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Australian Labor Party
1891년 오스트레일리아 여러 식민지에서 노동조합 운동이 세운 노동당들에서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1904년 크리스 왓슨 정부로 세계 최초의 전국 단위 노동당 정부를 세웠고, 1910년 연방 의회에서 처음으로 단독 과반을 얻었다. 노동조합과 긴밀히 연결된 양대 정당의 하나로 지금도 집권하고 있다.
상세
노동당의 뿌리는 189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결성 이전 각 식민지에서 세워진 노동당들이다. 당의 전통은 1891년 퀸즐랜드 바칼딘에서 파업 중이던 목양 노동자들이 「지식의 나무」 아래 모인 일을 퀸즐랜드 노동당의 기원으로 삼으며, 1891년 양털깎이 파업이 창당 요인의 하나로 꼽힌다. 1891년 뉴사우스웨일스 선거에서 노동당 후보들은 141석 가운데 35석을 얻어 캐스팅보트를 쥐었고, 1899년 퀸즐랜드에서 앤더슨 도슨이 세계 최초의 노동당 정부를 세웠으나 일주일 만에 무너졌다.
1901년 연방이 성립하자 각 주 노동당은 하원 75석 가운데 15석을 얻었고, 의원들은 연방 의회 노동당 원내단을 꾸렸다. 1901년 강령은 백호주의 정책, 시민군, 노사 분쟁의 강제 중재를 요구했다. 1904년 4월 크리스 왓슨이 넉 달 동안 소수 정부를 이끌어 세계 최초의 전국 단위 노동당 정부를 세웠고, 1910년 앤드루 피셔가 연방 하원과 상원 모두에서 과반을 얻었다. 러시아어 출처에 따르면 제1차 세계대전 중 총리 빌리 휴스가 당을 떠나 국민노동당을 세웠고, 1920년 일부 좌파가 나가 오스트레일리아 공산당을 세웠다. 1921년 노동조합 대회의 결의에 이어 1922년 전국 대회는 「산업·생산·분배·교환의 사회화」를 목표로 채택했으나, 블랙번 수정안으로 착취를 없애는 데 필요한 경우로 한정했다.
1941년 10월 존 커틴이 총리가 되어 태평양 전쟁 시기 나라를 이끌었고, 미국과의 동맹을 내세웠다. 그 뒤를 이은 벤 치플리는 1947년 은행 국유화를 시도했으나 고등법원이 위헌으로 판결했고, 1949년 총선에서 로버트 멘지스의 연립에 졌다. 당은 이후 23년 동안 야당이었고, 이 시기 주로 허버트 에바트와 아서 콜웰이 당을 이끌었다. 1955년 당은 분열해 반공 성향의 민주노동당이 떨어져 나갔다. 당은 1900~1940년 백호주의를 강하게 옹호했으나, 1967년 콜웰이 물러난 뒤 다문화주의로 돌아섰다.
1972년 고프 휘틀럼이 당을 다시 집권시켰으나 1975년 헌정 위기 속에 총독 존 커에게 해임되었다. 1983~1996년 밥 호크와 폴 키팅이 집권했고, 2007년 케빈 러드, 2010년 오스트레일리아 첫 여성 총리 줄리아 길러드가 정부를 이끌었다. 2022년 총선에서 앤서니 앨버니지 아래 다시 집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