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유니 선언
Brioni Declaration
1956년 7월 19일 요시프 브로즈 티토, 자와할랄 네루, 가말 압델 나세르가 브리유니 제도에서 서명한 공동 성명으로, 공동 반블록 정책을 선언하고 1955년 반둥 회의의 10개 원칙을 지지했다. 비동맹 국가들이 채택한 최초의 다자 문서이며, 반둥 회의와 1961년 베오그라드 정상회의 사이를 잇는 비동맹 운동의 공식적 출발점으로 널리 평가된다. '평화는 분할로 달성될 수 없으며, 세계적 차원의 집단 안보를 향한 노력으로만 달성된다'는 이 선언의 핵심 주장은 냉전 이후까지 살아남은 운동의 기초 교리를 세웠다.
상세
배경: 반둥에서 브리유니까지
1955년 4월 반둥 회의는 아시아·아프리카 29개국이 모여 반식민주의와 평화공존의 원칙을 선언한 최초의 대규모 제3세계 회의였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는 초청받지 못했다. 유럽의 사회주의 국가라는 정체성 때문이었다. 티토에게 이 결여는 치명적이었다. 소련과 결별한 유고슬라비아는 동서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외교 노선을 모색 중이었고, 반둥의 정신은 그 노선에 가장 가까운 국제적 표현이었다.
같은 해 5월, 흐루쇼프의 베오그라드 방문으로 소련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유고슬라비아는 양 진영 모두와 거리를 둔 '적극적 평화공존' 노선을 공식화할 여유를 얻었다. 티토는 반둥 회의의 두 중심 인물인 네루와 나세르를 1956년 7월 브리유니로 초청했다. 세 지도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비동맹에 다가서고 있었다. 네루는 독립 직후부터 냉전의 논리를 거부해왔고, 나세르는 바그다드 조약과 수에즈 운하를 둘러싼 영국과의 갈등 속에서 서방 블록 가입 압력을 돌파할 길을 찾고 있었다.
회의와 선언
1956년 7월 18일부터 19일까지 브리유니에서 열린 회의에는 120명의 국내외 기자가 몰렸다. 네루는 이 회의를 단순한 '친선 방문'으로 여겼고, 연합 성명 발표도 자신이 제안했다고 후일 밝혔다. 실제로 네루는 티토와 나세르가 이후 4년간 거듭 제안한 대규모 비동맹 회의 구상에 지속적으로 반대했다. 그럼에도 브리유니 선언은 반둥의 10개 원칙을 다자 문서로 재확인하고, '평화는 분할이 아니라 세계적 차원의 집단 안보 추구를 통해 달성된다'는 원칙을 명시했다. 이 선언은 '공동 반블록 정책에 관한 선언(Declaration on a Joint Anti-Bloc Policy)'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었고, 한 나라의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 종식과 자유 영역의 확대를 평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의의
브리유니 선언은 반둥 회의의 정신을 비동맹 운동이라는 제도적 틀로 전환하는 첫걸음이었다. 티토는 이 회의를 발판 삼아 1961년 베오그라드에서 첫 비동맹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이후 비동맹 운동은 냉전기 내내 유엔 총회 다음으로 큰 국가 간 협의체로 성장했다. 선언이 서명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수에즈 위기와 헝가리 봉기가 동시에 터지면서 양 진영의 제국적 논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는 비동맹 노선의 설득력을 역설적으로 강화했다. 현재 비동맹 운동은 120개 회원국을 보유하며 탈냉전 시대에도 존속하고 있다.
관련 인물
관련 역사 사건
출처
- 위키백과 (영문) confirms date (19 July 1956), signatories (Tito, Nehru, Nasser), location (Brijuni Islands), core declaration text, and its role as precursor to the 1961 Belgrade Summit
- doi.fil.bg.ac.rs Dragan Bogetić, 'Yugoslavia and the Non-Aligned Movement' (Institute for Recent History of Serbia, 2021): scholarly confirmation that the Brioni meeting was 'the first multilateral meeting of non-aligned countries' and the declaration 'the first multilateral document of non-aligned countries'
- serbiantimes.info Serbian Times: details the 'Declaration on a Joint Anti-Bloc Policy' framing, Tito's concept of 'active peaceful coexistence' as the precursor to non-alignment, and the movement's survival past the Cold War
- humanityjournal.org Humanity Journal (peer-reviewed): confirms the Brioni meeting is 'for many observers both then and now... the foundation of the Non-Aligned Movement,' notes Nehru's role in proposing the communiqué and his subsequent reluctance, and analyses the endorsement of the ten Bandung princip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