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공산당
Bulgarian Communist Party
1903년 분열로 생긴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 협의파가 1919년 코민테른에 가입하며 이름을 바꾼 정당. 1923년 9월 봉기가 실패한 뒤 1924년 금지되었고, 1944년 9월 9일 조국전선 정변으로 권력을 잡아 1990년까지 불가리아를 통치했다. 1990년 4월 3일 불가리아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상세
당의 뿌리는 1891년 부즐루자 대회에서 생긴 불가리아 사회민주당과, 1903년 분열로 생긴 불가리아 사회민주노동당 「협의 사회주의자」파다. 디미터르 블라고예프가 이끈 협의파는 제1차 세계대전에 반대하고 10월 혁명에 공감했으며, 1919년 5월 28일 소피아 대회에서 「불가리아 공산당(협의 사회주의자)」이라는 이름을 택하고 코민테른에 가입했다. 당은 1919년 8월 선거에서 18%와 47석을 얻었고, 1923년 6월 직전 당원은 3만 8000명이 넘었다.
1923년 6월 9일 정변 때 중앙 지도부는 중립을 지켰으나, 코민테른의 압력으로 8월 새 봉기를 결정했고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와 바실 콜라로프가 9월 봉기를 이끌었다. 봉기는 실패했고, 1924년 4월 국가보호법에 따라 최고파기원이 당을 해산했다. 1925년 4월 16일 당 군사조직이 소피아의 성네델랴 성당 폭탄 테러를 일으켜 대규모 탄압을 불렀다. 1927년 합법 외곽 정당으로 노동자당이 만들어졌고, 1938년 비합법 공산당과 합쳐 불가리아 노동자당(공산주의자)이 되었다.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 뒤 당은 무장투쟁을 선언하고 파르티잔 운동과 조국전선 결성을 이끌었다. 1944년 9월 9일 조국전선 쪽으로 넘어간 군 부대와 파르티잔이 소피아를 장악해 콘스탄틴 무라비예프 정부를 무너뜨렸다. 1946년 공화국 국민투표와 대국민의회 선거 뒤 디미트로프가 총리가 되었고, 1947년 야당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정당들이 해산되었다. 1948년 말 제5차 대회에서 당은 불가리아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1949년 7월 디미트로프가 죽은 뒤 벌코 체르벤코프가 제1서기가 되었고, 같은 해 트라이초 코스토프가 재판을 받고 12월 교수형에 처해졌다. 영어 출처는 당이 1946년부터, 불가리아어 출처는 1944년부터 나라를 통치했다고 적는다.
1954년 토도르 지프코프가 제1서기가 되어 1989년까지 당을 이끌었다. 1956~1958년 농업 집단화가 마무리되었고, 불가리아는 1949년 경제상호원조회의, 1955년 바르샤바 조약기구 창설에 참여했으며 1968년 프라하의 봄 진압에도 군대를 보냈다. 1980년대 당은 튀르크계 주민 등의 이름을 불가리아식으로 바꾸게 한 이른바 「부흥 과정」을 벌였다. 1989년 말 당원은 약 100만 명이었다.
1989년 11월 전원회의에서 지프코프가 물러나고 페터르 믈라데노프가 지도자가 되었다. 영어 출처에 따르면 믈라데노프는 12월 11일 당이 집권 보장을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1990년 초 제14차 임시 대회는 「민주적 사회주의 선언」을 채택했고, 당내 국민투표를 거쳐 1990년 4월 3일 불가리아 사회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몇몇 소규모 정당이 불가리아 공산당의 계승자를 자처했다.