧 목표를 의식하고 싸우는 계급으로 이끌어 가는 과제가 사회민주당에게 떨어졌다. 그러므로 조직 문제는 러시아 사회민주당에게 유달리 어렵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적 발판이 하나도 없이 조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곳에서라면 부르주아 사회가 마련해 주는 정치적 원료도 없이, 이를테면 하느님처럼 “무에서”, 허공에서 조직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몇 해째 매달려 온 문제는 바로, 운동의 준비 단계이자 주로 선전 단계에 걸맞았던 유형, 곧 흩어지고 완전히 “독립적인” 서클 조직과 지방 조직에서, 나라 전체에 걸친 대중의 통일된 정치 행동에 필요한 조직으로 넘어가는 일이다. 그런데 견딜 수 없게 되고 정치적으로 낡아 버린 옛 조직 형태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지방 조직들의 분산과 완전한 자치, 제멋대로 함이었으므로, 새로운 단계, 준비된 거대한 조직 사업의 구호가 중앙집권주의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중앙집권 사상의 강조는 마지막 당대회, 사실상 창립 대회였던 당대회를 준비하며 3년 동안 찬란한 캠페인을 벌인 《이스크라》의 주도 동기였고, 같은 사상이 러시아 사회민주당의 젊은 근위대 전체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곧 당대회에서, 그리고 당대회 뒤에는 더욱더, 중앙집권주의가 사회민주주의 조직 유형의 역사적 내용과 특성을 조금도 다 담아내지 못하는 표어라는 것이 드러날 참이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사회주의 이해는 어떤 영역에서도, 조직 문제의 영역에서도 경직된 공식으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레닌 동지의 책은 러시아 당 안 초중앙집권주의 경향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레닌은 러시아 당대회를 앞둔 준비 캠페인에서 《이스크라》의 뛰어난 지도자이자 투사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2*]. 여기서 절실하고도 남김없이 표현된 견해는 가차 없는 중앙집권주의의 견해다. 그 생활 원리는 한편으로는 조직된 무리, 곧 공공연히 활동하는 뚜렷한 혁명가들의 무리를, 조직되지는 않았지만 혁명적으로 활동하는 주위 환경으로부터 날카롭게 떼어 내어 구별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엄격한 규율, 그리고 당 지방 조직들의 모든 생활 표현에 대한 중앙 기관의 직접적이고 결정적이며 규정적인 간섭이다. 예를 들어 이 견해에 따르면 중앙위원회는 당의 모든 하부 위원회를 조직할 권한을 지니며, 따라서 제네바와 리에주에서 톰스크와 이르쿠츠크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개별 지방 조직 하나하나의 인적 구성을 정하고, 손수 만든 지방 당규를 주고, 명령 한마디로 조직을 완전히 해산했다가 새로 만들며, 결국 이런 식으로 당의 최고 기관인 당대회의 구성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권한을 지닌다는 것만 지적해도 충분하다. 이에 따르면 중앙위원회가 당의 본래적인 능동적 핵심으로 나타나고, 나머지 모든 조직은 그 집행 도구로만 나타난다.
레닌은 조직에서의 이처럼 엄격한 중앙집권주의를 사회민주주의 대중운동과 결합하는 바로 그 점에서 특별히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적인 원리를 보며, 자기 견해를 뒷받침할 숱한 사실을 내세울 줄 안다. 그러나 문제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사회민주주의에 일반적으로 강한 중앙집권적 경향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 경향으로 보아 중앙집권적인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양에서 자라났고, 투쟁에서 중앙집권화된 부르주아 대국가라는 정치적 틀에 기대고 있는 사회민주주의는 본디부터 모든 분립주의와 민족적 연방주의의 뚜렷한 적이다. 주어진 국가의 틀 안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모든 부분적 이익과 집단 이익에 맞서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체 이익을 대변하도록 부름받은 사회민주주의는 어디서나 노동계급의 모든 민족적·종교적·직업적 집단을 하나의 통일된 전체 당으로 용접해 묶으려는 자연스러운 지향을 지니며, 예컨대 오스트리아처럼 예외적이고 비정상적인 사정에서만 어쩔 수 없이 연방주의 원칙을 위해 예외를 둔다.
이 점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당에게도 그들이 수많은 민족별·지방별 특수 조직들의 연방적 집합체가 아니라 러시아 제국의 통일되고 단단한 노동자 당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와 전혀 다른 문제는 통합되고 통일된 러시아 사회민주당 안에서 중앙집중의 정도가 크냐 작으냐, 그리고 그 중앙집중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을 띠느냐 하는 문제다.
전투 정당으로서 사회민주당이 지닌 형식적 과제의 관점에서 보면, 조직의 중앙집권주의는 애초부터 하나의 조건으로 나타난다. 이 조건이 얼마나 채워지느냐에 당의 전투 능력과 활력이 정비례해 달려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모든 전투 조직의 형식적 요건이라는 관점보다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특수한 역사적 조건이 훨씬 더 중요하다.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계급사회의 역사에서 그 모든 계기에서, 그 전 과정에 걸쳐 대중의 조직과 대중의 자주적인 직접 행동을 기대하는 최초의 운동이다.
이 점에서 사회민주주의는 예전의 사회주의 운동들, 예컨대 자코뱅·블랑키주의 유형의 운동과는 전혀 다른 조직 유형을 만들어 낸다.
레닌은 이것을 과소평가하는 것 같다. 그는 책에서(140쪽)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란 결국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떼려야 뗄 수 없이 결합한 자코뱅”에 다름 아니라고 말한다. 레닌은 소수의 음모와 대립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조직과 계급의식에서 사회민주주의와 블랑키주의를 가르는 차이를 남김없이 보고 있다. 그는 그로써 조직 개념의 완전한 가치 전환, 중앙집권주의 개념의 전혀 새로운 내용, 조직과 투쟁의 상호 관계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해가 함께 주어진다는 것을 잊고 있다.
블랑키주의는 노동자 대중의 직접적인 계급 행동을 기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대중 조직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오히려 넓은 인민대중은 혁명의 순간에야 비로소 투쟁의 무대에 나타나기로 되어 있었고, 그전의 행동은 소수가 혁명적 기습을 준비하는 데 있었으므로, 이 특정한 행동을 맡은 사람들을 인민대중으로부터 날카롭게 떼어 놓는 것이 그 과제를 이루는 데 곧바로 필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떼어 놓는 것은 가능하고 실행할 수도 있었다. 블랑키주의 조직의 음모 활동과 인민대중의 일상생활 사이에는 아무런 내적 연관도 없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활동의 전술과 구체적 과제도 미리 세세한 데까지 짜이고, 특정한 계획으로 고정되어 지시되었다. 활동이 자연발생적인 계급투쟁의 토양과 아무 연관 없이 제멋대로, 즉흥적으로 꾸며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의 활동 성원들은 자연히 자기 활동 영역 바깥에서 미리 정해진 의지를 집행하는 순전한 기관으로, 중앙위원회의 도구로 바뀌었다. 이로써 음모적 중앙집권주의의 둘째 계기도 주어졌다. 당의 개별 기관이 중앙 기관에 절대적이고 맹목적으로 종속되는 것, 그리고 중앙 기관의 결정 권한이 당 조직의 맨 바깥 가장자리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행동의 조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민주주의 행동은 역사적으로 자연발생적인 계급투쟁에서 자라 나온다. 그러면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군대가 투쟁 속에서 비로소 스스로를 충원하고, 투쟁 속에서 비로소 투쟁의 과제도 깨닫게 된다는 변증법적 모순 속에서 움직인다. 여기서 조직, 계몽, 투쟁은 블랑키주의 운동에서처럼 서로 떨어진 계기, 기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도 나뉜 계기가 아니라 같은 과정의 서로 다른 측면일 뿐이다. 한편으로는 투쟁의 일반 원칙을 빼면, 중앙위원회가 사회민주당 당원들에게 훈련시켜 몸에 익힐 수 있는 완성된, 미리 정해진 세부 투쟁 전술이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을 만들어 내는 투쟁 과정 자체가 사회민주주의의 영향권을 끊임없이 출렁이게 한다.
여기서 이미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사회민주주의의 중앙집중은 맹목적 복종에, 당 투사들이 중앙 권력에 기계적으로 종속되는 데에 바탕을 둘 수 없다. 그리고 다른 한편, 이미 단단한 당 간부로 조직된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핵심과, 이미 계급투쟁에 휩쓸려 계급적 계몽 과정에 있는 주위의 층 사이에는 결코 절대적인 칸막이를 세울 수 없다. 그러므로 레닌이 주장하는 대로 이 두 원칙, 곧 당의 모든 조직이 그 활동의 가장 작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홀로 모두를 위해 생각하고 만들고 결정하는 중앙 권력에 맹목적으로 종속되는 것, 그리고 당의 조직된 핵심을 그것을 둘러싼 혁명적 환경으로부터 날카롭게 떼어 놓는 것 위에 사회민주당의 중앙집중을 세우는 것은, 블랑키주의 운동의 조직 원리를 음모가 서클로부터 노동자 대중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으로 기계적으로 옮겨 놓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레닌은 자신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를 “계급의식적 노동자의 조직과 결합한 자코뱅”으로 규정함으로써, 그의 어떤 반대자가 할 수 있었을 것보다도 더 날카롭게 자기 관점을 특징지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 사회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조직과 결합해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 운동 그 자체다. 그러므로 사회민주주의의 중앙집권주의는 블랑키주의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른 성질을 지녀야 한다. 그것은 노동자들 가운데 계몽되고 투쟁하는 전위의 의지를 그 개별 집단과 개인에 맞서 강력하게 하나로 모으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말하자면 프롤레타리아트 지도층의 “자기 중앙집권주의”, 그들 자신의 당 조직 안에서의 다수 지배다.
사회민주주의 중앙집권주의의 이런 본래 내용을 살펴보기만 해도, 오늘날 러시아에는 그런 중앙집권주의에 필요한 조건이 아직 온전히 갖추어져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그 조건이란 정치투쟁에서 이미 훈련된 프롤레타리아의 상당한 층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직접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공개된 당대회에서, 당 신문에서 등등) 자신의 결정 능력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뒤의 조건은 분명 러시아에서 정치적 자유와 함께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다. 앞의 조건, 곧 계급의식을 지니고 판단력을 갖춘 프롤레타리아트 전위를 길러 내는 일은 이제 막 생겨나는 중이며, 당면한 선동 사업과 조직 사업 모두의 지도적 목적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만큼 더 놀랍게 다가오는 것은 레닌의 정반대 확신이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에서 크고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노동자 당을 실현할 모든 전제 조건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제 이미 “조직과 규율이라는 의미에서 자기 교육이 필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러시아 사회민주당 안의 몇몇 대학 출신 지식인들”(145쪽)이라고 낙관적으로 외칠 때, 공장이 프롤레타리아트를 본디부터 “규율과 조직”에 성숙하게 만든다며 공장의 교육적 의미를 칭송할 때(147쪽), 이는 다시금 사회민주주의 조직에 대한 지나치게 기계적인 이해를 드러낸다. 레닌이 말하는 “규율”은 결코 공장만이 아니라 병영도, 근대적 관료주의도, 한마디로 중앙집권화된 부르주아 국가의 기구 전체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새겨 넣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 그토록 대립하는 두 개념을 똑같이 “규율”이라고 부르는 것은 표어를 남용하는 것일 뿐이다. 한쪽은 지휘봉에 맞춰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다리와 팔이 여럿 달린 살덩어리의 의지 없음과 생각 없음이고, 다른 한쪽은 한 사회층이 의식적인 정치 행동을 자발적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한쪽은 지배당하는 계급의 시체 같은 복종이고, 다른 한쪽은 해방을 위해 싸우는 계급의 조직된 반란이다. 프롤레타리아가 새로운 규율, 곧 사회민주주의의 자발적인 자기 규율을 위해 교육될 수 있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가 그에게 새겨 넣은 규율을 이어받는 것으로써가 아니다. 지휘봉을 부르주아지의 손에서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의 손으로 옮겨 쥐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이 노예적 규율 정신을 깨뜨리고 뿌리 뽑아야만 비로소 그렇게 될 수 있다.
같은 고찰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도 분명해진다. 사회민주주의적 의미의 중앙집권주의는 애당초 노동운동의 어느 단계에서나 같은 정도로 실현할 수 있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하나의 경향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 실현은 노동자 대중이 투쟁 과정에서 계몽되고 정치적으로 훈련되는 것과 보조를 맞추어 나아간다.
물론 오늘날 러시아 운동에서 중앙집권주의를 온전히 실현하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전제가 충분히 갖추어지지 않은 것은 몹시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계몽된 노동자들이 자기 당 조직 안에서 다수 지배를 하는 것이 아직 실행 불가능하니 “당분간” 당 중앙 권력이 “위임받은” 단독 지배로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리고 당 기관들의 행동거지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공개적 통제가 없는 것을, 거꾸로 중앙위원회가 혁명적 노동자들의 활동을 통제하는 것으로 똑같이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러시아 운동 자신의 역사가 이 후자의 의미에서 중앙집권주의가 지니는 의심스러운 가치를 보여 주는 증거를 많이 제공한다. 간섭과 통제의 거의 무제한 권한을 지닌, 레닌이 이상으로 삼는 전능한 중앙 권력은, 그 권력을 사회민주주의 활동의 순전히 기술적인 측면, 이를테면 당 문헌의 공급, 선동 인력과 재정의 적절한 배분 같은 선동의 외적 수단과 방편을 조정하는 일에만 한정한다면 분명 터무니없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자기 권력을 통일된 투쟁 전술을 만들어 내는 데, 러시아에서 커다란 정치 행동을 일으키는 데 쓸 때만 이해할 만한 정치적 목적을 지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러시아 운동이 겪어 온 변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지난 10년 동안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풍요로운 전술적 전환은 운동의 특정한 지도자들이, 하물며 지도 조직들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매번 고삐 풀린 운동 자체의 자생적 산물이었다. 러시아에서 본래의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첫 단계가 그러했다. 그것은 1896년 페테르부르크 대파업의 자연발생적 폭발과 함께 시작되었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적 대중 행동을 처음으로 열어젖혔다. 둘째 단계, 곧 정치적 가두시위의 단계도 1901년 3월 페테르부르크 학생 소요로 아주 자생적으로 열렸다. 전술의 시야를 새롭게 넓혀 준 그다음의 중요한 전환점은 로스토프나도누에서 “저절로” 터진 대중 파업이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꾸려진 가두 선동, 노천 인민 집회, 공개 연설은,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사회민주주의자 가운데 가장 대담한 돌격파조차 공상으로 여겨 감히 생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이 모든 경우에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의 주도와 의식적 지도는 극히 작은 역할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 특정 조직들이 자기 역할을 할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이 요인도 상당 부분 함께 작용했겠지만), 하물며 당시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레닌이 펼쳐 보인 구상에 따른 전능한 중앙 권력이 없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거꾸로 그런 중앙 권력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당의 개별 위원회들의 우유부단을 더 키우고, 돌진하는 대중과 머뭇거리는 사회민주당 사이에 분열을 낳는 쪽으로만 작용했을 것이다. 같은 현상, 곧 전술을 형성하는 데서 당 지도부의 의식적 주도가 하는 역할이 작다는 현상은 오히려 독일에서도, 그리고 어디서나 관찰할 수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투쟁 전술은 그 큰 줄기에서 애당초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실험하는, 흔히 자연발생적인 계급투쟁이 이어 가는 커다란 창조적 행위들의 결과다. 여기서도 무의식이 의식에 앞서고, 객관적 역사 과정의 논리가 그 담지자들의 주관적 논리에 앞선다. 그 경우 사회민주주의 지도부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성격을 띤다. 경험이 보여 주듯이, 지도부는 그때마다 새로 얻은 투쟁의 지반을 가장 끝의 귀결까지 다듬어 내고, 곧 그것을 더 큰 규모의 새로운 혁신을 가로막는 보루로 뒤바꾸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 사회민주당의 현재 전술은 그 놀라운 다채로움, 유연함, 그러면서도 확실함 때문에 널리 찬탄을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당이 일상 투쟁에서 현재의 의회 지반에 가장 작은 세부까지 놀랍도록 적응했다는 것, 의회주의가 내주는 투쟁 지반 전체를 활용하고 원칙에 맞게 장악할 줄 안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런 특수한 전술 형태가 이미 더 넓은 시야를 크게 가리고 있어서, 의회 전술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그것을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전술 그 자체로 여기는 경향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이런 분위기를 특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예컨대 파르부스가 여러 해 동안 애썼지만 헛수고였던 일이다. 그는 보통선거권이 폐지될 경우에 대비해 전술을 새로 짜는 문제에 관한 토론을 당 신문에서 일으키려 했으나, 당 지도자들도 그런 사태를 정말 쓰라리게 심각한 일로 염두에 두고 있었음에도 그 토론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은 상당 부분,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러니까 상상 속의 정치 상황의 윤곽과 손에 잡히는 형태를 추상적 사변의 허공에서 그려 내기가 어렵다는 데서 설명된다. 사회민주주의에게도 언제나 중요한 것은 미래의 전술을 위한 완성된 처방을 미리 예감하고 미리 짜 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그때 지배적인 투쟁 형태에 대한 올바른 역사적 평가를 당 안에 살아 있게 하는 것, 주어진 투쟁 단계의 상대성에 대한 생생한 감각,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최종 목표의 관점에서 혁명적 계기들을 반드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생생한 감각을 당 안에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레닌이 하듯이 당 지도부에 그토록 절대적인, 소극적 성격의 권한을 주려 한다면, 그것은 모든 당 지도부의 본질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보수주의를 바로 가장 위험한 정도로 인위적으로 키우는 것이 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 전술을 만드는 것이 중앙위원회가 아니라 당 전체, 더 정확히 말하면 운동 전체라면, 당의 개별 조직들에게는 분명 팔꿈치를 놀릴 만한 자유가 필요하다. 그 자유만이 그때그때 상황이 내주는 모든 수단을 투쟁을 키우는 데 남김없이 활용하고, 혁명적 주도성을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나 레닌이 옹호하는 초중앙집권주의는 그 본질 전체에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이 아니라 메마른 야경꾼 정신에 떠받쳐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사고방식은 주로 당 활동의 통제에 맞추어져 있지 그 활동을 풍요롭게 하는 데 맞추어져 있지 않고, 운동을 옥죄는 데 맞추어져 있지 펼치는 데 맞추어져 있지 않으며, 운동을 들볶는 데 맞추어져 있지 결집하는 데 맞추어져 있지 않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에게 이런 실험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두 배로 위험해 보인다. 러시아 사회민주당은 절대주의를 타도하기 위한 커다란 혁명적 투쟁의 전야에 서 있고, 전술의 영역에서 가장 강렬하고 창조적인 활동을 해야 할 시기 앞에, 아니 오히려 그런 시기 한가운데 서 있으며, 혁명의 시대에는 당연한 일이지만, 영향권이 열병처럼 비약적으로 넓어지고 옮겨 가는 시기에 서 있다. 바로 그런 때에 당 정신의 주도성에 덫을 놓고, 당이 단숨에 뻗어 나가는 능력을 철조망으로 가두려 한다면, 그것은 사회민주당을 애초부터 이 순간의 커다란 과제에 크게 부적합하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물론 사회민주주의 중앙집권주의의 고유한 내용에 관한 위의 일반적 고찰에서 러시아 당 조직 당규 조항의 구체적 문안이 곧바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그 문안은 당연히 최종적으로는 주어진 시기에 활동이 펼쳐지는 구체적 상황에 달려 있으며, 러시아에서는 어쨌든 커다란 프롤레타리아 당 조직의 첫 시도가 문제이므로 미리 무오류를 내세우기는 어렵고, 오히려 어떤 경우든 먼저 실생활의 불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조직 유형에 대한 일반적 이해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기본 특징, 곧 조직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 정신은, 특히 대중운동의 초기에는, 사회민주주의 중앙집권주의가 규제하고 배제하는 성격이 아니라 주로 조율하고 결집하는 성격을 띠도록 한다. 그런데 운동의 원칙적 확고함과 통일성을 날카롭게 살피는 눈과 짝을 이룬 이런 정치적 운동의 자유의 정신이 당의 대열 안에 자리를 잡는다면, 어떤 조직 당규든, 서투르게 작성된 당규라도 그 모난 데는 실천 자체를 통해 아주 빨리 효과적으로 바로잡힐 것이다. 조직 형태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당규의 문구가 아니라, 활동하는 투사들이 그 문구에 불어넣는 뜻과 정신이다.
II
지금까지 우리는 중앙집권주의 문제를 사회민주주의의 일반적 기초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 러시아의 사정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그러나 레닌과 그의 벗들이 옹호하는 초중앙집권주의의 야경꾼 정신은 그에게서 오류가 우연히 낳은 산물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조직 문제의 가장 작은 세부에 이르기까지 관철된 적대, 곧 기회주의에 대한 적대와 연관되어 있다.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52쪽). “문제는 조직 당규의 조항들을 통해 기회주의에 맞설 다소간 날카로운 무기를 벼리는 것이다. 기회주의의 원천이 깊을수록 이 무기는 더 날카로워야 한다.”
레닌은 중앙위원회의 절대 권력과 당을 당규로 엄격히 울타리 치는 것에서도 바로 기회주의 조류를 막는 효과적인 둑을 본다. 그는 기회주의 조류의 특유한 표지로 대학 출신 지식인이 타고난 자치주의 선호, 해체 선호, 그리고 엄격한 당 규율과 당 생활의 모든 “관료주의”에 대한 혐오를 꼽는다. 레닌의 생각으로는 사회주의 “문필가”만이 그 타고난 산만함과 개인주의 때문에 중앙위원회의 그처럼 무제한한 권한에 반발할 수 있다. 반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적 계급 본능 때문에라도 최고 당 기관의 그 모든 엄격함, 꼿꼿함, 날렵함에서 일종의 쾌감을 느낄 것이며, “당 규율”의 그 모든 거친 수술을 기쁘게 눈을 감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한다. 레닌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에 맞서는 관료주의, 이것이 바로 기회주의자들의 조직 원리에 맞서는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조직 원리다.”(151쪽) 그는 혁명적 경향과 개량주의적 또는 수정주의적 경향이 맞서 있는 모든 나라의 사회민주당에서 중앙집권적 견해와 자치주의적 견해 사이의 같은 대립이 눈에 띈다는 점을 힘주어 내세운다. 특히 그는 독일 당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과, 선거구 자치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진 토론을 예로 든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레닌의 비교를 검토해 보는 것은 흥미가 없지 않고 쓸모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사회민주주의 조직을 향한 프롤레타리아의 타고난 능력을 강하게 내세우고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대학 출신” 분자들을 의심하는 것 자체에는 아직 아무런 “마르크스주의적·혁명적”인 것도 없으며, 오히려 거기서 기회주의적 견해와의 친연성을 똑같이 쉽게 입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순수한 프롤레타리아 분자와 비프롤레타리아 사회주의 인텔리겐치아 사이의 적대, 이것이야말로 공통의 이데올로기적 방패다. 그 방패 아래서 “정치가들을 믿지 말라!(Méfiez-vous de politiciens!)”라는 오랜 외침을 지닌 프랑스의 반무정부주의적 순수 노동조합주의자, 사회주의 “몽상가들”에 대한 영국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불신, 그리고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다면, 트레이드유니언주의의 편협함을 절대주의 러시아로 옮겨 온 예전 페테르부르크의 《라보차야 미슬》(노동자의 사상)의 순수한 “경제주의”가 서로 손을 잡는다.
물론 지금까지 서유럽 사회민주당의 실천에서는 기회주의와 대학 출신 분자 사이에, 그리고 다른 한편 기회주의와 조직 문제에서의 탈중앙집중 경향 사이에 부인할 수 없는 연관이 눈에 띈다. 그러나 구체적인 역사적 토양에서 생겨난 이 현상들을 그 연관에서 떼어 내 일반적이고 절대적인 타당성을 지닌 추상적 틀로 찍어 낸다면, 그런 방법은 마르크스주의의 “성령”, 곧 그 역사적·변증법적 사고방법을 거스르는 가장 큰 죄다.
추상적으로 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다음 정도뿐이다. “대학 출신 지식인”은 출신으로 보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낯선, 부르주아지에서 나온 분자로서, 자기 계급 감정과 어울려서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함으로써만, 이데올로기의 길을 거쳐서만 사회주의에 이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계몽된 프롤레타리아보다 기회주의적 탈선에 빠지기 쉬운 소질을 지닌다. 계몽된 프롤레타리아에게는, 그가 자기 사회적 모태인 프롤레타리아 대중과의 살아 있는 연관을 잃지 않은 한, 직접적인 계급 본능이 확실한 혁명적 버팀목이 되어 준다. 그러나 대학 출신 지식인의 이런 기회주의 소질이 어떤 구체적 형태로 나타나는지, 특히 조직 경향에서 어떤 가장 뚜렷한 모습을 띠는지는 매번 문제가 되는 사회의 구체적인 사회적 환경에 달려 있다.
레닌이 내세우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회민주당 생활의 현상들은 아주 특정한 사회적 기반, 곧 부르주아 의회주의라는 기반에서 자라 나왔다. 부르주아 의회주의가 서유럽 사회주의 운동에서 오늘날 기회주의 조류의 특수한 온상이듯이, 기회주의의 특수한 해체 경향도 거기서 싹텄다.
의회주의는 우리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보아 온 오늘날 기회주의의 잘 알려진 온갖 환상, 곧 개량 사업의 과대평가, 계급과 정당의 협력, 평화적 발전 따위를 북돋울 뿐만 아니다. 의회주의는 동시에 이 환상들이 실천으로 옮겨질 수 있는 토양을 이룬다.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대학 출신 지식인들을 의원으로서 프롤레타리아 대중으로부터 떼어 놓고, 말하자면 대중 위로 들어 올리기 때문이다. 끝으로 같은 의회주의는 노동운동이 자라남에 따라 노동운동을 정치적 출세의 발판으로 만들며, 그래서 노동운동을 야심 많은 부르주아 인생들과 난파한 부르주아 인생들의 은신처로 만들기 쉽다.
이 모든 계기에서 서유럽 사회민주당의 기회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이 해체와 규율 없음으로 기우는 특정한 경향도 생겨난다. 오늘날 기회주의 조류의 둘째 특정한 전제는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이미 높은 발전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 따라서 영향력 있는 사회민주당 조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당 조직은 이제 부르주아적·의회적 경향에 맞서 혁명적 계급 운동을 지키는 방벽으로 나타나며, 기회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단단하고 능동적인 핵심을 다시 형체 없는 유권자 대중 속으로 녹여 버리려고 이 방벽을 허물고 흩어 놓으려 한다. 이렇게 해서 역사적으로 충분히 근거가 있고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썩 잘 들어맞는 근대 기회주의의 “자치주의적” 탈중앙집중 경향이 생겨난다. 따라서 이 경향은 레닌이 생각하듯이 “지식인”의 타고난 방탕함과 물러 터짐에서가 아니라 부르주아 의원의 필요에서, 대학 출신 지식인의 심리에서가 아니라 기회주의자의 정치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사정은 절대주의 러시아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보인다. 거기서 노동운동 안의 기회주의는 서유럽에서처럼 사회민주주의의 강한 성장이나 부르주아 사회의 해체가 낳은 산물이 전혀 아니고, 거꾸로 그 정치적 후진성이 낳은 산물이다.
사회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이 충원되는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당연히 서유럽 인텔리겐치아보다 훨씬 더 불분명한 계급적 성격을 지니며, 낱말의 정확한 의미에서 훨씬 더 탈계급화되어 있다. 이로부터,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젊음과 맞물려, 일반적으로 이론적 무정견과 기회주의적 방황이 펼쳐질 여지가 훨씬 넓어진다. 그 방황은 때로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측면을 완전히 부정하는 데로, 때로는 그와 반대로 테러만이 구원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으로 흘러가다가, 끝내는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의 늪에서, “철학적으로는” 칸트 관념론의 늪에서 쉬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에게는 특유한 능동적 해체 경향을 위한 적극적 발판인 부르주아 의회주의가 없을 뿐 아니라, 그에 걸맞은 사회심리적 환경도 없다. 이른바 자기 “자아”를 숭배하는 데 몸을 바치고 이 “주인 인간의 도덕”을 사회주의의 투쟁 세계와 사상 세계에까지 끌고 들어오는 근대 서유럽의 문필가는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 일반의 유형이 아니라 그 존재의 특정한 단계의 유형이다. 곧 그는 퇴폐하고 썩어, 자기 계급 지배의 악순환 속에 이미 꼼짝없이 갇혀 버린 부르주아지의 산물이다. 반면 러시아 사회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의 유토피아적·기회주의적 변덕은 이해할 만하게도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이론적 형태, 곧 자기 포기와 자기 채찍질의 형태를 띠는 경향이 있다. 옛 “인민주의자들”의 예전 “브 나로드(인민 속으로)”, 곧 대학 출신 지식인이 의무처럼 농민으로 꾸미던 가장무도회야말로 바로 그 대학 출신 지식인이 짜낸 절망적인 발명이었고, 요즘 순수 “경제주의” 지지자들이 “굳은살 박인 주먹”을 거칠게 숭배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조직 형태의 문제를 경직된 틀을 서유럽에서 러시아로 기계적으로 옮기는 길이 아니라 러시아 자체의 주어진 구체적 사정을 살피는 길로 풀려고 하면,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른다. 레닌이 하듯이 기회주의가 애당초 어떤 특정한 조직 형태, 이를테면 탈중앙집중에 열광한다고 보는 것은 어쨌든 기회주의의 내적 본성을 오해하는 것이다. 기회주의는 기회주의답게 조직 문제에서도 원칙 없음을 유일한 원칙으로 삼는다. 그것은 언제나 상황에 따라, 자기 목적에 들어맞는 한에서 수단을 고른다. 그런데 우리가 레닌처럼 기회주의를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주적인 혁명적 계급 운동을 마비시켜 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의 지배욕에 봉사하게 만들려는 지향으로 규정한다면,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이 목적을 탈중앙집중이 아니라 오히려 꼿꼿한 중앙집권주의로 가장 쉽게 이룰 수 있다. 꼿꼿한 중앙집권주의는 아직 분명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한 줌의 대학 출신 지도자들에게 송두리째 내맡기기 때문이다. 특징적인 것은 독일에서도 계몽된 프롤레타리아의 강한 핵심과 검증된 사회민주주의 전술이 아직 없던 운동 초기에 조직의 두 경향이 다 나타났다는 점이다. 극단적인 중앙집권주의는 라살레의 전독일노동자협회가, “자치주의”는 아이제나흐파가 대표했다. 그리고 아이제나흐파의 이 전술은 원칙적으로 불분명했다는 점을 다 인정하더라도, 당의 정신생활에 프롤레타리아 분자가 훨씬 더 많이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했고, 노동자들 자신에게서 더 큰 주도 정신을 길러 냈으며(그 증거로 무엇보다 이 분파의 상당한 지방 신문이 빠르게 발전한 것을 들 수 있다), 대체로 넓이를 향한 훨씬 강하고 건강한 추세를 보였다. 자기들의 “독재자들”과 함께 당연히 갈수록 더 서글픈 경험을 한 라살레파보다 말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대중의 혁명적 부분이 아직 느슨하고 운동 자체가 흔들리는 사정, 한마디로 지금 러시아와 비슷한 사정에서는, 바로 엄격하고 전제적인 중앙집권주의가 기회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에게 알맞은 조직 경향이라는 것을 쉽게 입증할 수 있다. 그와 꼭 마찬가지로 더 나중 단계에서는, 곧 의회 환경에서 강하고 단단히 짜인 노동자 당을 마주해서는, 거꾸로 탈중앙집중이 기회주의적 대학 출신 지식인에게 알맞은 경향이 된다.
인텔리겐치아가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미치는 위험한 영향에 대한 레닌의 걱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바로 그 자신의 조직관이 러시아 사회민주당에게 가장 큰 위험이 된다.
실제로 아직 젊은 노동운동을 대학 출신 지식인들의 지배욕에 그토록 쉽고 확실하게 내맡기는 것은, 운동을 관료적 중앙집권주의의 갑옷 속에 억지로 밀어 넣어[3*] 싸우는 노동자들을 한 “위원회”의 순종하는 도구로 끌어내리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그리고 거꾸로 야심 많은 인텔리겐치아의 온갖 기회주의적 남용으로부터 노동운동을 그토록 확실하게 지켜 주는 것은 노동자들의 혁명적 자기 활동, 그들의 정치적 책임감을 키우는 것만 한 것이 없다.
게다가 레닌이 오늘 유령으로 보는 것이 내일 아주 쉽게 손에 잡히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우리가 러시아에서 그 전야에 서 있는 혁명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이며, 이 혁명이 사회민주주의 투쟁의 무대 전체를 크게 바꾸리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때가 되면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도 꽤 빨리 뚜렷한 부르주아 계급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오늘은 사회민주당이 러시아 노동자 대중의 유일한 지도자이지만, 혁명 다음 날 아침에는 부르주아지가, 그리고 맨 먼저 그 인텔리겐치아가 당연히 대중을 자신의 의회 지배의 받침대로 빚으려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투쟁 시기에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깨어 있는 층의 자기 활동, 자유로운 주도성, 정치적 감각이 덜 풀려날수록, 그 층이 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에게 정치적으로 끌려다니고 훈련될수록, 새로워진 러시아에서 부르주아 선동가들의 게임은 더 쉬워질 것이고, 사회민주당이 오늘 애써 거둔 수확은 내일 그만큼 더 많이 부르주아지의 곳간으로 옮겨 갈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조직 당규로 기회주의를 노동운동에서 떼어 놓겠다는 데서 정점에 이르는 초중앙집권적 견해의 근본 사상 전체가 그릇된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최근 벌어진 일들의 직접적인 인상 아래,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도 기회주의를 일반적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분자들과 함께 외부로부터 노동운동 안으로 들어온, 프롤레타리아 운동 자체에는 낯선 혼합물로 여기는 경향이 생겨난 것이 분명하다. 설령 이것이 옳다 하더라도, 당규의 조직적 장벽은 그것만으로는 기회주의 분자의 쇄도에 맞서 전혀 무력하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일단 비프롤레타리아 분자들이 사회민주당으로 대거 흘러드는 것이 소부르주아지의 급속한 경제적 몰락,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더 급속한 정치적 몰락,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소멸처럼 그토록 깊이 뿌리박은 사회적 원인에서 비롯한다면, 당규 조항을 이렇게 또는 저렇게 작성해서 밀려드는 이 물결을 막아 낼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순진한 환상이다. 조항은 작은 종파나 사적 결사의 존재만 다스릴 뿐이며, 역사적 조류는 언제나 가장 교묘한 조항도 뛰어넘을 줄 알았다. 나아가 부르주아 사회의 점진적 해체로 풀려난 분자들이 대거 흘러드는 것을 막는 것이 노동운동의 이익에 맞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그릇된 일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대표인 사회민주당이 동시에 사회의 진보적 이익 전체의 대표이자 부르주아 사회질서의 모든 억압받는 희생자의 대표라는 명제는, 사회민주당 강령에 이 모든 이익이 관념적으로 모여 있다는 뜻으로만 풀이할 것이 아니다. 이 명제는 역사적 발전 과정의 모습으로 진실이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사회민주당은 정당으로서도 차츰 가지가지 불만 분자들의 피난처가 되고, 지배 부르주아지라는 아주 작은 소수에 맞서는 진정한 인민의 당이 된다. 중요한 것은 다만 사회민주당이 이 잡다한 동반자 무리의 당면한 고통을 노동계급의 최종 목표에 끈질기게 종속시키고, 비프롤레타리아적 반대 정신을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행동 속에 편입하고, 한마디로 흘러드는 분자들을 동화하고 소화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독일에서 그랬듯이, 이미 힘차고 훈련된 프롤레타리아 핵심 부대가 사회민주당에서 주도권을 쥐고, 탈계급화한 동반자들과 소부르주아 동반자들을 혁명적으로 이끌고 갈 만큼 명료할 때만 가능하다. 이 경우에는 조직 당규에서 중앙집권 사상을 더 엄격하게 관철하고 당 규율을 더 엄격하게 조항으로 정하는 것도 기회주의 조류를 막는 둑으로서 아주 적절하다. 이런 사정에서는 조직 당규가 틀림없이 기회주의와의 투쟁에서 하나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그것은 조레스파의 잡탕이 밀려들 때 그런 발판이 되었고, 독일 당규도 이런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이 이제 필요해졌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당규는 그 자체로 기회주의를 막는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되며, 당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다수가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외적인 권력 수단일 뿐이어야 한다. 그런 다수가 아직 없는 곳에서는 종이 위의 가장 엄격한 조항으로도 그것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런데 이미 말했듯이 부르주아 분자들의 유입은 사회민주당 안 기회주의 조류의 유일한 원천이 결코 아니다. 다른 원천은 오히려 사회민주주의 투쟁 자체의 본질, 그 내적 모순 속에 있다. 승리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사적으로 전진하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며, 그 특수성은 여기서 역사상 처음으로 인민대중 자신이 모든 지배계급에 맞서 자기 의지를 관철하되, 그 의지를 오늘의 사회 너머에, 그 사회를 넘어선 곳에 두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 대중은 이 의지를 기존 질서와의 일상 투쟁 속에서만, 따라서 그 질서의 틀 안에서만 길러 낼 수 있다. 큰 인민대중을 기존 질서 전체를 넘어서는 목표와 결합하는 것, 일상 투쟁을 혁명적 변혁과 결합하는 것, 이것이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변증법적 모순이다. 그래서 이 운동은 당연히 발전의 전 과정에서 두 암초 사이를 헤치며 나아가야 한다. 대중적 성격을 내버리는 것과 최종 목표를 포기하는 것 사이를, 종파로 되돌아가는 것과 부르주아 개량 운동으로 넘어가는 것 사이를 말이다.
그러므로 혁명적 의미의 사회민주주의 전술을 미리 단번에 확보할 수 있다거나, 노동운동을 기회주의적 탈선으로부터 단번에 지켜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비역사적인 환상이다. 물론 마르크스의 학설은 기회주의 사고의 모든 기본 유형을 쳐부술 무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운동은 바로 대중운동이고, 그 운동을 위협하는 암초는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사회적 조건에서 생겨나므로, 기회주의적 오류를 애초부터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오류는 실천에서 손에 잡히는 모습을 띤 다음에야, 물론 마르크스주의가 제공하는 무기의 도움을 받아, 운동 자체가 극복해야 한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기회주의도 노동운동 자체의 산물로, 그 역사적 발전의 불가피한 계기로 나타난다. 바로 사회민주당이 아직 젊고 노동운동의 정치적 조건이 그토록 비정상적인 러시아에서는, 기회주의가 당분간 상당 부분 이 원천에서, 곧 전술의 불가피한 모색과 실험에서, 아주 독특하고 전례 없는 사정 속에서 당면 투쟁을 사회주의 원칙과 조화시켜야 할 필요에서 생겨날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노동운동의 바로 첫머리에서 조직 당규를 이렇게 또는 저렇게 작성함으로써 기회주의 조류가 생겨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만큼 더 기묘해 보인다. 그런 종이 수단으로 기회주의를 막으려는 시도는 실제로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당 자신의 살을 벨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시도는 사회민주당 안에서 건강한 생명의 맥박을 끊음으로써, 기회주의 조류에 맞선 투쟁에서뿐 아니라, 이것도 마찬가지로 얼마간 중요할 터인데, 기존 사회질서에 맞선 투쟁에서도 당의 저항력을 약하게 만든다. 수단이 목적을 거스르는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희망에 차서 생기 있게 솟아오르는 러시아 노동운동을 모든 것을 알고 어디에나 있는 중앙위원회의 후견으로 실수로부터 지키려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 일부의 이 소심한 노력에는, 이미 여러 번 러시아의 사회주의 사상을 골탕 먹인 바로 그 주관주의가 끼어들어 있는 것 같다. 역사의 존경스러운 인간 주체가 자기 자신의 역사적 과정에서 이따금 즐겨 보여 주는 재주넘기는 참으로 우습다. 러시아 절대주의에 짓밟히고 으스러진 자아는 자신의 혁명적 사상 세계에서 스스로를 왕좌에 앉히고, 존재하지도 않는 “인민의 의지”의 이름으로 음모가 위원회로서 자기가 전능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앙갚음을 한다. 그러나 “객체”가 더 강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채찍이 곧 승리를 거둔다. 채찍 자신이 역사적 과정의 주어진 단계의 정당한 “표현”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마침내 역사 과정의 더 정당한 자식으로 러시아 노동운동이 무대에 나타난다. 그것은 러시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이제 정말로 한번 인민의 의지를 만들어 내려고 더없이 멋지게 도약한다. 그런데 이제 러시아 혁명가의 “자아”는 서둘러 물구나무를 서서 다시 한번 자기가 역사의 전능한 조종자라고 선언한다. 이번에는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 중앙위원회라는 더없이 존귀한 위엄을 갖추고서. 이 대담한 곡예사는 지금 이 조종의 역할을 넘겨받은 유일한 주체가 노동계급의 대중적 자아라는 것을 간과한다. 이 대중적 자아는 스스로 실수를 저지르고 스스로 역사의 변증법을 배울 권리를 한사코 고집한다. 그리고 끝으로 우리끼리 터놓고 말하자. 참으로 혁명적인 노동운동이 저지르는 실수는 역사적으로 가장 뛰어난 중앙위원회의 무오류보다 헤아릴 수 없이 더 풍요롭고 더 값지다.
주석
- 이 글은 러시아의 사정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서 다루는 조직 문제는 독일 사회민주당에도 중요하다. 오늘날 우리 러시아 형제 당이 얻은 커다란 국제적 의미 때문만이 아니라, 비슷한 조직 문제가 지금 우리 당을 몹시 활발하게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크라》에 실린 이 글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편집부(《노이에 차이트》)
- 엔. 레닌, 『일보 전진, 이보 후퇴』, 제네바, 1904. ↩
- 영국에서는 바로 페이비언들이 관료적 중앙집중의 가장 열렬한 옹호자이자 민주적 조직 형태의 반대자다. 특히 웹 부부가 그렇다. 편집부(《노이에 차이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